사면초가 된 ‘규제개혁’...“도와줄라 말고 간섭이나 마시라”
사면초가 된 ‘규제개혁’...“도와줄라 말고 간섭이나 마시라”
  • 권의종
  • 승인 2021.10.15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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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공정 ‘지대추구’ 카르텔 존재하는 한 규제개혁 허사...소리쳐 봤자 입만 아프고 목만 쇨 뿐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기업은 규제가 싫다. 딱 질색이다. 규제개혁은 정부에 가장 바라는 바다. 기업단체는 하루가 멀다고 규제 완화를 주문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적극적이다. 이번에도 ‘2021년 기업규제 개선과제’라는 표제를 달아 정부에 건의했다. 회원사 의견수렴을 거쳐 수소경제, 의료·제약 등 신산업 분야 4건, 건설·입지 9건, 노동 5건, 민간투자사업 5건, 유통 3건, 법정부담금 3건, 기타 2건 등 31건을 주문했다.

혁신기업 탄생을 위한 규제 완화도 요구했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이 선정한 글로벌 혁신기업에 한국 기업으로는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 기아 등 4개 회사 뿐이다. 이를 본 전경련이 혁신기업 탄생을 위한 환경 조성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BCG는 2005년부터 해마다 ‘가장 혁신적인 기업(Most Innovative Companies)’ 50개 사를 선정해 발표해왔다.

BCG 발표가 없었던 2011년과 2017년을 빼고 지난 15년간 최소 한 번 이상 혁신기업으로 선정된 기업은 167개다. 국적 별로는 미국 82곳, 영국 12곳, 독일 12곳, 일본 11곳, 홍콩을 포함한 중국 10곳, 프랑스 5곳, 한국 4곳 등이다. 구태여 순번을 매기자면 한국은 여덟 번째다. 삼성전자가 매년 즉 15회 선정됐고, LG전자가 8회, 현대자동차가 4회, 기아가 2회를 각각 기록했다.

전경련은 혁신기업의 특징을 살피기 위해 글로벌 매출 500대 기업을 비교 대상으로 삼았다. 분석 결과가 시사적이다. 혁신기업은 글로벌 매출 500대 기업보다도 연구개발(R&D), 설비투자, 인수합병(M&A)이 활발하며 생산성도 양호했다. 혁신기업의 R&D집약도(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는 10.0%로, 500대 기업보다 2.9배 높았다. 혁신기업은 현금성 자산 보유분의 22.0%를 설비투자에 지출했는데, 이는 500대 기업의 2.2배 수준이었다.

기업이 정부에 가장 바라는 ‘규제개혁’...외국 기업과 정부도 규제 완화를 이구동성으로 주문

혁신기업의 과거 5년간(2016년~2020년) M&A 횟수는 평균 10.7회다. 500대 기업 평균의 2.2배다. 영업이익을 고용인원으로 나눈 1인당 생산성은 혁신기업(6만1,000달러)이 500대 기업(4만7,000달러)보다 1.3배 높다. 한국에서 새로운 혁신기업이 대거 탄생할 수 있도록 R&D, 설비투자에 대한 세액공제를 늘리고, 투자, M&A를 저해하는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게 전경련 주장의 요지다.

외국 기업도 규제 완화를 강하게 주문한다. 복잡하고 불투명한 규제가 한국 내 신규 투자 및 투자 확대를 막고 있다는 불평이다. 주한유럽상공회의소(ECCK)는 한국 진출 유럽계 기업들의 규제 완화 건의를 담은 ‘2021년도 ECCK 백서’까지 발간했다. 한국 내 규제 예측 가능성도 높여야 하며, 한국 정부의 다각적인 지원과 예측 가능하고 일관된 규제환경 조성이 필요함을 지적한다.

미국 정부도 가만있지 않았다. 지난 7월 과도한 규제가 한국의 경쟁력을 위협하고 있다고 거론했다. 미 국무부는 ‘2021 투자환경 보고서’를 통해 “한국이 경제 규모와 정교함에 비해 외국인 직접투자를 유인하는 능력이 떨어진다”는 한국무역협회의 분석을 인용했다. 그러면서 규제의 불투명성, 일관성 없는 규제 해석, 예상치 못한 규제 변경, 경직된 노동정책 등을 투자의 걸림돌로 지목했다.

정부에 건의라도 할 수 있는 대기업과 외국 기업은 행복하다. 속에 있는 말을 할 수 있다는 게 힘이 있다는 증거다. 자사에 유리한 논리를 개발하고 대안을 마련해 정부에 건의하고 소비자 홍보에 나설 수 있는 자체가 경쟁력이다. 그러지 못하는 중소기업만 딱할 뿐이다. 중소기업중앙회나 옴부즈만 등이 있긴 하나 실제는 그림의 떡이다. 소기업이나 자영업자들은 이들 단체의 회원이 아닌지라 어디다 대고 하소연도 못 한다.

도와준답시고 괴롭히기만 하는 지원제도...기업 하는 게 무슨 죄라고 애꿎은 기업만 희생제물

정부가 기업을 몰라도 너무도 모른다. “도와줄라 말고 간섭이나 말라”는 게 상당수 기업인의 생각이다. 도와준답시고 괴롭힘을 당하는 현실에 절망하고 개탄한다. 중소기업 인증제도가 그 대표적 사례다. 인증의 가짓수가 많다. 그러잖아도 힘든 기업을 더 힘들게 한다. 역대 정부마다 ‘손톱 밑 가시’를 빼주고 ‘규제 전봇대’를 뽑어주겠다고 굳게 약속했다. 빈말이었다. 규제개혁위원회, 규제 샌드박스, 규제개혁 신문고 등이 운영되나 유명무실에 가깝다.

인증제도는 되레 더 많아지고 있다. 24개 정부 부처에서 운영 중인 인증제도가 법정 의무인증(80개)과 법정 임의인증(106개)을 합쳐 186개에 이른다. 2009년 96개에 비해 두 배에 가까이 늘었다. 인증 건수가 늘면서 인증기관의 수수료 수입도 덩달아 오른다. 그 돈으로 인증기관은 조직을 키우고 자산을 늘린다. 기업들만 죽어난다. 기업 하는 게 무슨 죄라고, 디자인만 조금 바꿔도 다시 인증을 받아야 한다.

비밀 아닌 비밀은 따로 있다. 인증기관이 기득권 수호를 위해 퇴직 관료를 영입한다. 관료는 관료대로 퇴임 후 재취업 자리를 의식해 인증제도를 양산한다. 이런 흐름이 오래 전부터 관례가 되어 내려오고 있다. 여기에 일부 관료는 인증 컨설팅업체를 차린다. 인위적인 장벽을 만들어 부당한 이익을 취하는 ‘관료-인증기관-컨설팅업체’의 3각 카르텔이 가히 철옹성이다.

이런 불공정 구조가 인증시장에만 있으랴. 주의 깊게 둘러보면 주변에 널려있다. 업무 감독, 예산 배정, 인허가 등과 관련한 불합리한 구조가 곳곳에서 눈에 띈다. 퇴직 관료가 산하단체와 관련 기업에 재취업해 활동하는 경우는 셀 수 없을 정도다. 공정을 해치고 효율을 좀먹는 후진적 ‘지대(地代)추구’ 행위가 존재하는 한 규제개혁은 한낱 구호에 그치고 만다. 소리쳐 봤자 입만 아프고 목만 쇨 뿐이다.

필자 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 부설 금융소비자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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