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한국전쟁과 보리밥나무의 추억과 안식 기도
6-25 한국전쟁과 보리밥나무의 추억과 안식 기도
  • 정근식
  • 승인 2021.11.03 15:42
  • 댓글 0
  • 트위터
  • 페이스북
  • 카카오스토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근식 칼럼] 산비탈이 끝나고 평편한 땅이 시작되는 지점에 뜰보리수 한 그루가 자라고 있었다. 6월의 햇살로 그 열매들이 붉게 익어가고 있었지만, 추모제에 참석한 어느 누구도 그것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 나무가 서 있는 자리는 공교롭게도 세상에서 제일 긴 무덤이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나무뿌리 아래의 흙을 파헤치자 71년 전의 참극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랜 침묵을 견뎌낸 유해들은 뒤엉켜 있었고, 턱뼈에 붙어 있는 치아들 사이로 종종 총탄이나 탄피가 발견되었고, 누군가의 손을 옭죄었던 수갑의 파편도 나왔다.

“아직 갈 길이 멀지요?”

가을 단풍이 한창인 오늘, 대전 동구의 골령골에서는 올해 새롭게 발굴한 962구의 유해를 세종시 추모의 집에 모시는 안치식이 열린다. 2007년부터 지금까지 네 차례에 걸쳐 이곳에서 발굴된 유해는 약 1,250구에 이르는데, 이곳에서 희생인 사람의 약 1/4에 지나지 않는다. 내년까지 어느 정도 유해발굴을 마무리하고 민간인 희생자들을 위한 국립 위령시설 조성공사를 시작해야 하는데, 조바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곳에서 발굴된 유해들은 대전 인근지역에서 예비검속되었던 보도연맹원들이거나 대전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던 정치범들이다. 수형복의 하얀 단추들이 나온 장소와 민간인들이 소장하고 있던 연필이나 도장과 같은 유품들이 나온 장소는 약간 떨어져 있어서 이들이 약간 다른 집단임을 추정하도록 해준다. 전쟁 당시 참극의 현장에 있었던 에드워드 미군 중령은 7월 3일부터 5일까지 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던 정치범 1,800명이 이곳에서 처형되었는데, 그것은 의심할 바 없이 최고위층의 지시에 의한 것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여기에는 제주 4.3사건과 여순사건 관련자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 사건이 발생한 지 몇 주 지나 이곳을 찾았던 영국의 ‘데일리 워커’의 특파원이었던 위닝턴은, “나는 진실을 보았다”는 제목으로 이 비극적 사건들을 고발했지만, 그는 이 보도로 인해 조국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대전형무소 외에 다른 형무소의 사정은 어떠했을까? 1948년 5월 전국(남한)의 18개 형무소에는 약 22,000명의 수감자들이 있었고, 그로부터 1년여가 지난 1949년 8월에는 약 35,000명이 수감되어 있었는데, 이런 증가는 국가보안법 제정과 대대적인 좌익 색출작업의 결과였다.

6.25전쟁이 발발한 후 얼마되지 않아 수원 이남의 전국 형무소에서 재소자들이 적법한 절차없이 처형되기 시작했다. 전국에서 최소 11,000명 이상의 재소자들이 1950년 7월에 희생되었는데, 지금까지 진실화해위원회를 통해 확인된 사람들은 1,452명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인민군 점령 시기에는 형무소에서의 불법 처형이 없었는가? 정확한 자료가 없지만, 대전형무소의 경우 다수의 우익 인사들이 수감되어 있었고, 1,557명이 수복 직전에 희생된 것으로 밝혀졌다.

전주형무소의 경우에도 약 1,400명이 군경에 의해 처형된 후, 적대세력에 의해 약 1,000명의 우익 인사들이 희생되었다. 광주형무소의 경우에도 비슷하다. 광주학생사건의 지도자였던 장재성도 광주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다가 산동교 부근에서 처형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전국의 형무소는 예방학살과 보복학살이 연속된 비극의 현장이었지만, 대부분의 자료가 멸실되어 그 정확한 진상을 파악하기 어렵다.

희생자들을 위한 기도

한국전쟁에서 희생된 민간인들의 유해는 전시 국가폭력의 움직일 수 없는 증거이자 그것이 다시는 반복되어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제공한다. 유해를 발굴하는 것은 불편한 진실을 수용할 수 있다는 의지와 역량의 표현이다.

그것은 망자에게는 안식을, 유족들에게는 위로를, 시민들에게는 평화를 제공한다. 그동안 외면했거나 방치되어 온 유해매장지는 가급적 빠른 시일내에 발굴할 필요가 있다. 지난 1기 진실화해위원회에서는 168개의 유해매장지를 확인한 바 있는데, 최근에 다시 조사해보니 총 304개 장소가 확인되었다. 골령골 유해 안치식을 거행하면서 그동안 노심초사하면서 발굴에 참여했던 분들과 함께 희생자와 유족들을 위한 기도를 드린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 칼럼은 다산칼럼의 동의를 얻어 전재한 것입니다.

필자소개

글쓴이 / 정 근 식
·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 서울대 전 통일평화연구원장

·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위원장

· 저서
〈한국의 민주화운동과 국제연대〉(공저, 한울, 2018)
〈평화를 위한 끝없는 도전〉(공저, 북로그컴퍼니, 2018)
〈소련형 대학의 형성과 해체〉(공저, 진인진, 2018)
〈냉전의 섬 금문도의 재탄생〉(공저, 진인진, 2016) 외 다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주)서울이코미디어
  • 등록번호 : 서울 아 03055
  • 등록일자 : 2014-03-21
  • 제호 : 서울이코노미뉴스
  • 부회장 : 김명서
  • 대표·편집국장 : 박선화
  • 발행인·편집인 : 박미연
  • 주소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은행로 58, 1107호(여의도동, 삼도빌딩)
  • 발행일자 : 2014-04-16
  • 대표전화 : 02-3775-4176
  • 팩스 : 02-3775-4177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미연
  • 서울이코노미뉴스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서울이코노미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seouleconews@naver.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