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석남의 에듀컬처] 주나라 사당을 참관한 공자가 ‘의기’(기울어진 그릇)를 보고는 “무엇에 쓰는 것이냐”고 물었다. 사당지기가 “유좌라는 그릇이지요”라고 대답하자 공자는 “듣자하니 유좌라는 그릇은 가득 채우면 엎어지고, 비우면 기대어 세워야 하며, 알맞게 채워야 바로 선다고 하던데 정말 그렇소?”라며 제자 자로에게 곧바로 물을 떠오게 해 시험했더니 과연 듣던 대로였다.
공자가 “가득 채워도 어찌 엎어지지 않는 게 있겠느냐”고 탄식하니 자로가 “가득 차 있을 때 도는 무엇입니까”하고 물었다. 이에 공자는 “가득 차 있을 때는 눌러서 덜어내는 길밖에 없다”고 답했다. “덜어내는 데는 어떤 도가 있습니까”하고 되묻자 “덕행이 넓은 자는 공경으로, 땅이 많은 자는 검약으로, 지위가 높고 녹봉이 많은 자는 겸손으로 지키고, 많은 부하와 강력한 무기를 가진 자는 두려움으로 지킨다. 이것이 눌러서 덜어낸다는 것이다”고 말했다.
‘의기’는 제나라 환공이 늘 오른편 곁에 두고 본 그릇으로 ‘유좌지기(宥座之器)’라고도 불린다. 후세 사람들이 그 본을 받아 직접 만들어 곁에 두려 했으나 만들기가 쉽지 않았다. 금속 기물 위에 스스로 경계하는 글을 새겨 대신했는데 ‘좌우명(座右銘)’이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고 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최근 있었던 기자 간담회에서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을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고 재차 밝혔다. “최선을 다하는 것이 사람의 몫이고, (결과에) 연연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부연했다. ‘일희일비하지 않고, 나의 길을 가련다’라는 의지가 읽힌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좌우명은 심플하다. ‘법과 원칙 준수’. 다소 딱딱한 감이 없지 않지만, 역시 그답게 ‘교과서적’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의 좌우명은 ‘남보다 시간을 더 투자할 각오를 한다’이다. “어떤 문제에 부딪히면 나는 미리 남보다 시간을 두 세 곱절 더 투자할 각오를 한다. 그것이야말로 평범한 두뇌를 지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일본의 누군가가 한 말을 들은 안철수 후보가 감명을 받아 자신의 좌우명으로 삼았다고 한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의 좌우명은 감성적이면서도 비장하다. ‘밤이 깊을 수록 별은 빛난다’. 고단하고 힘든 ‘진보정치’라는 가시밭길을 걸어온 그의 여정이 그대로 투영돼 있다.
그럼 일반인들의 좌우명은 어떨까?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어떤 좌우명을 갖고 살아갈 것이냐’는 질문에 응답자들은 ‘건강’과 ‘긍정적인 삶’을 가장 많이 꼽았다고 한다. ‘안분지족(安分知足)’, ‘긍정적인 사고가 행복한 삶을 가져온다’ 등이 그것이다.
실업대란 속에서 구직자들이 선호하는 좌우명도 눈길을 끈다. ‘위기는 기회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자’, ‘no pain, no gain’과 같은 ‘긍정적’ 유형도 많았다. 하지만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앞서 나온 ‘피할 수 없다면 즐기자’는 말을 거꾸로 한 ‘즐길 수 없다면 피하라’ 등의 자조적인 좌우명에서는 고단한 삶에 지친 민초들의 아픔이 묻어나온다.
대선후보들의 좌우명과는 사뭇 거리가 있어보인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좌우명이나 인생철학은 액자에 써붙여 놓는다고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현실’과 호흡하며, 행동으로 실천하고, 사회 속에서 현실화시킬 때 그 좌우명은 비로소 본인과 국민, 국가에 유익한 가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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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조석남 (mansc@naver.com)
- 극동대 교수
- 전 한국폴리텍대학 익산캠퍼스 학장
- 전 서울미디어그룹 상무이사·편집국장
- 전 스포츠조선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