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가 사랑한 신하...수원 화성 건설 책임자 이가환(李家煥)
정조가 사랑한 신하...수원 화성 건설 책임자 이가환(李家煥)
  • 김준혁
  • 승인 2021.11.30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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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혁 칼럼] 조선시대 개혁군주 정조가 가장 사랑했던 신하가 과연 누구였을까? 정조시대에 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보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정조는 어느 특정인만을 사랑하지 않았지만 그중에서도 정약용과 이가환을 가장 사랑했다.

정약용은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이가환은 생소하다. 하지만 이가환은 정조가 가장 신뢰한 인물이고 정약용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그렇기 때문에 정약용은 이가환이 죽고 나서 장문의 묘지명을 지었다. 그것도 비분강개하면서 말이다.

이가환은 그 유명한 실학자 성호 이익의 후손으로 본관은 여주였다. 호는 금대(錦帶)·정헌(貞軒). 이익의 종손으로, 아버지는 이용휴이다. 1771년(영조 47) 진사가 되고, 35세가 되던 1777년(정조 1) 증광 문과에 급제하였다. 이가환은 장희빈 사건으로 고문을 받다가 죽은 이익의 친형인 이잠의 종손으로 태어났기에 그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조선후기 당쟁의 한 복판에 설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천재란 소리를 들었던 이가환은 성리학과 실학을 동시에 공부하였다. 기억력이 뛰어난 그는 정약용이 표현대로 한번 본 글은 평생동안 잊지 않았고, 제가백가에서 천문학 수학 그리고 수의학에 이르기까지 통달하지 않은 학문이 없을 정도였다.

-정조가 신뢰한 이가환

이가환은 정조 16년인 1792년 9월에 사간원 대사간이 되었다. 곧이어 대사성으로 임명하였다. 이가환은 이제 정조의 왕권강화 정책에 있어 가장 핵심이 되는 인물로 성장하였다. 그러한 성장으로 인하여 노론들의 집중적인 견제를 받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정조는 일종의 타협책으로 이가환을 중앙관직에서 빼내어 개성유수로 임명하였다. 정조가 이가환을 개성유수로 임명하는 문제로 이틀간을 밤을 세웠다는 이야기를 좌의정인 채제공에게 할 정도로 이가환은 정조의 정국운영에서 핵심이 되는 인물이었다.

이가환이 개성유수로 임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노론은 그를 지속적으로 공격하였다. 그가 이잠(李潛)의 종손이었기 때문이다. 이잠은 경종 재위시에 노론을 공박했던 인물로 끝내 노론에 의해 대역죄인으로 몰려 국문중에 맞아 죽었던 인물이었다. 그래서 노론의 핵심 인물인 심환지는 이가환이 역적 이잠의 후예라는 이유로 조정에서 등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이에 정조는 “이가환의 종조(宗祖)에 대해서는 나도 그 이름을 익히 듣고 있으나, 종조는 종조이고 종손(宗孫)은 종손이다. 재능을 헤아려 임무를 맡겼는데 이가환이 문사(文士)가 아니라는 말인가. 경 또한 과구(科臼) 중의 사람으로 옛 습관을 면하지 못하고 이렇게 뭇사람들을 따라 하고 있으니 매우 놀라운 일이다.”라고 심환지를 나무라며 이가환을 지켜주었다.

이가환에게 수원 화성의 축성 책임을 맡기다

정조는 1795년(정조 19) 윤2월 화성으로 어머님인 혜경궁홍씨 회갑진찬연을 다녀온 후 이가환에게 자신의 개혁 터전인 수원 화성의 축성을 비롯한 도시기반 시설 모두를 책임지고 맡아 추진하도록 하고, 정약용에게 민첩하니 이가환을 도와 자신의 정국 운영 구상을 완성하라고 지시하였다.

정조는 상왕(上王)이 되어 화성에서 개혁을 추진하여 새로운 조선을 만들려고 했다. 이처럼 이가환에게 수원 화성의 마무리를 부탁한 것은 그가 가지고 있는 지식과 열정 때문이었다. 이가환은 자신이 가진 실학정신과 건축학, 토목학 등 서양 과학 기술 등을 수원 화성 축성에 적용하였다.

천재가 가진 상상력과 열정 그리고 그의 기술력은 화성성역총리대신인 채제공의 리더십과 함께 수원 화성을 세계 최고의 성곽으로 만들게 되었다. 그러나 그를 견제하는 노론의 공격으로 그는 조선을 위한 헌신을 하지 못한채 정조 죽음 이후 사약을 받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오늘 우리는 수원 화성을 이야기할 때 정조, 채제공, 정약용을 중심으로 이야기하는데 실제 마무리 역할에 이가환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여야 한다. 당대 최고의 천재가 참여하였던 화성, 실학 정신으로 가득했던 이가환의 열정이 담겨 있는 수원 화성을 기억해주기 바란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 칼럼은 다산칼럼의 동의를 얻어 전재한 것입니다.

 
글쓴이 / 김 준 혁
· 한신대학교 평화교양대학 교수(한국사 전공)
· 국제기념물유적협회(ICMOS) 한국위원회 위원

· 저서
〈이산 정조 꿈의 도시 화성을 세우다〉(여유당출판사)
〈정조와 다산의 꿈이 어우러진 대동의 도시 화성〉(더봄)
〈한반도의 운명을 바꾼 전투〉(한신대학교 출판부)
〈조선의 최강 군대 장용영〉(더봄)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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