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삯에 인색하면 일꾼 못 부려...공기업, ‘공(空)기업’ 만들라
품삯에 인색하면 일꾼 못 부려...공기업, ‘공(空)기업’ 만들라
  • 권의종
  • 승인 2021.12.20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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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줄 건 주면서 바랄 걸 바라야...공공기관도 임금 아끼며 성과 기대하는 건 무리수

[권의종 칼럼] 공기업은 흔들리며 산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예산 하나 맘대로 못 세운다. 정부가 시달하는 ‘공공기관 예산편성지침’에 따라야 한다. 한 치 오차도 있어선 안 된다. 최근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지침이 개정됐다. 모든 임금과 수당을 인건비 항목에 포함토록 변경됐다. 내년부터 공공기관 직원의 임금이 줄어들게 생겼다. 노동조합이 가만있을 리 없다. 정부 결정에 큰 반발이다. 

지침 개정 의도가 뚜렷하다. 공공기관이 인건비 통제를 회피하기 위해 통상임금 소송으로 얻은 추가 임금을 ‘예비비’에서 지출해온 관행에 제동을 걸기 위해서다. 기재부는 그동안 공공기관 인건비를 총액으로 통제해 왔다. 그런데 2013년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났다. 이후 노조는 각종 수당 등을 추가 지급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여기서 공공기관이 패소하면서 인건비 부담이 추가됐다. 

이때 공공기관이 정공법을 선택하지 않았다. 패소로 인해 추가된 인건비 예산의 반영이 어려울 것 같아지자 이를 예비비 항목에서 지출해 왔다. 그 덕에 기재부가 정하는 인건비 인상 가이드라인을 비껴갈 수 있었다. 이를 뒤늦게 알아차린 기재부가 제동을 걸었다. 추가 인건비를 예비비에서 지급하지 못하도록 쐐기를 막은 것이다. 

이렇게 되면 노조가 통상임금 소송에 이겨도 직원 임금은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공공운수노조가 통상임금 소송이 진행 중인 산하 16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통상임금이 추가되는 부분은 총인건비의 3% 수준이다. 기재부가 올해 공공기관 인건비 인상률로 제시한 1.4%를 기준으로 하면 초과하는 1.6%만큼은 인건비 총액이 줄어든다. 

‘정기상여금, 통상임금 포함’ 판결...추가 임금을 예비비에서 지출해온 공공기관 관행에 쐐기

책임 공방이 거세다. 기재부는 지침 변경과 관련해 “그간 통상임금 소송에 따라 발생한 추가 임금은 총인건비 한도와 관계없이 집행했지만, 일부 기관에선 적시에 임금체계를 개편하지 않아 유사 소송이 반복되는 부작용이 있었다”며 “이를 바로잡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공공기관 노조 측 주장은 다르다. “인건비와 인건비를 기준으로 주는 경영평가성과급이 늘어난다는 이유로 공공기관의 임금체계 개편을 반대한 건 기재부”라고 반박한다. 

자세한 내막을 알 리 없는 국민에게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 얼른 보면 ‘신의 직장’에서 일하는 공공기관 직원의 ‘밥그릇 투정’ 쯤으로 비쳐질 수 있다. 정부도 어쩌면 공공기관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대 임금상승을 막고 싶은 속내일지 모른다. 그렇다고 공공기관 내부 일로만 치부하기 어렵다. 인건비 절감이 조직 효율을 떨어뜨리고 대(對)국민 서비스 약화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공공기관 책임이 크다. 법원의 판결이 내려졌으면 상여금을 기본급에 넣는 등 임금체계를 의당 개편했어야 했다. 그러지 않았다. 노조가 소송을 통해 인건비를 받아 가는 걸 그저 보고만 있었다. 정부 눈치나 보며 차일피일 미루는 사이 노조가 소송을 걸었고 공공기관은 여기서 패소했다.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법원의 판단을 구함에 따라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소모하고 막대한 비용을 낭비하고 말았다. 

게다가 승산도 없는 상소까지 하는 바람에 지급해야 할 금액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소송촉진특례법에 따르면 재판이 길어질수록 이자가 무겁게 매겨진다. 연 12%씩 붙는다. 또 추가되는 인건비를 예비비 항목에서 지출함으로써 기재부가 정하는 인건비 인상 통제를 피해 가는 꼼수까지 부렸다. 

임금은 억제한다고 억제되기 어려워...시행을 강행하면 지침을 우회하는 편법 파생될 수 있어

정부도 안일했다. 인건비를 총액으로 관리하려는 시도 자체가 편의주의 행정의 전형이다. 관리는 쉬울지 모르나 실효를 거두기 힘들다. 공공기관마다 목적과 업무가 다를뿐더러 급여 수준이 천차만별이다. 이런 상황에서 임금총액을 일률적으로 규제하면 되레 역효과가 날 수 있다. 금액 면에서도 급여 수준이 높은 기관은 더 받고 낮은 기관이 덜 받는 모순이 불거진다. 부익부 빈익빈, 불평등만 심해진다.

정부가 인건비를 통제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 공공기관과 직원의 성과와 연계시키는 게 맞다. 과학적 관리기법을 동원, 평가의 공정성과 신뢰성도 높여야 한다. 지금도 공공기관 평가제도가 시행되나 효과가 별로다. 공공기관과 기관장, 임원에 대한 평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직원에 대한 유인이 약하다. 성과 관련 인센티브 상여금만 해도 차등 폭이 크지 않다. 시늉만 내는 정도다. 

예산편성지침이 지켜질지도 의문이다. 임금은 억제한다고 쉽게 억제되지 않는다. 시행을 강행하면 지침을 우회하는 편법이 파생될 수 있다. 조금만 궁리하면 빠져나갈 구멍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예로 들기는 거북하나 방법은 널려있다. 회계연도 중에 퇴직하는 직원의 인건비를 돌려쓰거나, 신규 직원의 채용 시기를 늦추는 방법이 있다. 임금인상 대신 복지혜택을 늘리는 것도 가능하다. 

정책 실패의 공산이 크다. 지침은 지침대로 지켜지지 못하면서 줘야 할 임금은 임금대로 다 지급될 수 있다. 임금만큼 민감한 게 없다. 근로자 개인은 물론 조직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고 절대적이다. 세상만사, 줄 건 주면서 바랄 걸 바라야 한다. 품삯에 인색하면 일꾼을 못 부린다. 아무리 공공부문이라 해도 임금을 아끼면서 성과를 기대하는 건 도둑의 심보나 다름없다. 자칫 공기업을 ‘공(空)기업’ 만들 수 있다.

필자 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 부설 금융소비자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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