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의종 칼럼] 경제가 ‘동물의 왕국’ 같다. 경제용어 가운데 동물에 비유한 표현이 많다. 블랙스완(Black swan)이 먼저 연상된다. 17세기 말 호주를 방문한 유럽인들이 검은 백조를 발견했다. 이들이 본국으로 돌아가 검은색 백조에 관해 말했으나 아무도 믿으려 들지 않았다. 이때부터 검은 백조는 ‘존재하지 않거나 불가능한 일이 실제 발생하는 것’이라는 표현으로 사용됐다. 2007년 경제학자 나심 탈레브가 ‘블랙스완’이라는 책을 발간하면서 이 용어가 널리 퍼졌다.
‘캐시카우(Cash cow)’ 유래도 흥미롭다. 젖소는 한 번 사서 잘 키우기만 하면 우유를 팔아 계속 돈벌이를 할 수 있다. 그래서 ‘돈을 더 들이지 않고도 안정적으로 계속 돈을 벌어다 주는 것’을 캐시카우라 부르게 됐다. 미국 보스턴 컨설팅 그룹에서 이미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사업을 가리킬 때 이 용어를 썼다. 그 후 더 발전하거나 급격히 성장하지는 않지만, 꾸준하고 오래도록 이익을 가져다주는 상품이나 사업을 일컫는 말이 됐다.
‘펭귄효과(Penguin effect)’도 널리 쓰이는 용어다. 펭귄은 먹이를 구하기 위해서는 바닷물 속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하지만 천적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빙산 끝에서 눈치만 보고 모여 있다. 그러다가 한 마리 펭귄이 용기를 내 바닷물로 뛰어들면 나머지 펭귄들도 잇따라 뛰어든다. 이런 습성에서 비롯돼, 구매에 확신을 갖지 못하다 다른 사람이 사면 따라 구매하는 행태를 펭귄효과라 부르게 됐다.
‘불마켓(Bull market)’과 ‘베어마켓(Bear market)’도 유명 개념이다. 불마켓은 장기간에 걸친 주가 상승이나 강세장을 뜻한다. 황소가 뿔을 아래에서 위로 올리며 상대를 들이받는 모습에서 유래됐다. 반대로 베어마켓은 곰이 싸울 때 아래로 내려찍는 자세로부터 나왔다. 대세 상승장이 끝나고 주가가 장기적으로 위에서 아래로 하락하는 약세장을 가리킨다.
경제는 흡사 ‘동물의 왕국’...블랙스완, 캐시카우, 팽귄효과, 불·베어마켓 등 동물 비유 용어 다수
‘회색 코뿔소(Gray rhino)’까지 등장했다. 덩치가 큰 코뿔소는 멀리서도 눈에 잘 띄고 진동 만으로도 움직임이 쉽게 감지된다. 다가오는 게 보이면 얼른 피할 방법을 찾아야 하나 가만이 손 놓고 있다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세계정책연구소(World Policy Institute) 대표 미셸 부커가 2013년 다보스포럼에서 처음 사용한 개념이다.
회색 코뿔소가 중국 경제에 나타났다. 비금융 제조업 부채, 지방정부 부실, 부동산 거품. 그림자금융 등 총 4마리나 된다. 국유기업의 잇따른 채무불이행 선언은 중국 경제의 회색 코뿔소가 보내는 경고음이라는 시각이다. 중국 시장정보업체 윈드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에서 발생한 기업 채무불이행은 총 2,306억 위안으로 집계됐다. 또 국제금융협회(IIF)는 지난해 3분기 중국의 총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335%에 달했다고 분석했다.
우리라고 안전지대일까. 그렇지 않다. 대한민국에도 코뿔소 경계령이 내려졌다. 2021년 9월 기획재정부가 주관한 거시경제 금융회의에서 경제부총리가 힘주어 언급한 키워드가 다름 아닌 회색 코뿔소였다. 올 들어서도 금융위원장이 우리 경제를 “멀리 있던 회색 코뿔소가 가까이 다가오기 시작하는 상황”으로 표현했다. 한국 경제가 당면한 위험 요인이 그만큼 크고 심각하다는 방증이다.
가장 경계해야 할 코뿔소는 가계부채다. 우리나라 가계부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늘고 있다. 이는 국제결제은행(BIS)이 발표한 민간부문 부채위험도를 나타내는 신용갭(Credit-to-GDP gaps)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한국은 2020년 말 기준 18.4%로 해당 통계작성이 시작된 1972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년 말보다 세 배 가까이 상승했다. 주요 43개국 중 세계 7위로 단숨에 뛰어올랐다.
한국 경제에 위협적인 '회색 코뿔소'...가계부채, 물가상승. 미·중 갈등, 미국 자산매입축소 등
물가상승도 위험한 코뿔소다. 2021년 12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이 전년 동월 대비 3.7% 뛰었다. 10년 만에 최고치다. 공업제품, 서비스, 농·축·수산물, 전기·가스·수도 등 모든 부문이 상승했다. 농산물 및 석유류 제품을 제외한 지수 역시 같은 기간동안 2.7% 상승했다. 오르지 않은 게 없다는 표현이 과장이 아니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고물가가 장기화할 거라는 전망이 주류를 이룬다.
또 다른 코뿔소는 미국의 자산매입축소 가속화와 금리 인상을 꼽을 수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자산 매입 축소, 즉 테이퍼링이 속도를 내고 있다. 여기에 더해 미국 중앙은행이 돈 풀기를 중단하는 시점을 6월에서 3월로 앞당기고 금리 인상도 올해 최고 4차례까지 가능하다는 언급을 했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최근 기준금리 추가 인상 가능성을 내비치며 통화정책 정상화의 시그널을 계속 내고 있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신흥국은 달러 유출로 몸살을 앓곤 한다. 2013년 긴축발작(Taper Tantrum)이 대표적 사례다. 아시아 신흥국의 경우 이번에는 경상수지가 양호하고 외환도 넉넉히 쌓여 과거와는 다를 거라는 분석도 있기는 하다. 그렇다고 안심은 금물이다. 코로나 위기 대응 과정에서 빚이 많이 늘어나 국제금리 인상이 아시아 경제의 회복세를 둔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의 경고다.
한국 경제를 위협하는 코뿔소는 이 말고도 여럿이다. 중국 경기 둔화, 미·중 갈등, 증시 변동성 확대,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정치권 포퓰리즘 등이 올해 침입이 예상되는 코뿔소들이다. 언제 들이닥칠지 모를 이들 불청객을 막아내지 못하면 경제가 힘들어진다. 뻔히 눈 뜨고 당하지 않으려면 잠재 위험을 적시에 탐지하며 정확히 분석, 선제적으로 차단하는 수 밖에 없다. 코뿔소 따위도 물리치지 못한다면 어찌 선진경제라 말할 수 있겠는가.
필자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 부설 금융소비자연구원장(경영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