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폐, 악습의 고리’ 끊지 못하는 정치인의 출판기념회
‘적폐, 악습의 고리’ 끊지 못하는 정치인의 출판기념회
  • 조석남
  • 승인 2022.02.17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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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 앞두고 ‘돈봉투 청구서’ 초대장 봇물... 자금 모금 창구 전락

신성한 이름 온전히 문인에게, ‘진짜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 돌려줘야

[조석남의 에듀컬처] 말 많던 정치인의 출판기념회가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선거철만 되면 경향 각지에서 풍토병처럼 번지는 정치인들의 출판기념회는 한 동안 비판 여론 때문에 뜸하더니 올해 들어 다시 붐이 일고 있다. 더욱이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대부분의 행사가 취소됐는데도 이것 만큼은 예외다.

공직선거법상 전국동시지방선거 90일 전인 3월 3일 이후에는 출판기념회를 할 수 없게 돼있어 그 이전까지는 ‘극성’을 부릴 전망이다. 정치인의 출판기념회가 시민과의 만남의 장이고, 신인들에겐 합법적 홍보 수단이라는 옹호 의견도 있지만, 언제부턴가 세 과시와 법망을 피한 정치자금 모금 행사로 변질되고 있다.

그래서 공무원 인사와 각종 인허가권을 쥔 현 단체장과 이 권한을 감시하는 지방의원들이 공무원과 지역 업자들에게 보내는 초대장은 ‘돈봉투 청구서’가 된 지 이미 오래다.

정치인들의 출판기념회는 ‘정치자금 모금의 변형된 창구’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지난 2004년 3월 통과된 이른바 ‘오세훈 선거법’에 따르면 정치후원금은 연간 1억5,000만원까지만 모을 수 있게 돼있다. 그러나 출판기념회는 ‘경조사’로 분류돼 이 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정치인들이 책을 팔고 받은 돈은 법적으로 고스란히 개인 돈이다. 모금한도도 없고 회계보고 의무도 없다. 책값은 권당 보통 1만~1만5,000원 안팎이지만, 책값만 달랑 내는 경우는 드물다. 책값을 포함해 격려금으로 개인당 5만∼10만원을 내는 게 관례로 여겨지고 있고, 50만∼100만원, 수백만원을 내는 ‘큰손’도 적지 않다.

출판기념회를 치른 경험이 있는 모 정치인은 “선거를 치르려면 실탄(자금)이 필요하다”며 “막대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출판기념회를 할 수 밖에 없다”고 실토했다. 한 정당 관계자는 “솔직히 정치인의 출판기념회는 정치권의 대표적 ‘적폐’다. 정책으로 승부를 거는 올바른 선거 방향에 큰 걸림돌”이라고 말했다.

순수문학을 지향했던 글쟁이들의 옛 출판기념회는 소박했다. 1955년 첫 시집을 낸 박인환 시인은 문인들이 드나들던 명동 ‘동방싸롱’에서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시집 출간이 귀하던 시절이라 많은 예술인이 정장을 하고 모였다. 축사와 시 낭독이 끝나자 가수 현인이 감미롭게 샹송을 불렀다. “브라보, 오늘의 시인 박인환을 위하여”라고 건배사를 외친 뒤 술잔이 오갔다. 그 시절 출판기념회는 주머니 가벼운 문인들이 모처럼 신나게 먹고 마시는 축제였다고 한다.

출판기념회란 저자의 땀과 재능, 사상과 철학, 인생과 혼을 담은 작품집의 출간을 축하하기 위한 모임이다. 수필집의 경우, 한 권을 묶으려면 엄격히 정선된 작품 50여 편은 있어야 하며, 최소한 2년에서 길게는 십여년이 걸리기도 한다.

더구나 작품집이나 자서전 등은 진실이 담보되는 고통스러운 창작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대필’이란 어불성설이다. 출판 비용은 500만~1,000만원 안팎이며 거의가 자비로 출판된다. 넉넉하지 못한 문인들로서는 이도 만만치 않아 출판기념회까지 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정치인들의 출판기념회는 자신을 알리기 위한 도구로 책을 출간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선 순수하지 않다. 문장은 미사여구가 넘치고 그럴듯한 논리로 포장돼 있다. 실제 당선되면 거의 지키지 않을 약속들이 넘친다. 그래서 정치인의 책을 읽는 사람은 별로 없다. 많은 정치인들은 본인이 직접 쓰지 않고 대필작가에게 맡기고, 일부는 몇 년 전 썼던 책을 표지만 바꿔 세상에 내놔 웃음거리가 되기도 한다.

출판기념회를 통해 편법으로 후원금을 모금하는 정계의 관행은 없어져야 한다. 출판기념회가 편법으로 후원금을 더 걷는 창구로 활용되면 안된다는 얘기다. 오래 전부터 이에 대한 개선 방안이 거론됐으나 공염불에 그쳐왔다.

이제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후원금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정치권에서 풀어야 할 일이다. 더이상 신성한 ‘출판기념회’라는 이름을 모독해선 안된다. 그리고 거듭 말하거니와 ‘출판기념회’는 온전히 문인에게, ‘진짜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 돌려줘야 한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자 소개>

조석남 (mansc@naver.com)

- 극동대 교수

- 전 한국폴리텍대학 익산캠퍼스 학장

- 전 서울미디어그룹 상무이사·편집국장

- 전 스포츠조선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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