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명한 '온라인 대출장터’...금융시장은 여전히 ‘플랫폼 불모지’
단명한 '온라인 대출장터’...금융시장은 여전히 ‘플랫폼 불모지’
  • 권의종
  • 승인 2022.03.04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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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시장처럼 플랫폼은 금융에 더 긴요하고 절실...소비자·공급자 모두에 유익한 이기(利器)로 활용해야

[권의종 칼럼] 4차산업혁명 시대, 상거래의 총아는 플랫폼이다. 정보통신기술(ICT)의 혁명적 진화에 힘입어 플랫폼이 기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 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 등은 자신들만의 강점을 가진 플랫폼을 통해 각자의 영역에서 절대 강자로 자리매김 중이다. 구글의 회장, 에릭 슈밋(Eric Schmidt)은 이들 기업의 성공비결이 강력한 플랫폼에 있음을 지적했다.

국내에서도 플랫폼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커지고 있다. 플랫폼이 되겠다는 기업이나 플랫폼 사업에 뛰어들겠다는 기업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판매, 배달, 유통 분야 등을 중심으로 일부 선도 기업은 플랫폼을 통해 괄목할 성과를 거두며 거대 기업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플랫폼이 도대체 뭐길래. 사전적 의미로는 기차를 승·하차하는 공간이나, 강사, 음악 지휘자, 선수 등이 사용하는 무대·강단 등을 뜻한다.

오늘날에는 특정 장치나 시스템 등에서 이를 구성하는 기초가 되는 틀이나 골격을 지칭하는 용어로 의미가 확대됐다. 컴퓨터 시스템, 자동차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 가능한 보편적 개념으로 진화하기에 이르렀다. 위키피디아는 다양한 상품을 판매하거나 판매하기 위해 공통으로 사용하는 기본 구조, 상품 거래나 응용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는 인프라, 반복 작업의 주 공간 또는 구조물, 정치·사회·문화적 합의나 규칙 등으로 정의한다. 들어도 이해가 어렵다.

플랫폼이 주는 가치와 효과가 지대하다. 투자 대비 높은 성과를 내는 지렛대 역할을 한다. 수많은 공급자와 수요자를 끌어모아 연결함으로써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한다. 수요자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는 맞춤형 서비스 제공을 촉진한다. 고객 확장을 통해 산업 내 주도권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는 잠재력을 발휘케 한다. 여러 학문과 산업 영역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융·복합화가 가능해지면서 이종 산업간 결합이 플랫폼을 통해 일어나고 활성화한다.

배달 플랫폼 시장 성장세 눈부셔...금융은 공급자 주도 시장, 구태여 플랫폼 만들어 경쟁할 이유 없어

그 한 예가 배달 플랫폼이다. 성장세가 실로 눈부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2020년 배달 앱을 통한 음식 배달 거래액은 20조1천5억 원에 이른다. 한해 전 14조36억 원 대비 43.5% 늘었다. 플랫폼을 이용해 배달 및 운송업 근로자도 폭발적 증가세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2020년 기준 11만4천400여 명으로 추산됐다. 아르바이트 등 전업이 아닌 형태로 배달 및 운송업에 종사하는 인원을 포함하면 연 20만 명 수준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배달 앱 시장이 성장일로다. 코로나19 확산 등으로 외식 산업이 배달 위주로 재편되는 분위기다. 신한카드가 배달의민족 등 주요 배달 앱 4개 업체를 대상으로 2019년과 2021년 카드 이용 현황을 비교·분석한 결과가 놀랍다. 배달 앱 이용 건수가 206%, 이용금액이 240% 폭증했다. 한 사람당 이용 건수는 월평균 3.1건에서 4.6건으로 늘었다.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음식업종의 2019년 배달 앱 이용 비중은 11.2%에서 2020년 19.9%로 2배 가까이 늘었다.

여타 산업에서도 플랫폼이 대세를 이룬다. 그런데도 플랫폼 불모지가 있다. 금융시장이다. 그럴 만도 하다. 국내 금융시장은 사실상 경쟁의 무풍지대다. 만성적으로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는 공급자 주도 시장이다. 공급자로서는 구태여 비싼 돈 들여 플랫폼을 만들어 동업자끼리 괜한 경쟁을 할 필요가 없다. 비싼 이자를 매겨도 돈 쓸 사람이 제 발로 찾아와 줄을 서는 판이다. 그 덕에 사상 최대의 돈 잔치를 이어가는 지금의 호시절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관리 감독을 담당하는 금융당국은 무심하다. 아무런 생각이 없어 보인다. 플랫폼의 중요성과 당위성을 깨닫지 못하는지, 아니면 알고도 모른 체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집값을 잡기 위해 대출 총량이나 규제하고, 코로나19 관련 대출금의 만기를 연장하고 원리금 상환을 유예토록 금융회사를 압박하는 것으로 소임을 다하는 것으로 여기는 건 아닌지.

애초 배달 앱보다 시행 빨랐던 금융 플랫폼 아쉽게 조기 폐쇄...“기껏 차려진 밥상도 못 찾아 먹은 꼴”

기실은 금융에도 플랫폼이 없었던 건 아니다. 11년 전에 도입된 바 있다. 시작한 날로 치면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청년들보다 빠르다. 2011년 1월부터 전 세계 금융시장에서 최초로 신용보증기금을 통해 역경매 방식의 ‘온라인 대출장터’를 운영했다. 판매 기능에 경매 기능까지 결합해 일반 상거래 플랫폼보다 진일보한 시스템이었다.

제도의 출발은 순조로웠다. 시장의 반응이 뜨거웠다. 금융회사의 진입장벽을 낮추고 공급자의 경쟁을 촉진하는 데 이바지했다. 은행 등 금융회사의 우월적 지위와 높은 협상력으로 인해 이론적인 수준보다 대출 금리가 높게 형성되는 걸 막을 수 있었다. 은행 간 경쟁이 활발해지고 소비자가 은행들의 금리 조건을 비교해 대출을 선택할 수 있게 되면서 금리가 내려가는 효과가 뚜렷했다.

강맹수, 권의종 & 이군희(2012) 연구가 실증분석했다. 대출장터 시행으로 직·간접적 금리 인하 효과가 최대 73 bps(0.73%)로 나타났다. 최우수 금융상품으로 대한민국 금융대상에 선정됐다. 국내외 금융, 산업, 학계로부터 혁신 사례라는 극찬을 받았다. 호사다마였을까. 은행의 관심과 신보의 의지가 시들해지면서 3년을 못 넘기고 장터 문이 닫히고 말았다. 지금 와서는 이를 기억하는 사람조차 드물 정도다. 기껏 차려진 밥상도 못 찾아 먹은 꼴이 되었다.

플랫폼은 금융에 되레 더 긴요하고 절실하다. 공급자 주도의 일방적 시장에서 수요자와 공급자가 상호작용하는 양방향 시장으로 바꾸는 도구로 활용돼야 한다. 시간적·공간적 제약을 허물고 정보를 자유롭게 흐르게 해 의사결정 단축과 불공정·불평등한 금융구조 개선의 방편으로 삼아야 한다. 소비자와 공급자 모두에 유익을 끼치는 이기(利器)로 활용함이 마땅하다. 단명했던 대출장터의 화려한 부활이 기대되는 이유다.

필자 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 부설 금융소비자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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