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새로운 다짐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새로운 다짐
  • 송혁기
  • 승인 2022.03.22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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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 칼럼] 좌우명이나 가훈으로 가장 많이 거론되는 한문 구절 가운데 하나가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다. 국어사전에도 하나의 단어로 등재되어 있을 정도다. 그런데 이 구절의 출처는 분명치 않다. ‘수인사(修人事)’와 천명을 연결하여 쓰인 문장 용례는 있지만 ‘진인사대천명’으로 이어서 쓴 예는 찾기 어렵다. 남송 시대 성리학자 호인(胡寅, 1098~1156)의 역사평론서 『독사관견(讀史管見)』에 보이는 ‘진인사이대천명(盡人事而待天命)’이라는 표현이 거의 유일한 출처이다.

통용되는 백과사전에 『삼국지』의 ‘수인사대천명(修人事待天命)’에서 유래한 말이라는 설명이 있어서 그대로 따르는 글이 많지만, 정사 『삼국지』에는 이런 문구가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그 출처로 실린 화용도 이야기 자체가 정사에는 실리지 않은 허구적 설정이다. 『삼국지연의』의 화용도 장면에도 이 구절은 보이지 않고, 다른 대목에 “일을 꾀하는 것은 사람에 달렸지만 일을 이루는 것은 하늘에 달렸다.(謨事在人, 成事在天.)”라는 비슷한 의미의 용례가 나올 뿐이다.

진인사, 하늘과 하나가 되는 길

문구 그대로의 출처는 불명확하지만 진인사대천명의 전통적 의미는 『맹자』의 ‘수신사명(修身俟命)’에서 찾는 것이 더 가까워 보인다. 맹자는 말했다. “마음을 다하여 실천하는 자는 그 마음의 근원인 성(性)을 알 수 있다. 성을 알면 더 나아가서 성의 근원인 하늘을 알 수 있게 된다. 마음을 보존하여 성을 기르는 것은 하늘을 섬기는 것이며, 요절할지 장수할지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자신을 수양하여 천명을 기다리는 것은 명을 세우는 것이다.”

진인사대천명을 이렇게 이해한다면 진인사와 대천명은 별개가 아니다.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다 한 뒤에 그것이 이루어질지 아닐지는 하늘에 맡긴다’는 의미를 넘어서,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에 마음을 다하는 것 자체가 바로 천명을 나의 몸에 세워 구현하는 것이 된다. 그럴 때 요절이나 장수에 구애될 일이 없고 부귀든 빈천이든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여기에 이른바 ‘안빈낙도(安貧樂道)’의 묘리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모두에게 성인(聖人)이 되는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해서 모두가 성인일 수는 없다. 의연한 삶을 살기에 부족한 보통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진인사대천명은 여전히 철저한 노력 없이 요행을 기대하지 말라는 엄중한 권면이고, 그러겠다는 스스로의 다짐이다. 그리고 한편으로 이는 깊은 위안을 주는 말이기도 하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뒤에도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어떤 두려움이 있어서 그럴 것이다. 언젠가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결과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순간이 있기 마련이다. 그때 서로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건네는 말로 이보다 더 따뜻한 말이 또 있을까.

위안과 결단을 주는 마음자리, 대천명

나아가 진인사대천명은 때로 나약한 우리가 선을 넘지 않을 수 있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요절과 장수, 부귀와 빈천에 개의치 않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욕망과 불안은 우리를 끊임없이 선을 넘는 자리로 내몬다. 다산 정약용 선생 역시 그 자리에서 진인사대천명을 떠올렸다. 오랜 유배 생활 중에 모처럼 풀려날 기회가 왔는데 이이경, 강준흠 등의 방해로 무산되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장남 정학연이 이들에게 굽히고 도움을 청하라고 권하자, 다산은 말했다. “내가 생전에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도 천명이고 돌아가지 못하는 것도 천명이다.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지도 않고 천명을 기대하는 것은 이치에 참으로 맞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이미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다. 그런데도 끝내 돌아가지 못한다면 이 또한 천명일 뿐이다.”

다산은 이 말을 하면서 대단한 의리를 내세우지 않았다. 세상일은 올바르고 그릇됨과 이롭고 해로움의 두 가지 잣대로 결정할 수 있다고 하면서, 올바르고 이로운 길을 취할 수 없다면 올바르고 해로운 길에 머물겠다는 뜻을 밝혔을 뿐이다. 정학연이 권한 것은 그릇되고 이로운 길이었지만 이는 그릇되고 해로운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체념과는 다르다. 대천명의 자세가 만들어주는 마음 한 켠의 공간이다. 그 자리가 있기에 걱정을 툭 놓아버리고 세월의 흐름을 기다릴 여유가 생긴다. 인사를 다하는 것이 곧 천명의 실현이 되는 입명(立命)의 수준에는 이르지 못한다 해도, 욕망과 불안에 굴복해서 천명을 기다리지 못하고 지켜야 할 선을 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진인사대천명의 다짐이 오늘 우리에게 여전히 중요한 이유이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 칼럼은 다산칼럼의 동의를 얻어 전재한 것입니다.

필자 소개
 
송 혁 기
· 고려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 저서
〈고전의 시선〉(와이즈베리)
〈농암집: 조선의 학술과 문화를 평하다〉(한국고전번역원)
〈나를 찾아가는 길: 혜환 이용휴 산문선〉(공저, 돌베개)
〈조선후기 한문산문의 이론과 비평〉(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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