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同行)사회’로 만드는 것이 ‘행복한 국가’에 이르는 길
‘동행(同行)사회’로 만드는 것이 ‘행복한 국가’에 이르는 길
  • 조석남
  • 승인 2022.03.31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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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포용...좌우, 빈부, 세대, 지역의 극단을 모두 아우르고 넘어서야

[조석남의 에듀컬처] 오래 전 ‘같이 갑시다’라는 말이 우리 사회에 많이 회자된 적이 있다.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가 피습 후 닷새 만에 병원 문을 나서며 한국어로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 같이 갑시다"라고 말했다. 피습 당일에도 병상에서 트위터에 한국어로 '같이 갑시다'란 글을 올려 큰 울림을 주기도 했다.

인생은 '너와 나의 만남'이다. '공존공재(共存共在)'인 우리에게 '동행(同行)'은 중요한 삶의 원리요 가치다. '동행'의 사전적 정의는 '함께 행하는 것'이고, '같이 가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동행'보다는 '독행(獨行)'을 선호하고, 심지어는 '디지털동행'(휴대폰, 컴퓨터, TV)에 몰입을 하고 있다. 일인기업, 일인사무실, 혼밥 등 혼자(셀프)가 넘쳐나는 사회다.

'혼자 가면 빨리 가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간다'는 말이 있다. 동행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또한 '누구와 함께 가느냐'이다. 동행의 영어단어로 'companionship'이 있다. '친구'라고도 번역되는 말이다. 이 말은 원래 '빵을 함께 한다'는 의미다. 동행의 의미에 ‘함께 먹는다’는 뜻이 담겨 있는 것이다. 최상위 10%가 나머지 90%보다 힘과 돈이 많은 지금의 우리 사회는 빵을 나눠 먹기가 힘든 사회다. 소수의 재벌회사가 대다수의 경제활동을 지배하는 사회는 '동행사회'가 되기 힘들다.

우리 사회를 ‘동행사회’로 만드는 것이 행복한 국가를 만드는 길이다. 우리의 현주소인 빈부 양극화, 세대·남녀간 갈등, 남북 대립은 동행의 길을 가로막고 있다. 지역·세대·빈부간 격차가 많은 우리 사회는 소위 '격차사회'다. 격차사회의 단절에서 동행사회의 행복으로 이 사회의 방향타를 바꾸어야 한다. 부자와 빈자의 동행, 여당과 야당의 동행, 좌파와 우파의 동행, 남한과 북한의 동행, 외국인·다문화가족과의 동행….

동행에는 선행돼야 할 조건이 있다. 다양성을 받아들이고, 다른 것을 이해해야 동행이 가능하다. 동지와의 동행보다 다른 세력·적과의 동행이 더 가치 있는 일이다. 적을 원수로 생각하지 말고 동행자로 여겨야 한다. 특히 상대방과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태도가 필요하다.

'홀로선 나무는 숲을 이루지 못한다.' 세상 살아가는 이치도 마찬가지다. 20대 대선후 반목과 갈등이 심화되고 '내 탓'보다는 '네 탓'이 넘쳐나는 이 하수상한 시절에 더 많이 생각나는 말이다. 우리 사회는 남의 도움 없이 혼자서는 일을 이루기가 매우 어렵다. 그런데도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중요성을 망각하고 살아가는 게 우리다.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남을 꺾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또 약자는 배제되고 힘이 센 쪽만 행복을 독차지해서도 안 된다. 약자는 배제되고 힘이 센 쪽만 행복하면 결국 공룡의 최후처럼 강자나 약자 모두 공멸할 수 있어서 그렇다. 공멸을 막으려면 강자와 약자가 손잡고 동행해야 가능하다.

이럴 때일수록 화합과 동행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화합과 동행이 이루어지려면 배려 속에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하며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갈등도 이런 마음 속에서는 용해될 수밖에 없다. 핍박하고 저주하는 말과 행동보다 사랑하고 축복하는 말과 행동이 더욱 좋지 않겠는가.

'아름다운 동행'을 위해 우리는 새롭게 가야 한다. 먼저 그늘진 사회, 소외된 이웃을 돌아보아야 하며 아집이 동반된 욕심이 더 이상 공정과 상식을 깨뜨리게 해서도 안된다. 물론 상대방과 경쟁하면서 각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 이런 사회에서 살아가다 보면, 대립과 반목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인간사회에서 일어나는 이런 현상은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하면 상당 부분 줄어들 것이다.

봄은 언제나 소리 없이 우리에게 다가온다. 봄은 격렬한 전투가 아니라 조용히 자신을 드러낸다. 잿빛 산하는 푸르고 붉은 원색으로 바뀌고 우리들 마음에도 따사로움이 감돈다. 각자가 자신의 본래 모습을 드러내는 자유를 만끽한다. 상대를 흉보거나 헐뜯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감싸주며 조화와 균형으로 제자리를 지켜간다.

그래서 봄은 '한편의 교향악'이다. 원색의 음들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고 아름다운 소리와 거친 소리가 한데 어울려 극상의 음을 만들어낸다. 또 자유로움과 서로를 배척하지 않는 본래 색들은 한 폭의 풍경화가 되기도 한다. 한 가지 색상으로는 아름다움을 만들 수 없다. 희고, 붉고, 푸른 것들이 서로를 배려하고 인정해야 비로소 봄의 미가 완성될 수 있다.

볼테르는 "나는 당신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지만, 당신의 말할 자유를 위해서는 같이 싸우겠다"는 명언을 남겼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포용해야 한다. 좌우, 빈부, 세대, 지역의 극단을 모두 아우르고 넘어서야 보다 '희망찬 봄'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자 소개>

조석남 (mansc@naver.com)

- 극동대 교수

- 전 한국폴리텍대학 익산캠퍼스 학장

- 전 서울미디어그룹 상무이사·편집국장

- 전 스포츠조선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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