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치(官治)금융의 여전한 민낯...정부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금융
관치(官治)금융의 여전한 민낯...정부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금융
  • 권의종
  • 승인 2022.04.25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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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치 족쇄 채워지고, 정치·인치(人治) 굴레까지 덧씌워진 현실에서 금융 선진화는 ‘공염불’에 그쳐

[권의종 칼럼] 만만한 게 금융이다. 은행은 덩치만 컸지, 정부 앞에만 서면 한없이 작아진다. 심한 표현으로 고양이 앞에 쥐 신세다.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야 한다. 금융당국으로부터 오찬 간담회 호출을 받는 순간 은행장들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또 무슨 주문이 나올지 조마조마하다. 회의 형식은 자율 결의이나 실제는 강제 지시다. 목구멍에 밥이 안 넘어간다. 더부룩한 속에 숙제만 떠안고 귀행한다. ‘관치금융’의 여전한 민낯이다.

이러는 정부는 그래도 양반이다. 정치권은 이런 형식적인 절차도 무시하기 일쑤다. 일방적으로 발표부터 하고 본다. 금융당국이나 은행들은 언론 보도를 보고서야 알 때가 많다. 그때마다 호떡집에 불난 듯 내용 파악에 부산을 떨어야 한다. 이해관계자나 관계 기관 등과의 협의가 충분치 못하다 보니 현실과 동떨어진 대책이 나오곤 한다. 하기야 협의를 해봐야 반대할 게 뻔하고 생색도 안 나는지라 그럴 것이다. ‘정치금융’의 엄연한 실체다. 

금융 개입의 관행은 실로 뿌리가 깊다. ‘한국 금융사는 관치의 검은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금융을 정책의 도구로 삼았다. 공공성이라는 핑계로 은행의 경영과 가격기구에 무시로 개입했다. 현란한 접두어가 붙여진 이명박 정부의 녹색금융, 박근혜 정부의 창조금융, 문재인 정부의 사회적 금융이 하나같이 그랬다. 그때마다 은행들은 사회적 책임의 범주를 넘어 금융의 수단화, 복지의 도구화 강요 앞에 순순히 굴종했다.

‘청년희망적금’도 그 한 예다. 정부가 예산으로 지원하고 은행이 고금리 혜택을 준다. 이자소득세도 면제다. 월 불입 한도 50만 원씩 24개월간 넣으면 최대 36만 원의 저축장려금이 지급된다. 금리는 연 5%, 은행에 따라 연 6%까지 쳐준다. 기껏 높아봤자 3%대인 은행권 2년 만기 정기적금 금리의 두 배 수준이다. 예상의 7배가 넘는 290만 명이 가입했다. 팔면 팔수록 손해라서 은행 부담이 막심하다. 

‘한국 금융사는 관치의 흑(黑)역사’...금융의 원리와 상식에 어긋나는 시장 개입 ‘뿌리 깊어’

윤석열 당선인이 공약한 ‘청년도약계좌’는 한술 더 뜬다. 금융당국에서조차 “이건 보건복지부에서 만드는 게 바람직하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그만큼 복지의 성격이 강하다는 얘기다. 은행들도 “지금까지 이런 적금은 없었다”라며 당황해한다는 보도가 전해진다. 청년 1인당 매달 70만 원씩 모아 1억 원을 만들어준다. 최하위 소득 구간 가입자에겐 정부가 월 40만 원까지 지원한다. 

목돈 마련을 도우려는 취지는 이해된다. 금융의 원리와 상식에는 어긋난다. 일반 금융상품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만기가 10년 초(超)장기다. 2년 내외 적금 만기의 5배다. 복리 3.5% 이자율도 과도하다. 현행 2년 만기 적금 금리는 높아봤자 3%대고 그나마 단리 적용이다. 은행이 주는 이자만도 1,300만 원이 넘는다. 이쯤 되면 ‘인치(人治) 금융’이라 칭할 만하다.

금융권은 당해도 말이 없다. 하도 오래 정부에 치이고 정치권에 당해서 체념한 것인지. 아니면 정부 보호막 안에서 ‘이자 장사’만 해도 역대급 실적을 거두는 판에 굳이 나설 필요가 없어서인지. 아마도 둘 다일 것이다. 은행에서 목소리를 내봤자 정부나 정치권의 심기나 건드리지 이를 들어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차라리 관치를 용인하는 대신 실속을 차리는 게 정부와 정치권과 마찰을 피하면서 은행 수익에도 도움이 될 거라는 얄팍한 계산을 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어디 그런가. 모두에게 유리한 비책은 세상에 없다. 한쪽에 좋으면 다른 쪽엔 손해다. 누군가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청년희망적금처럼 은행이 높은 이자를 지급하면 그 돈이 어디서 나오겠는가. 필경 예금자에게 이자를 덜 주거나 대출자로부터 이자를 더 받아야 한다. 결국 금융소비자 부담이다. 생색은 정부와 정치권이 내고 피해는 국민이 당하는 꼴이 된다.

금융에 대한 부정적 인식부터 바꿔야...‘자율 경영’ 염원하는 은행권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금융에 대한 부정적 인식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은행을 마치 불로소득이나 챙기는 부도덕한 집단처럼 몰아가는 건 옳지 않다. 시장에서 결정되는 예금금리를 무리하게 올리라 하고, 대출금리를 마구 내리라는 요구 또한 정의롭지 못하다. 아무리 금융업에 규제가 필요하고 사회적 책임이 크다 해도 은행도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이다. 안정된 수익을 바탕으로 지속 가능한 금융이 이뤄지려면 건전성과 자율성만큼은 최대한 보장됨이 마땅하다.

그런 점에서 은행연합회가 지난 1월 대선주자 캠프에 전달한 ‘금융산업 혁신과 국민 자산증식 기회 확대를 위한 은행권 제언’은 시사하는 바 크다. “은행 서비스는 공짜라는 인식, 금융산업은 다른 산업을 지원하기 위한 도구와 수단이라는 사회적 통념을 없애 달라”는 주문. 구구절절 옳은 말이다. 정부가 사회문제 해결 비용을 민간 은행에 부담시키고, 민간 금융회사의 가격에 개입하는 행태를 새 정부에서는 하지 말아 달라는 하소연이 절박하게 와닿는다.

금융산업 발전 방안의 하나로 제시된 ‘혁신과 자율·책임에 기반한 경영환경 조성’에 여러 의미가 녹아 있다. 은행들이 금융당국과 정치권에 품어왔던 해묵은 고충이 두껍게 깔려 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은행들이 각종 금융지원에 나서고 있음에도 온갖 정책사업에 ‘동원’되는 예가 잦다는 불만을 에둘러 표현한다. 은행은 서비스 수수료를 원가에 근거해 현실화할 수 없고, 배당도 간섭받아 주주환원 정책을 펼치기 어렵다는 고충이 행간에 흥건히 괴어 있다.

새 정부의 금융산업 발전에 대한 청사진은 아직 감감무소식이다. 되레 은행 산업의 경쟁력을 해칠 수 있는 대중영합주의 제도 도입만 예고되는 상황이다. 지나 보면 알겠지만, 어찌 됐든 관치의 족쇄가 채워지고 정치와 인치의 굴레까지 덧씌워진 현실에서는 금융이 힘을 쓸 수 없다. 과도한 개입으로 시장 왜곡이 일상화돼서는 금융 선진화를 이뤄내기 어렵다. 입으로만 외는 헛된 염불로 끝나고 말 것이다. 

필자 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경영학 박사)
- 서울이코노미포럼 공동대표
- 전국퇴직금융인협회 금융시장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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