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과 수운이 만난 서양, 그리고 지금 우리는?
다산과 수운이 만난 서양, 그리고 지금 우리는?
  • 백민정
  • 승인 2022.04.25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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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민정 칼럼] 나는 요즘 한참 『동경대전』을 읽고 있다. 동학을 공부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내가 품은 첫 의문은 수운(최제우:1824-1864)이 왜 그토록 하늘님, 천주(天主)를 만나고 싶어했을까이다. 경신년(1860년) 4월 5일, 그 사이 5년이 넘도록 지성으로 기도했던 수운은 애타게 만나고 싶었던 하늘님과 대면한다.

그날의 극적인 상봉은 『동경대전』「포덕문(布德文)」과 「동학론」, 『대선생주문집』 여러 대목에 등장한다. 자신을 상제(上帝)라고 말하며 엄포를 놓는 하늘님 앞에서 수운은 당황하고 두려워했지만, 고대했던 상제의 첫 발언에 실망하여 뿔이 나서 더는 상제의 말을 듣지 않으리라고 맹서한다.

수운과 상제의 첫 대면은 여러 곳에 묘사되어 있지만, 나는 세칭 ‘상제’라는 존재에 맞서던 수운의 모습에 더 큰 흥미를 느꼈다. 더구나 수운은 상제 당신의 가르침이란 것이 결국 서도(西道)를 말하는 것이냐고 반문한다. 여기서 서도란 서학(西學)과 천주학을 말한다. 수운이 예수회 신부 마테오 리치(Matteo Ricci:1552-1610)가 한문으로 쓴 교리서 『천주실의』를 읽고 깊이 고민했던 것은 선배, 동학들의 연구에 드러나 있다.

『천주실의』는 18세기 중엽 조선에 널리 퍼졌고 다산(정약용:1762-1836)도 20대 초반 이 책을 열심히 읽었다. 친척 이벽(1754-1785)을 통해서 서양의 책에 눈뜨게 된 다산은 자신이 한때 서학과 천주학에 빠져서 그것을 깊이 사모했다고 고백한다.

다산과 수운, 이들은 왜 서학에 충격을 받고 고민하며 괴로워했을까? 18-19세기 이들이 만난 서양은 어떤 문명의 모습으로 다가왔을까? 수운은 서양인이 작은 부귀를 탐하지는 않지만 동방 천하를 공격하여 쟁취하고 교회당을 세우며 서양의 도를 행하는 것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다[「布德文」].

그는 이들의 위력을 간파했다. 서양인은 전쟁을 일으키면 반드시 승리하고 일을 추진하면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가 없다고 했다. 아편전쟁을 두 차례나 일으켜서 중국의 심장을 함락하고 이제 동방 문명을 무너뜨리기 직전이었으니 어찌 두렵지 않았겠는가. 수운이 보국안민(輔國安民)의 계책을 고심한 것은 이런 일촉즉발의 위기의식 때문이다.

중국의 몰락은 유교문명의 권위를 땅에 떨어뜨렸다. 그리고 조선의 유교문명을 뒷받침하던 성리학, 주자학의 권위도 추락시켰다. 조선문명의 주인공이라고 자부한 사대부들, 다산 같은 유학자도 더는 성리(性理) 개념에 매달릴 수 없었다. 상제와 천주라는 더 강력한 존재에 대한 고민은 이런 시대정신의 부재에서 출현한 불가피한 선택 가운데 하나였다.

다산은 푸른 유형의 하늘[天]이 우리가 공경하는 상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상제가 하늘과 땅과 귀신과 인간 외부에 있으면서 이들 만물을 만들고 다스리며 편안히 길러주는 자라고 보았다(『春秋考徵』). 특히 상제는 영명(靈明)한 앎[靈識, 靈知慧識]을 가진 존재라서 우리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항상 인간 가까이서 인간의 모든 행위를 감독하고 규찰한다.

더구나 그는 인간이 육체는 부모에게 받았지만 성령은 하늘로부터 받았다고 구분했다(形軀受之父母, 不可曰無始也, 性靈受之天命, 不可曰無始也.『論語古今註』). 다산은 1789년 과거에 합격해서 국왕 정조의 『대학』 세미나에 참여했을 때도, 형체가 없는 허령한 마음은 육체를 구성하는 혈육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태어날 때 하늘[상제]이 부여한 것이라고 답변했다(『大學講義』).

그는 젊었을 때부터 이미 인간의 마음, 즉 영체(靈體, 靈明之體)가 부모의 혈육이 아닌 상제에게서 온 것이라고 믿었다. 다산은 상제의 영명함이 인간의 영명한 마음에 직접 닿아 있다고 말한다.

다산의 이런 관점은 서학, 천주학을 이단시했던 정부 관료들의 눈에 명확하게 포착되었다. 다산 사후에 반포된 정부의 척사윤음을 보면 관료들이 서학의 쟁점을 분명히 인지했음을 알 수 있다.

“저들은 나를 낳은 이는 육신(肉身)의 부모(父母)이고 천주(天主)는 영혼(靈魂)의 부모라고 하니, 친애하여 존숭함이 천주에 있고 이 부모에게 있지 않아 스스로 부모와 절연하고 있다. 과연 혈기(血氣)의 천륜(天倫)으로서 이것이 차마 할 수 있는 행동인가?”(『헌종실록』6권, 1839년 10월 18일).

1866년에 반포된 고종의 척사윤음을 하나 더 살펴보자. “그들이 말하길 ‘천주학(天主學)은 하늘[天]을 위주로 하는 학문이 아니다.’라고 한다. 그들은 ‘하늘은 스스로 이루어질 수 없다...만물이 만물로 되는 것은 반드시 그것을 만들어주는 자가 있은 다음에야 가능하니 천주가 곧 만물을 만들어 낸 시초다.’라고 말한다...저들이 말하는 ‘하늘을 만들어냈다는 천주’란 과연 어떤 존재인가? 『주역』에서 형체로 말하면 ‘하늘(天)’이라고 하고 모든 것을 주관한다는 점에서 ‘상제(上帝)’라고 했으니....하늘(天) 외에 상제가 별도로 있지 않다...저들은 하늘과 상제의 이름과 지위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그저 둘로 갈라놓고 겉으로만 하늘을 공경하는 척하고 속으로는 하늘을 경시한다.”(『고종실록』3권, 1866년 8월 3일).

정부 관료들은 자연의 조화를 상징하는 하늘[天] 외에 인격적 주재자[上帝, 天主]는 따로 없다고 말한다. 다산에게 상제[皇皇上帝]는 만물의 할아버지[萬物之祖], 천신들의 우두머리[百神之宗], 내 조상과 나의 혼(魂)이 부합해야 할 가장 신령스런 존재[皇祖之神]였다. 이 점에서 다산의 상제는 조상 모델을 극대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산은 예학자였고 나와 조상 그리고 상제의 신명을 하나로 묶는 예(禮)의 수행을 자기 책무로 삼았다. 그럼 수운이 갈망한 천주는 어떠했나?

수운이 대면한 하늘님은 인간 없이는 자신의 공을 이룰 수 없는[勞而無功] 존재다. 하늘님을 인간 안에 모시고 자신과 상대를 하늘님처럼 공경해야 한다[侍天主]. 내 안에 신령(神靈)이 있고 밖으로 기화(氣化)가 있으니 세상 모든 사람이 서로 떨어져 있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고 설파한다[「東學論」].

선생의 가르침이 양도(洋道, 西道), 양학(洋學, 西學)과 어떻게 다른지 묻는 제자에게 수운은 내가 동(東, 조선)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깨달았으니 자신의 학문은 동학이지 서학으로 이름 붙일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東學論」].

다산과 수운 그리고 서학의 세 갈래 길은 서로 만나고 멀어지며 다시 해후하는 것 같다. 20세기 세계사의 폭풍을 겪고 오늘의 우리는 어디쯤 와 있을까? 나는 다산 시대에 충효열 강상 윤리가 횡행하는 것을 비판했고, 개화기 이후부터 부지기수로 난립했던 신종교들의 등장 역시 의문스럽게 지켜봤다. 무엇을 그토록 우려하고 갈망했던 것일까? 그들이 찾던 것은 무엇이며, 어떤 구원을 바란 것일까?

마치 방관자처럼 역사의 밖에서 이런 현상을 지켜보던 나는 다산 그리고 수운의 경험 안으로 들어가 함께 호흡하면서, 그들에게는 있고 나에게는 없는 것이 무엇인지 감지하게 되었다. 나에게는 되물어볼 상제도, 천주도 없다. 미더운 말, 미더운 사람, 미더운 가치, 내 삶의 신념은 무엇일까? 수년 동안 갈망하며 하늘님을 찾던 수운의 기도 행각에서, 나는 내 마음의 성소(聖所), 교회당은 어디인지 자문해본다.

경쟁, 살아남기, 학문적으로 성공하기, 내가 추구한 극기(克己), 위기지학(爲己之學)은 결국 이런 목적을 위한 수단이었을까? 나는 이들과 만나면서 나의 고독이 개인의 외로움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내가 추구할 신념과 가치의 부재, 시대정신의 빈곤에 기인한다. 서양문화의 세례를 흠뻑 받은 나, 오늘의 우리는 이곳 여기에서의 가치, 우리 문명을 어떻게 주조해나가야 할까?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 칼럼은 다산칼럼의 동의를 얻어 전재한 것입니다.

필자 소개

백 민 정(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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