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천서원(德川書院)과 성호학(星湖學)의 여운
덕천서원(德川書院)과 성호학(星湖學)의 여운
  • 김학수
  • 승인 2022.05.16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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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수 칼럼] 경남 산청에 남명(南冥) 조식(曺植)을 제향하는 덕천서원(德川書院)이 있다. 과거에는 진주 덕산(德山) 땅인데, 이른바 ‘지리산의 정령(精靈)’을 받아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르기에 적합한 명지로 일컬어진다. 더구나 이곳은 조식의 만년 강도처였기에 김해의 산해정(山海亭), 합천의 뇌룡정사(雷龍精舍)와 더불어 경의학(敬義學) 본산으로서 위상을 점했고, 지금도 남도 유림에게는 하나의 성소(聖所)처럼 여겨지는 인문공간이다.

조식 사후 서원을 창건한 것은 최영경(崔永慶)·하항(河沆) 등 남명문하의 선진들이었고, 임란에 따른 중건의 책무는 이정(李瀞) 등 후진들의 몫이 되었다. 17세기 초중반 남명학의 종주이자 덕천서원 산장(山長)으로서의 확고한 위상을 다진 인물은 겸재(謙齋) 하홍도(河弘度)였다.

그는 당초 최영경이 찬정(撰定)했던 덕천서원 상향축문(常享祝文)을 개찬하여 서원 운영에 ‘겸재매뉴얼’을 주입시켰고, 미수(眉叟) 허목(許穆)과의 긴밀한 교계를 통해 남명학의 세련성(洗練性)을 모색했다. 허목의 ‘덕산비(德山碑;南冥碑)’가 그의 계제적 역할 없이 남도 땅에 세워지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하홍도가 추구했던 남명학과 근기남인학의 연대와 제휴는 식산(息山) 이만부(李萬敷)의 덕천서원 원장직 행공(行公)으로 더욱 확장성을 갖게 된다. 이만부가 누구인가? 미문고제(眉門高弟)로서 성호학의 도도한 물줄기에 일파(一波)를 더해주었던 석학이 아닌가. 그의 행공은 종전까지 남도 땅을 벗어난 적이 없었던 산장 천망권(薦望圈)의 지역적 장벽을 허무는 것이었고, 재임 기간 중 두 차례의 덕산행(德山行)은 남명의 후학들이 ‘특립독행(特立獨行)’의 선언적 가치에서 벗어나 독서(讀書;工夫)의 중요성을 각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만부가 허문 장벽은 근기남인의 연이은 원장 초빙으로 이어졌고, 1745년 단성현감 재직시 그 직을 수락했던 채응일(蔡膺一) 또한 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이로부터 약 40년이 지난 1785년 정조조 남인의 영수 채제공(蔡濟恭)이 원장직을 맞게 된다. 아버지 채응일을 이어 부자 양대가 산장을 맡는 진기록을 수립한 셈이다. 이후 그는 1796년 수상의 직함으로 원장에 재초빙되면서 서원 중수라는 대형 프로젝트를 몸소 지휘하게 된다.

채제공의 기획은 주밀했다. 자신의 원장직 수락 몇 개월 전에 정재원(丁載遠)을 진주목사로 보내 중수에 따른 행정·재정적 지원 인프라를 미리 구축해두었다. 하필 정재원이었을까? 이 대목에서 그가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의 아버지라는 사실이 자못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전후 4개월에 걸쳐 진행된 중수사업은 사우·강당 등 서원 본체는 물론 세심정(洗心亭)·취성정(醉醒亭)과 같은 부속 건물에까지 미쳤다. 1796년 6월 2일 낙성연을 겸해 치러진 백일장(白日場)은 말 그대로 화려한 축제였다. 이제 남은 것은 중수·환안·백일장에 이르는 사문(斯文) 성사의 명장면들을 문자로 담아낼 거장(巨匠)이 필요했다. 채제공이 그 적임자로 낙점한 사람은 다름 아닌 금대(錦帶) 이가환(李家煥)이었다.

성호(星湖) 이익(李瀷)의 종손(從孫)으로 가학을 통해 성호학을 계승한 그는 명세(鳴世)의 지성(知性)이자 비운의 정치가로 잘 알려져 있다. 이가환은 ‘덕천서원중수기(德川書院重修記)’에서 조식을 ‘태산교악(泰山喬嶽)과 같은 중량감으로 학문과 행신의 대체를 파악한 철인(哲人), 경의(敬義)를 일월(日月)로 삼고 진지(眞知)를 실천한 백세의 사표(師表)’로 칭송해마지 않았다.

그랬다. 경의학(敬義學)의 전당은 허목이라는 석학을 통해 도회적 세련성을 흡입했고, 이만부를 통해 강학(講學)의 중요성을 인지했으며, 채제공을 통해 성호학이라는 든든한 학문적 후원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로부터 한 갑자 뒤인 19세기 중반 김해부사로 부임한 성재(性齋) 허전(許傳)이 영남지식인들을 규합하여 성호학의 영남적 확장을 모색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역사적 맥락의 점렴(粘連)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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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칼럼은 다산칼럼의 동의를 얻어 전재한 것입니다.

필자 소개

김 학 수(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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