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연령만 기준 삼는 임금피크제는 위법, 무효”
대법원, “연령만 기준 삼는 임금피크제는 위법, 무효”
  • 이보라 기자
  • 승인 2022.05.26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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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 이유 없으면 차별을 금지한 고령자고용법 위반”
“도입의 타당성, 업무량 저감 여부 등 적정성 갖춰야”
공공운수노조 관계자들이 지난 해 6월 서울 종로구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앞에서 공공기관의 일방적 임금체계 개편 중단과 임금피크제 지침 폐기를 촉구하는 집회를 갖고 있다./연합뉴스

[서울이코노미뉴스 이보라 기자] 합리적인 이유 없이 연령만을 이유로 임금을 깎는 '임금피크제'는 현행 고령자고용법을 위반한 것이므로 무효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사업주가 '임금, 임금 외의 금품 지급 및 복리후생'에서 합리적인 이유 없이 연령을 갖고 노동자를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 고령자고용법 4조의4 1항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임금피크제가 합리적인 이유를 인정받으려면 △도입 목적의 정당성과 필요성 △ 실질적 임금 삭감의 폭이나 기간 △임금 삭감에 준하는 업무량·강도의 저감 여부 △감액 재원이 도입목적에 사용되었는지 여부 등에서 적정성을 갖춰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했다.

설사 노사가 임금피크제에 합의했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합리적인 이유 없이 단순히 연령을 기준으로 노동자의 임금을 삭감하는 것은 차별이라는 것이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26일 퇴직자 A씨가 자신이 재직했던 한 연구기관을 상대로 낸 임금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이 같은 이유를 들어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고령자고용법에는 모집과 채용에서의 차별에만 벌칙 규정이 있으므로 임금에 관한 차별 금지 규정은 강행 규정이 아니라는 피고 측 주장에 대해 “고령자고용법 4조의 4 1항의 규정 내용과 입법 취지를 고려하면, 이 조항은 연령 별을 금지하는 강행규정에 해당한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 사건 임금피크제를 전후해 원고에게 부여된 목표 수준이나 업무의 내용에 차이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임금 삭감에 준해 업무량이나 업무 강도가 줄어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합리적 이유’ 논란과 관련, "합리적인 이유가 없는 경우란 연령에 따라 근로자를 다르게 처우할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거나 달리 처우하는 경우에도 그 방법·정도 등이 적정하지 않은 경우를 말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원고 A씨는 1991년 B연구원에 입사한 뒤 2014년 명예퇴직했다.

연구원은 노조와의 합의를 통해 2009년 1월에 만 55세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했고, A씨는 2011년부터 적용 대상이 됐다.

A씨는 임금피크제 때문에 직급과 역량 등급이 강등된 수준으로 기본급을 지급받았다며 퇴직 때까지의 임금 차액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사건의 핵심 쟁점은 B연구원의 임금피크제가 고령자고용법 4조의 4를 위반했는지 여부였다.

1심과 2심은 "B연구원의 임금피크제가 원고 A씨를 포함한 55세 이상 직원들을 합리적 이유 없이 연령 때문에 임금과 임금 외 금품 지급 및 복리후생에 관해 차별하는 것"이라면서 "고령자고용법에 위반돼 무효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원고 A씨의 승소 판결을 내렸다.

피고인 B연구원 측은 고령자고용법에는 모집과 채용에서의 차별에만 벌칙 규정이 있으므로 임금에 관한 차별 금지 규정은 강행 규정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1심과 2심 재판부는 "B연구원의 직무 성격에 비춰 특정 연령 기준이 불가피하게 요구된다거나 임금피크제가 근속 기간의 차이를 고려한 것이라는 사정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B연구원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울러 B연구원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당시 노동조합의 동의를 얻었다고 하더라도 그 내용이 현행법에 어긋난다면 무효라고 판단했다.

임금피크제와 관련해 대법원이 처음으로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함에 따라 개별 사업장별로 임금피크제 도입·시행 방법 등을 두고 노사 간 재논의·협상 등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연합뉴스

임금피크제는 노동자가 일정한 연령에 도달한 뒤 고용 보장이나 정년 연장을 조건으로 임금을 감축하는 제도다.

사회의 고령화 추세 속에서 기업의 부담 경감과 고용 안정을 위해 정년 보장과 임금 삭감을 맞교환하자는 취지로 2000년대 들어 도입되기 시작했다.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일부 사업장에만 적용되던 임금피크제가 본격적으로 확산한 것은 2013년 고령자고용법 개정(2016년 시행)으로 노동자의 정년이 60세 이상으로 늘어나면서다.

박근혜 정부는 '60세 정년' 의무화를 앞두고 임금피크제 확대에 힘을 쏟았고, 이에 따라 2015년 말에는 모든 공공기관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또 300인 이상 기업체 중에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곳이 2015년 27.2%에서 2016년 46.8%로 늘어나는 등 민간 분야에서도 빠르게 확산됐다.

이날 판결은 임금피크제와 고령자고용법의 충돌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에 관한 대법원의 첫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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