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유불급(過猶不及)...정부 지원제도, 가짓수 줄여 효율 높여야
과유불급(過猶不及)...정부 지원제도, 가짓수 줄여 효율 높여야
  • 권의종
  • 승인 2022.06.06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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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효 다한 낡고 해묵은 정책과 제도 수두룩... 새 정부 출범 초기, ‘빼기의 미학’ 실천할 적기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언제부턴가 휴대전화 배터리 소모가 빨라졌다. 통화 중에 갑자기 전화가 끊겼다. 배터리가 다 방전돼 있었다. 다시 충전했는데도 배터리 줄어드는 게 확연했다. 서비스센터를 찾았다. 배터리 수명이 다한 게 아니었다. 휴대전화의 여러 가지 앱이나 기능을 동시에 실행하거나, 앱 자동 동기화를 켜두는 등으로 배터리 소모가 빨라졌다는 진단이 내려졌다.

배터리를 교체할 것까지는 없고 몇 가지 간단한 조치만 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내용인즉 이러했다. 배터리 사용량이 많은 앱을 절전모드로 설정할 것. 알림창의 빠른 설정 목록에서 블루투스, Wi-Fi, GPS 등 사용하지 않는 기능을 해제(OFF)할 것. 배터리를 많이 소모하거나 의심되는 앱을 삭제한 후 사용할 것. 위치기록을 사용하지 않는데 켜져 있다면 설정을 꺼둘 것 등이었다.

젊은이들이야 쉽게 처리할 수 있는 일. 하지만 중장년층 가운데 이를 알아듣고 따라 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쩔쩔매다 유튜브를 검색했다. 그런데 웬걸. 이 조그만 전화기에 무슨 기능이 그리도 많은지 놀라웠다. 그런 부류의 조회 수가 많은 걸로 보아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게 분명했다. 스마트폰의 기본적인 기능을 익히기 위해 따로 공부까지 해야 한다니. ‘스마트폰’은 스마트한 사람만 써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됐든 빠른 배터리 소모는 휴대전화에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면서 기존의 것들을 지우지 않고 그대고 놔뒀던 게 패착이었다. 깔아놓은 앱들이 너무 많았던 게 문제였다. 실제로 사용하지 않거나 사용한 지 오래된 앱이 대부분이었다. 원고를 준비할 때 “더하기는 쉬워도 빼기는 어렵다. 채워 넣는 것보다 덜어내는 게 힘들다”라는 어느 작가의 오래전 언급이 이제야 공감이 갔다.

“더하기는 쉬워도 빼기는 어려워”...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많아서 문제인 ‘풍요 속 빈곤’

풍요의 시대. 집집이 물건이 차고 넘친다. 아까워 버리지 못하고 사기만 하는 바람에 처치 곤란이다. 냉장고에 먹을 게 그득하고 옷장에 입을 게 가득하다. 신발장에도 신발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집안 곳곳에 쓰지 않는 세간이 자리만 차지하고 있다. 그래도 부족해서인지 사재기는 계속된다. 장바구니가 넘쳐나고 택배가 문전성시를 이룬다. 없고 모자라서가 아니라 되레 많아서 문제인 ‘풍요 속의 빈곤’. 요지경 속 같다.

정작 ‘빼기의 미덕’이 발휘돼야 할 곳은 국가 기관이다. 국회 기능부터 그렇다. 입법부로 불려서인지 법을 만들기만 할 뿐, 폐기하는 일은 없다시피 하다. 법이 홍수를 이룬다. 국민이 법에 갇혀 지내는 형국이다. 국회의원 평가를 법안 발의 건수로 하다 보니 너도나도 법 만들기 경쟁이다. 새 정부 들어 자유라는 단어를 유독 많이 구사하나, 법을 없애는 ‘폐법부’를 만들지 않고는 법이라는 감옥에서의 공허한 외침에 그치고 말 것이다.

법이 많아도 너무 많다. 법령집이 빅 데이터를 방불케 한다. 어떤 법이 어디에 있고 어느 법에 무슨 내용이 규정돼 있는지 알 길이 없다. 세법이 대표적인 사례다. 관련 법이 많기도 하지만 내용이 하도 자주 바뀌다 보니 전문가도 알아차리기 힘들다. 종합소득세 계산을 포기한 ‘종포사’, 양도소득세 산출을 포기한 ‘양포사’가 늘고 있다는 소식에 헛웃음만 나온다.

정부나 공공기관도 다를 바 없다. 새 정부가 들어서고 조직의 수장이 바뀌게 되면 으레 한다는 게 정책과 제도를 새로 만드는 일이다. 자신만의 성과를 내려는 의욕은 이해가 간다. 그러면서 과거의 정책이나 제도를 없애지 않고 내팽개쳐 두는 게 문제다. 공무원 책임도 크다. 새 윗선의 구미에 맞춰 새로운 정책과 제도를 만들어대기 바쁘다. 그러니 갈수록 수(數)만 늘어날 수밖에.

정책과 제도를 많이 만드는 게 능사일 수 없어...한정된 재원을 효과가 큰 사업에 집중해야

가짓수 많기로는 중소기업 지원제도를 따를 게 없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다종다양한 중소기업 육성시책을 펴고 있다. 양적인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제도가 너무 많다 보니 어떤 제도가 있는지 파악조차 어렵다. 산업현장에서 바쁘게 일하는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가 그 많은 제도를 스스로 알아서 활용하기를 바라는 자체가 난센스다. 탁상행정의 전형이다.

지원기관에서는 실적 부진을 걱정하고, 기업에서는 있는 제도도 몰라 못 쓰는 어이없는 일이 흔하게 벌어지는 이유다. 오죽했으면 대한민국 중소기업 지원제도를 다 아는 건 신(神)밖에 없다는 자조적 표현까지 회자될까. 양이 많으면 질이 떨어지게 마련. 한정된 재원을 여러 분야에 나눠 쓰다 보면 실속이 없어진다. 소문난 잔치 먹을 게 없는 꼴이 되고 만다.

법과 정책, 제도가 많다고 좋을까. 없앨 것은 없애고 줄일 것은 줄여야 한다. 그래야 효율이 높아지고 시간과 비용도 줄어든다. 정부 지원도 효과가 큰 사업 중심으로 집중하는 게 맞다. 한정된 재원으로 이것저것 다 할라치면 아무것도 못 하게 된다. 일 처리에 대한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필요한 일을 하는 것만 성과가 아니다. 필요치 않은 일을 안 하는 것도 치적으로 인정해야 마땅하다.

실효를 다한 낡고 해묵은 정책과 제도는 없애야 한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새 정부가 출범한 초기가 ‘빼기의 미학’을 실천할 적기다. ‘빼기’는 단순한 ‘없애기’가 아니다. 중요한 일에 역량을 집중하는 혁신이다. ‘뺄셈 선수’가 많아져야 삶이 향상된다. 경제와 사회, 나라가 건강해진다. 지나침이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는 과유불급(過猶不及). 일찍이 공자께서 21세기 대한민국을 향해 던진 화두(話頭)라고 말한다면 너무 억지스러운 비약일까.

필자 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경영학박사

- 서울이코노미포럼 공동대표

- 전국퇴직금융인협회 금융시장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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