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를 고민하는 우리의 심학(心學)
지금 여기를 고민하는 우리의 심학(心學)
  • 백민정
  • 승인 2022.06.27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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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민정 칼럼] 1864년 2월 29일(고종1년) 『일성록』에는 동학죄인 최복술(東學罪人崔福述等)의 공판 기록이 나온다. 최복술은 수운 최제우의 아명이다. 정부 관료들은 ’동학이 동국의 의미를 취했다‘[東學取東國之義]고 말한다.

최복술은 훈학(訓學)을 업으로 삼는 자인데 서양학문[洋學]이 극성한 상황을 두고 볼 수 없어서 양학을 억제하기 위해 동학을 주장했다지만 이는 서양을 흉내낸 것에 불과하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것은 최복술이 주문과 부적을 만들어 유포하고 천주에게 비는 기도행위로 민심을 현혹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서학과 천주학의 맹점을 엄정히 비판하고 조선인으로서 고심하여 일궈낸 학문, 동학을 창도한 최제우로서는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내가 동[조선]에서 태어나서 동에서 받았으니 도는 비록 천도(天道)지만 학문은 곧 동학이다...우리 도는 이곳에서 받아 이곳에서 펼쳤으니 어찌 서(西)라고 부르겠는가.”(『東經大全』「論學文」)

최제우는 조선인이라는 자의식이 분명했다. 그는 『용담유사』 여러 곳에서 ‘아동방(我東方)’이라고 즐겨 표현한다. 동방이란 곧 조선 땅이니 수운이 이곳에서 태어나 조선인으로 생각하고 고민한 것을 토로한 것이다. 수운에게 ‘사문(斯文)’이란 조선인의 글과 사유를 의미했다.

고종시대 『승정원일기』 자료에는 서학[천주학]뿐 아니라 동학을 성토한 글이 상당히 많다. 특히 1893년 교조신원운동이 전개되던 당시 기록을 보면 이단사설이 치성하여 사문(斯文)의 체모가 땅에 떨어졌다고 한탄하는 관료, 유생들의 상소가 빗발친 것을 알 수 있다. 천추만대에 영원할 사문의 권위가 추락했다거나 사문의 일대 괴변이 발생했다고 묘사하거나 황통(皇統)이 끊어짐을 애달파하는 격절한 상소문도 여럿 있다.

유생들에게 그들의 글과 사유란 중화문명의 보고를 담은 것이라야 했다. 그들이 보편적이고 포괄적인 가치를 지향한 노력은 인정해야겠지만 그들이 추구한 사문이 결국 중국 중심의 세계관, 화이론(華夷論)에 기반한 것도 부정하기 어렵다. 유생들의 상소에는 동학이 유학에 의탁했지만 실은 노장도, 불교도, 신설술도, 묵적도 아닌 정체를 알 수 없는 요언지설(妖言之說)이라고 힐난하는 발언이 자주 보인다.

달리 보면 이것은 조선인의 고뇌와 현실 인식을 담은 학문이 그만큼 낯설었다는 것을 방증한다. 유생들은 동학이 기존의 어떤 학문과도 유사하지 않다며 그 출처를 의심했지만 사실 수운의 사유는 지금 이곳에서의 고민과 울분을 담아낸 것이다.

주목할 점은 최제우가 자신의 학문을 심학(心學)이라고 풀이한 점이다. “열세자[13자 주문] 至極하면 萬卷詩書 무엇하며 心學이라 하였으니 不忘其意 하였어라.”[『龍潭遺詞』「敎訓歌」] 정성스럽게 주문을 외는 것이 만권의 시서를 읽는 것보다 나으며 그 뜻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곧 심학이라는 말이다. 마음을 이해하고 훈련하는 심학을 강조한 것은 수운의 발언 여러 곳에 보인다.

그는 자신이 고안한 ‘수심정기(修心正氣)’ 공부법이 공자의 도와 다른 점이라고 자부했다. 수심정기는 내 안의 신령한 마음을 닦고 밖의 신령한 기화(氣化)에 부합하려는 노력을 말한다. 수운은 상제를 만나기 위해 수없이 기도했지만 그가 영접한 신은 무위이화(無爲而化)의 조화로 작용하며 세상 모든 곳에 편재한다. 스스로 만유의 조화를 이루고 생명을 이어가는 신령한 기운, 그것이 수운이 생각한 천주의 모습이다.

그는 인격적이지만 동시에 비인격적이고 외재적이지만 온전히 내재적인 천주의 모습을 우리 “안에 신령이 있고 밖에 기화가 있다[內有神靈 外有氣化]”고 표현했다[『東經大全』「論學文」]. 수운이 강조한 신성경(信誠敬) 세 글자 공부와 수심정기의 마음공부는 나와 너를 연결하는 천주의 생명력, 기화의 신령을 회복하는 길이었다.

그렇다면 수운은 왜 굳이 인격적인 천주에게 기도하고 간구한 것일까? ‘시천주(侍天主)’는 우리 안에 모셔진 신령을 섬기는 것이다. 기화의 신령은 내 안에 있고 자연에도 편재하므로 ‘시천주’는 나를 위함이며 동시에 타인을 섬기는 것이다. 그런데 자기규율과 타인섬김의 심학을 위해서는 외경심(畏敬心)이 필요하다. 두려워할 줄 아는 마음, 나를 넘어서는 존재에 대한 경외감과 두려움이 없으면, 자신과 남을 섬기는 ‘시천주’ 노력도 허망해진다.

천주학을 접한 정약용의 고민도 여기에 있었다. 태허(太虛), 일리(一理), 태극(太極)은 영(靈)이 없으며 지각도 없고 권능도 없다. 영성(靈性)이 없는 것이 어떻게 영적 능력을 가진 인간과 만물을 낳고 주재(主宰), 안양(安養)할 수 있겠는가?(『孟子要義』『春秋考徵』) 정약용은 세상의 주재자가 영성[靈知・靈覺]을 가진 인격적 상제라고 믿었고 인간에게 영명한 마음[靈體]이 있어서 상제와 만날 수 있다고 말한다.

인간 마음과 상제와의 대면을 그는 직통상감(直通相感), 감격임조(感格臨照)라고 표현한다(『中庸講義補』『尙書古訓』). 상제에게 이르러 상제와 감응하고 소통하는 실제 효험이 있다고 본 것이다.

다산과 수운의 고민은 사실 그 유래가 오래되었다. 가까이로 마테오 리치 같은 선교사들의 질문이 계기가 되었지만, 거슬러 올라가면 유학자들 스스로 인격적 절대자와 무위의 원리 사이에서 오랜 시간 고민했다. 주자학의 이기론은 태극의 이(理)에 감정도, 의지도, 사유도, 어떤 조작행위도 없다고 말한다.[『朱子語類』 “蓋氣則能凝結造作, 理卻無情意, 無計度, 無造作.”]

그러나 이황은 주희의 발언을 숙고하면서 도리어 태극의 이(理)에 작용성, 주재력, 사태에 간섭하는 힘이 있다고 생각했다. 감정과 의지와 조작함이 없는 것은 이(理)의 본래 모습, 본체가 무위하는 모습이고, 마음이 머무는 곳에 따라 이가 발현하여 이르지 않음이 없는 것은 지극히 신묘한 이의 작용이라고 구분했다[答奇明彦書・別紙].

이황은 이(理)의 미묘한 움직임이 밝게 드러나 작용하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이를 죽은 물건처럼 오해했다고 고백한다. 이황은 제자에게 우리가 잠시도 상제를 떠날 수 없고 소홀히 할 수 없다고 경계시키고[『艮齋先生文集』 上退溪先生], 국왕 선조에게 올린 글에서는 상제가 높은 곳에서 날마다 우리를 감시하니 상제에게 받은 것을 온전히 실현해야 함을 권고한다[「戊辰六條疏」].

영남 유학자들, 퇴계 이황의 제자라고 자부한 후학들은 이황이 이(理)의 작용성, 인격적 상제를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남긴 것에 당혹스러웠고 이점은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영남의 소퇴계로 불린 이상정(李象靖)은 퇴계의 말을 해명한다. 감정과 의지, 조작이 없는 것은 이(理)의 본래 모습이고 발동하고 낳는 것은 이의 지극히 미묘한 작용이라고 이해했다.

하지만 이가 발동하는 것은 의도를 가지고 조작하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행하고 저절로 그치는 작용이니, 이것은 주재하지 않으면서 주재하는 것이고 무위하면서 유위하는 것[不宰之宰, 無爲之爲]이라고 말한다[『大山集』 讀聖學輯要]. 그는 도체[道體=理]의 무위하는 모습만 보고서 동정・합벽의 기틀이 저절로 그러하다고 생각하면 이것은 이(理)를 죽은 사물처럼 간주한 것이고, 반대로 이에 작용성, 주재력이 있다는 것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무위진인(無位眞人) 같은 존재가 마음에 들어앉아 있다고 여기는 우를 범한 것이라고 비판한다[『大山集』 雜著].

마음 속 무위진인이 인격적 상제의 강림을 빗댄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상정은 퇴계의 발언을 인정하는 듯하면서도 인격적 절대자의 상정을 반대하였다.

영남 유학자들은 인격적 영신(靈神)이 하나의 일물(一物)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만물을 주재하는 형이상자(形而上者)가 될 수 없다고 의심했다. 그러나 다산도, 수운도 영험함을 가진 심령(心靈)과 신령(神靈)이 아니면 외경심을 가질 수 없다고 우려한다. 그들은 유학의 경(敬) 공부, 두려움과 삼감의 의식이 우리가 상제와 천주를 마주할 때 가능하다고 말한다.

좌도혹민의 죄로 죽음에 이른 최제우는 역설적이게도 이황의 심중의 고민을 세상을 향해 공표한 것일 수 있다. 영남 유림들이 주저하고 경계한 상제, 천주의 인격성을 경주 사람 최제우는 ‘侍天主’로 명명했기 때문이다. 수운은 서양인이 천주를 위한다기보다는 오히려 ‘각자위심(各自爲心)’, 자신만을 위해서 빌 뿐이라고 진단한다.

이것은 나와 너를 연결하는 매개의 원리, 신령한 조화를 고민하지 않는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런 진단은 수운이 ‘동귀일체(同歸一體)’를 고심하게 만든다. 함께 하는 공속적 존재로서의 공공심(公共心)은 수운의 심학이 추구한 또 하나의 축이다. 나는 최제우의 동학이 지금 이곳 조선에서 스스로 닦는 외경심과 함께 하는 공공심을 지향한 동방심학(東方心學)이었다고 생각한다.

최제우는 삶의 지반을 잃고 유리되어 떠도는 서민들의 고달픈 생존 현장을 직접 목도했다. 그 역시 주유팔방(周遊八方), 오랜 시간 세상을 떠돌았다. 전염병이 돌고 민란이 빈번하고 외세의 침입이 그치질 않던 때 어디도 마음 붙일 곳이 없던 이들은 정감록, 참위서, 타력신앙에 몸을 맡겼다.

조선이 직면한 괴로운 시운을 지켜보던 최제우는 천운(天運)의 성쇠를 예의주시한다. 그는 오만년 인간의 문명, 인문(人文)을 다시 개벽할 때가 왔음을 직감한다. 그의 ‘다시개벽’은 심학의 일신으로 시작된다. 두려워할 줄 아는 마음, 함께 살고자 하는 마음을 직조하는 것이 수운의 마음개벽이다.

동귀일체하는 세상의 비젼, 수운의 꿈은 『용담유사』 노랫말에 전한다. 수운이 도성입덕(道成立德)한 현숙한 군자들을 호명했던 것처럼, 우리시대에도 깨어 있는 정신을 공유한 나 한 사람, 너 한 사람이 소중하다. 세상이 인심을 바꾼다지만 마음이 세상을 바꾸는 것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 칼럼은 다산칼럼의 동의를 얻어 전재한 것입니다.

필자 소개

백 민 정(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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