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빌린 돈을 주식-가상화폐에 날렸어도 안갚아도 된다니?
법원, 빌린 돈을 주식-가상화폐에 날렸어도 안갚아도 된다니?
  • 권의종
  • 승인 2022.07.11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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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회생법원, 파산 수준까지 간 사람의 경우 만약 빌린 돈을 투자하는 데 썼으면 그 빚을 갚지 않아도 된다고 결정

”무슨 판결이 이런다냐?“...사라진 상식, 고사된 공정, 저버려진 정의, 아무리 취지가 좋아도 할 게 있고 안 할 게 있어

[권의종 칼럼] “무슨 판결이 이런다냐???” 대학교수 한 분이 전해온 남도 말투의 구수한 문자 메시시다. “‘주식·가상화폐 투자, 빚 없는 걸로 쳐 주겠다’ 결정 논란”의 제호를 단 방송사 뉴스 파일도 함께 보내왔다. 이 내용을 “꼬~~~옥” 칼럼으로 다뤄달라며 신신당부했다. 내용이 가관이다. 살다 살다 이런 판결은 처음 봤다. 보도된 내용은 이러했다.

“서울회생법원이 개인 회생을 판단할 때 새 기준을 적용하기로 했다. 주식, 가상화폐 투자로 손해를 본 돈은 빚 계산에서 빼주겠다는 것이다. 법원이 파산 수준까지 간 사람의 경우에는 만약 빌린 돈을 투자하는 데 쓴 것이면 그 빚을 갚지 않아도 된다고 결정했다. 돈을 빌려 가상화폐에 투자했다가 모두 손실을 본 경우 이 돈은 다 사라진 것으로 판단해, 월급 중에 최저 생계비를 빼고 남은 돈을 3년 동안 꾸준히 갚으면 모든 빚을 갚은 것으로 해주기로 했다.”

투자 실패자를 사회에 복귀시킬 특별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법원 판단은 이해가 간다. 불운한 채무자를 구제하려는 취지에 토를 달기 어렵다. 그래도 할 게 있고 안 할 게 있다. 빚은 갚아야 한다. 갚지 않아도 되면 빚이 아니다. 기업회생을 정 시키려면 채무 일부 탕감에 그쳐야 한다. 빌린 돈을 주식이나 가상화폐에 투자했다고 갚지 않아도 된다는 논리는 더더욱 괴이하다. 상식이 사라지고 공정이 고사(枯死)되고 정의를 저버린 처사다.

상환의무를 면제할 때 생기는 부작용과 악영향이 예상 외로 크다.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가 가장 걱정된다. ‘돈을 빌려 투자해보고 잃어도 그만’이라는 못된 습성이 생겨날 수 있다. 정부 지원이나 금융회사 대출은 ‘눈먼 돈“으로 여기는 그릇된 풍조가 고개를 들 수 있다. 힘들어도 빚을 꼬박꼬박 갚아가는 사람만 바보가 된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꼴이다.

“빌린 돈을 가상화폐에 투자하면 안 갚아도 돼”...채권자에 피해, 채무자 도덕적 해이 우려

그러잖아도 회생제도는 금융회사 등 채권자에 상당한 피해를 안긴다. 돈을 빌려준 개인이나 국가, 금융기관과 거래처는 채권 일부가 탕감되는 것만으로도 큰 손해다. 그런 점에서 법과 양심에 따른 사법부 판결 또한 최소의 공정성은 담보돼야 맞다. 채무자의 곤궁한 처지만 생각할 것이 아니다. 채권자의 곤란한 입장도 함께 헤아려야 마땅하다.

대출금이 쓰인 곳에 따라 갚아도 되고 안 갚아도 된다는 결정은 가당치 않다. 사리에 안 맞는다. 주식이나 가상화폐 투자에 썼으면 안 갚아도 되고, 사업자금 등의 용도로 사용하면 갚아야 하는 건 엄청난 모순이 아닐 수 없다. 돈을 쓴 사람은 채무자이지 빌려준 채권자가 아니지 않은가.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채무자의 투자 실패를 채권자 부담으로 돌리는 건 어불성설이다.

금융질서를 무너뜨릴 수 있다. 돈을 어디에 썼느냐에 따라 상환의무 유무가 결정되는 불안정하고 불합리한 구조에서 어떤 개인이나 금융회사가 선뜻 돈을 꿔주려 하겠는가. 영리한 금융회사는 오히려 이런 일을 대비해 자구책을 세우려 할 것이다. 대출 심사를 한층 까다롭게 하거나 대출이자를 더욱더 올릴 수 있다. 그 경우 불이익은 성실한 채무자에게 돌아가고 말 것이다.

상식에 반하는 일이 어디 판결에만 있으랴. 공정하고 공평해야 할 금융회사에선 원칙에 반하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진다. 태반이 관치금융의 결과이긴 하나 금융회사에도 책임이 없는 건 아니다. 금융당국으로부터 부적절한 지시가 내려져도 군말 한 번 못하고 그저 따르기만 하는 행태가 실망스럽다. 금융의 자율성은 확보할 의지도 능력도 없어 보인다. 그런 사례를 두 가지만 들어 보자.

“개인기업은 기업 채무 갚아야 하고, 법인기업은 안 갚아도 돼”...불공정 부추기는 금융정책

하나는 법인기업의 대표자나 무한책임사원, 최대 주주 등에 대한 정책 금융기관의 연대보증 폐지다.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 지역 신용보증재단,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등에서 법인기업 대표자를 연대보증인으로 못 세우게 했다. 재도전 생태계 구축과 정착을 위해 필요하다는 명분이었으나 이로 인해 금융질서 문란과 도덕적 해이가 도를 넘고 있다.

대표자가 기업 채무에 대한 연대보증을 서지 않다 보니 책임경영은 기대조차 힘들어졌다. 예전처럼 사업에 전력투구하는 기업가 정신을 발휘하는 경우를 찾아보기 어렵다. 사업이 조금만 힘들어져도 회생절차를 신청하거나, 폐업 후 재창업을 시도하는 예가 흔하게 목격된다. 그 결과 돈을 빌려준 금융회사는 대표자 등 사업주로부터 채권 회수를 못 하게 된다. 돈을 떼이고 만다.

개인기업과 법인기업 간 형평성도 문제다. 개인기업은 대표가 곧 기업이다 보니 대표가 기업 채무를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 법인기업은 그렇지 않다. 법인과 대표자 개인의 인격이 달라 대표자가 법인 채무에 상환의무를 안 져도 된다. 그래서 알만한 사람들은 법인기업 형태의 창업을 선호한다. 이런 사실을 모르거나 자본금을 마련할 여력이 없는 영세사업자나 개인기업 형태로 사업을 시작한다.

더 큰 무리수는 따로 있다. 소상공인 대출 만기 연장 및 원리금 상환유예다. 물론 이는 코로나19 피해 기업에 도움이 되는 시의적절한 조치였다. 다만, 은행이 이자를 2년이나 못 받게 한 것은 정도가 지나쳤다. 은행이 이자를 못 받는 건 상인이 물건값을 못 받는 거나 진배없다. 그러고도 은행이 사상 최대의 돈 잔치를 벌이는 현실은 채무자에게 과도한 이자를 받고 있다는 방증일 수 있다. 아무리 바빠도 바늘 허리 매어 쓸 수 없다. 바른 길이 빠른 길이다.

필자 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서울이코노미포럼 공동대표, 경영학박사

- 전국퇴직금융인협회 금융시장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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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다영 2022-07-12 23:41:13
멋진말씀 환영합니다 극공감꾸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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