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어스테핑’을 과거 잣대로 재단한다고?
‘도어스테핑’을 과거 잣대로 재단한다고?
  • 김명서
  • 승인 2022.07.16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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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권위 외치며 역대 대통령 언행을 ‘모범답안’인 양 강요

[김명서 칼럼]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출근길 도어스테핑(약식회견)이 그런 것 같다. 하루 만에 재개되기는 했지만 지난 주 초 대통령실의 잠정 중단 발표가 오히려 약이 됐다. 그 하루 사이에 각종 진단과 처방, 지적과 평가가 언론을 통해 쏟아져 나왔다. 그러면서 도어스테핑의 필요성과 긍정적 측면들이 자연스럽게 부각됐다. 

요구 사항은 크게 보면 두 가지다. 첫째, 도어스테핑은 소통 활성화를 위해 계속되어야 하지만 둘째, 발언 내용은 정제되고 절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적 성향 등에 상관없이 이 대목에서는 한 목소리다. 도어스테핑 ‘무용론’은 소수에 그쳤다. 중단 주장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맥락에서 도어스테핑은 용산 대통령청사와 함께 윤석열 정부의 대표 브랜드로 차츰 자리매김을 할 공산이 크다.

사실 도어스테핑은 권력 변화의 상징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출근길 기자들과의 각본 없는 즉문즉답 자체가 지극히 국민 친화적이다. 대통령을 연상하면 으레 떠오르는 권위적, 폐쇄적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윤 대통령에 대한 여론 지지도 추락과 상관없이 대중의 평가는 호의적이다. 무엇보다 한 번도 경험 못한 대통령의 소통 방식이라는 점에서 기본 점수 자체를 크게 주는 것 같다. 

특히 언론, 취재기자들에게 도어스테핑은 축복이다. 최고의 뉴스메이커인 대통령이 거의 매일 아침 ‘일용할 양식’을 안겨주니 감지덕지일 수밖에 없다. 뉴스 기상도가 즉문즉답 내용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상당수 언론사는 아침 일찍 끝냈던 기사 발제 시간을 도어스테핑 이후로 미뤘다고 한다. 취재원에게 한 마디를 듣기 위해 몇 시간씩 ‘뻗치기’를 예사로 하는 기자들에게는 그야말로 보석같은 기회가 아닐 수 없다. 

대통령은 무오류 절대적 존재 아냐…“실수도, 감정적 발언도 할 수 있어” 

과거 청와대 시대에는 상상할 수조차 없었던 일이다. 오래 전 필자가 청와대 출입기자를 하던 시절에는 참모들의 업무 공간인 비서동 출입은 비교적 자유로웠다. 하지만 대통령이 있는 본관에는 1년에 2~3번 기자간담회를 할 때만 찾아갔다. 비서실 출입도 노무현 대통령 취임 이후에는 봉쇄됐다. 사전에 신청을 해야 면담이 가능해졌다. 그 이후 지난 정권까지 출입기자들은 춘추관에 갇혀 브리핑에만 의존해 기사를 작성하는 신세가 됐다.

그러다보니 기자들이 대통령과 직접 마주할 기회는 매우 드물었다. 각종 회의나 행사 등에서 나온 대통령의 발언은 홍보수석이나 대변인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달됐다. 이 과정에서 강도 높은 문제 발언이 다른 표현으로 바뀌거나 아예 빠지는 일이 적지 않았다.  

이 같은 과거 청와대의 보도 관행 탓일까. 상당수 언론이나 전문가들은 도어스테핑에서 나타난 윤 대통령의 말과 행동을 과거 잣대에 맞춰 재단하고 있다. 역대 대통령들의 언행을 ‘모범답안’이라도 되는 양 기준으로 삼아 평가하고 있다. 즉흥적이어서는 곤란하고, 감정이 섞여서도 안 된다고 지적한다. 국정 최종 결정권자의 발언이니 만큼 신중하고 실수도 없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꼭 해야 할 말을 극히 정제된 표현으로 하라는 것이다.

물론 일리는 있다. 하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이는 과거 제왕적 대통령의 권위주의적 행태를 답습하라는 것과 진배없다. 탈권위적 대통령 문화를 외치면서도 대통령은 무오류의 절대적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탈권위주의 시대 대통령은 지고지순(至高至純)한 존재가 아니다. 선거를 통해 국정책임자로 당선된 정치인이다. 감정 조절을 못할 수도, 실수를 할 수도 있다. 

윤 대통령은 통이 크고 직선적인 성격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인지 도어스테핑에서도 거침없고 공격적인 모습을 몇 차례 보여주었다. 당연히 대통령 화법으로 부적절하고, 독선의 기운이 느껴진다는 비난이 이어졌다. 그러나 과연 그렇게 비난만 받을 일인가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말의 행간에 담긴 정치적 셈법과 판단을 간과한 것은 아닌지 짚어봤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발언은 있는 그대로 봐주야 옳아”…“대통령, 각색‧주연 도맡아선 안 돼”

도어스테핑의 가장 큰 가치는 대통령의 생각을 ‘날 것’ 그대로 듣는다는 데 있다. 기자들의 질문 내용은 그 날의 핵심 이슈다. 질문보다는 민심의 지적을 전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에 대한 대통령의 답변이 적절했느냐는 차후의 문제이다. 중요한 것은 그 시점, 현안에 대한 대통령의 생각이 무엇이냐다. 설사 발언이 논란을 일으킬 수 있더라도 그냥 있는 그대로 봐주는 게 옳다고 본다. 국가적 리스크를 일으킬 만한 큰 문제가 아니라면 참모진에서 적절히 해명하면 될 일이다. 

윤 대통령에게 도어스테핑은 여소야대 상황을 헤쳐 나갈 유효한 무기라는 평가도 받고 있다. 마땅히 추진해야 할 정책을 야당이 반대하면 그 당위성을 국민에게 호소하는 게 가장 효율적인 압박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금을 막론하고 정치지도자에게 언론은 부담스러운 존재다.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의 대상이다. 윤 대통령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언론을 상대하다 보면 벌 서는 느낌도 받았을 법하다. 최근 여권 관계자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KBS와 MBC 문제 등 언론 환경도 정권교체 전과 별로 달라진 게 없다.

여권 일각에서는 대통령 지지율 하락 등과 연관 지어 여전히 도어스테핑에 부정적이라고 한다. 경제위기 속에 민생의 어려움이 가중되면 윤 대통령 스스로 언론 접촉을 피하고 싶을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고 해서 중단하면 시작하지 않은 것보다 못하다. 잠정 중단이라는 시행착오를 겪으며 도어스테핑은 이제 ‘유턴’이 불가능한 직선 주로에 들어섰다.  

어느 평론가의 말처럼 욕먹는 것도 대통령 일 중에 하나일 수 있다. 기자의 지적이 국민의 지적이라고 겸허한 자세로 임한다면 언론을 피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도어스테핑에 대한 윤 대통령의 의지는 강하다고 한다. 그러나 주변 참모들이 그에 맞춰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소식은 별로 들리지 않는다. 대통령 혼자 각본을 짜고 주연 배우를 맡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 도어스테핑은 이제 시작 단계다. 갈 길이 멀다. 순도 높은 촌철살인의 메시지로 다수가 공감하는 소통의 통로로, 새로운 대통령 문화로 꾸준히 진화하기를 기대한다. 

<필자 소개>

김명서(clickmouth@hanmail.net)

-서울이코노미뉴스 부회장

-전 서울이코노미뉴스 대표, 주필

-전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심의실장

-전 서울신문 편집담당 상무

-전 서울신문 사회부장, 정치부장, 논설위원,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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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진 2022-07-18 10:05:21
이거 참 좋은 시도인데 윤통은 그 기자들과 얘기할 때 감정을 한번 정도 억제하고 언어를 순화해서 답변해야 저 물귀신같은 내로남불 정적들에게 꼬투리가 안잡힐거다. 내가 대통령을 처음 해봐서... 이런 말은 좌우 다 농담으로 안받는다 예전에 놈현이 대통령짓 못해 먹겠네 라고 막말한 걸 기억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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