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나무를 심는 이유
배나무를 심는 이유
  • 송혁기
  • 승인 2022.07.19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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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 칼럼] 각설이패들이 공연 레퍼토리로 즐겨 부르면서 더 많이 알려진 ‘장타령’은 원래 시장에서 장사꾼들이 부르던 일종의 노동요다. 오늘날 “골라, 골라.”로 시작되는 시장 상인의 노래처럼 상품의 장점을 재미있게 제시하며 호객행위를 하는 사설로 이루어지기도 하고, 전국 각지에 서는 장의 특징을 해학적으로 나열하는 사설로도 많이 불렸다.

그중에 “화목 많은 화천장, 길이 막혀 못 보고”라는 구절이 있다. 강원도 화천은 통나무의 산지로 유명했다. 화천에 워낙 울창한 산림이 많은 데다가 벌목된 통나무들을 뗏목에 묶어 북한강 물길로 서울 뚝섬까지 운반하는 며칠 동안 나무의 진이 강물에 자연스럽게 빠지면서 품질이 더욱 좋아진다고 한다. 이 통나무를 사려고 장사꾼들이 화천장에 모여드는 바람에 인산인해를 이루는 모습을 압축된 표현에 담은 것이다.

낭천, 푸른 산이 사방의 이웃인 곳

화천의 옛 이름은 성천(?川), 낭천(狼川)이다. 지명에서 느껴지듯 이곳은 예로부터 거칠고 험준한 지역으로 인식되었다. 고려시대 김극기의 “청산시사린(靑山是四隣)” 즉 “푸른 산이 사방의 이웃”이라든가, 이지직의 “운근의상습(雲近衣裳濕)” 즉 “구름이 가까워 옷이 젖는구나.” 등의 구절이 이곳의 특성을 잘 묘사한 시로 회자되어 왔다. 이러한 지형적 특성상 통나무 이외에는 옻, 잣, 배 등이 이곳의 특산품이었다.

조선 시대 낭천 현감이 되는 사람은 특산품 중 하나인 맛 좋은 배를 세금으로 거두어 수레에 한가득 실어서 한양에 보내곤 했다. 부임하자마자 떠날 궁리를 하며 그러기 위한 뇌물로 쓰려고 배를 구하기만 했을 뿐, 정작 이곳에 배나무 한 그루 심는 현감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김상숙이라는 인물은 달랐다. 부임한 뒤 현감 업무가 어느 정도 안정되자 여가를 이용해 백설루(白雪樓)를 지었는데, 그 곁에 손수 심고 접붙인 배나무가 열댓 그루나 되었다.

이곳에 오래 있을 것도 아닌데 왜 배나무를 심는지 묻는 이에게 김상숙은 대답했다. “심는 사람은 먹지 못하고 먹는 사람은 심지 않으니, 그 또한 이치인 게지요. 하지만 열매는 내가 먹지 못한다 해도 꽃은 볼 수 있지 않겠소? 더구나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 심고서 먹지 못한다 한들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이오?”

심익운은 김상숙의 백설루를 위한 기문을 이렇게 시작했다. “관직에 오르면 조급하게 이루려는 마음이 없어야 하고 직무에 임해서는 남과 나의 구분이 없어야 한다.” 대개 관료들이 빨리 성과를 내서 장차 더 높은 자리로 오르는 데에만 관심이 있을 뿐, 정작 지금 그 자리에서 해야 할 일, 챙겨야 할 사람은 등한시하곤 하는 세태를 비판한 말이다. 관직을 자기 집처럼 여기고 직무에 자기 일처럼 힘쓰며 백성을 자식처럼 돌보는 현감으로서의 현재에 충실했던 김상숙을 부각하기 위한 포석이기도 하다.

천지가 오래도록 지속되는 까닭

노자는 천지가 장구한 것은 자신을 위해 도모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자신의 몸을 뒤로 물릴 때 오히려 앞서게 되는 역설을 말했다. 장래의 승진에 급급하고 외부의 명성에 얽매였던 이전의 현감들을 원수로 여기던 백성들이었지만, 지금의 자리에 충실하고 자기 백성을 사랑으로 챙기는 김상숙은 진심으로 따르고 신뢰했다. 소박하게 시작한 백설루도 백성들의 즐거운 참여 덕분에 빠르게 완공되었다.

백설루라는 이름은 북풍 한파에 휘몰아치는 변방의 눈발을 봄바람에 흩날리는 배꽃에 비유한 당나라 시인 잠삼의 ‘백설가’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김상숙은 험지 낭천에서 주어진 공무에 전념하는 여가에 그저 배꽃 환한 달밤의 누대를 즐길 뿐이었다. 그가 심은 배나무의 열매를 취한 것은 이후의 현감들이었겠지만, 열매의 이득이 꽃의 즐거움보다 반드시 크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자신이 결실을 취하지 못할 줄 알면서도 나무를 심는 이들이 없다면, 우리의 미래는 암담할 것이다. 성과에 조급해하거나 눈앞의 이해관계에 민감하지 않으면서 지금 주어진 자리에서 즐길 줄 아는 이들이 더욱 필요한 시대다. 의무와 희생으로만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것을 즐기는 여유를 지닌 사람, 그 여유를 보장해줄 수 있는 사회야말로 이른바 ‘지속 가능한 발전’의 동력이 아닐까.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 칼럼은 다산칼럼의 동의를 얻어 전재한 것입니다.

필자 소개
 
송 혁 기
· 고려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 저서
『고전의 시선』, 와이즈베리
『농암집: 조선의 학술과 문화를 평하다』, 한국고전번역원
『나를 찾아가는 길: 혜환 이용휴 산문선』(공저), 돌베
『조선후기 한문산문의 이론과 비평』, 월인
『나만이 알아주는 나 : 조귀명 평전』, 글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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