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병문 칼럼] 국회는 2018년 2월 28일 주당 법정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단축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그리고 그해 7월 1일부터 종업원 300인 이상의 사업장을 대상으로 우선 시행됐다. 이 법안은 ‘일주일은 7일’이라는 내용을 명시하고 있어서, 주(週) 최대 근로시간이 52시간(법정근로 40시간+연장근로 12시간)으로 제한되었다. 이는 강행 규정으로서, 노사가 합의해도 정해진 시간을 초과해서 일할 수 없도록 못 박았다.
당시 상황을 돌아보면, 이 법안을 제정하면서 국민의 뜻을 충분히 반영했는지 의문이다. 물론 입법 취지인 워라밸(Work-life balance)을 반대할 사람은 없다. 국민 누구라도 ‘일과 생활의 균형’을 추구함으로써 삶의 질이 개선되길 원할 테니까. 하지만 현실은 그리 낭만적이지 않다. ‘주 52시간 근무제’라는 틀에 묶여서, 일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났으니 말이다. 그들은 단위 시간당 소득이 낮기 때문에 일하는 시간을 늘려야 할 필요가 있다.
민생에 중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법안인 만큼, 공청회를 비롯한 의견수렴 절차를 충분히 거쳐야 했다. 당사자인 기업이나 근로자들은 물론이고, 그 법을 반대하는 여러 이해관계자들을 설득하려는 노력을 기울였어야 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러지 않았다. 마치 무언가에 쫓기듯 급히 처리할 수 밖에 없었던 특별한 이유라도 있었는지 궁금하다. 그렇게 만들어진 법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당사자들의 입장에선 그저 갑갑할 따름이다.
앞서 거론한 부작용은 비단 근로자 개인이나 해당 기업의 차원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사회와 국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무슨 일이든 마찬가지이겠지만, 법 제정의 목적이 좋다고 해서 과정을 가벼이 여겨도 괜찮다는 태도는 위험하다. 하물며 수많은 민초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법안을 만들 때는 예상되는 문제점들에 대해서 보다 신중하게 고려했어야 했다.
드러난 문제점 서둘러 보완해야
‘주 52시간 근무제’를 시행한 이래 많은 문제점들이 노정됐다. 이 법이 끼치는 영향력이 워낙 크다 보니 대책 수립이 시급하다. 그렇다고 법안의 내용을 완전히 뒤집자는 말은 아니다. 취지와 장점은 살리되 불합리한 부분을 찾아내어 수정・보완하자는 얘기다. 그것이 이 법으로 말미암아 고통받는 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조치다.
사실 ‘주 52시간 근무제’는 적용 대상을 지나치게 일반화했다. 업종마다 근무 특성이 다른데 이를 무시함으로써 여러 부작용을 자초했다. 특히 단시간에 집중적으로 성과를 내야 하는 IT 분야나 소프트웨어 같은 신산업 업종이 받은 타격은 막대하다. 대기업은 그나마 버텨낼 여력이 있지만 중소기업은 심각하다. 그들이 무슨 수로 단시일 내에 실질적인 대책을 세울 수 있겠는가? 또한 그들 대부분은 대기업의 협력업체들이다. 연쇄적으로 관련 산업 전체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 뻔하다.
법 시행 이전보다 생계가 더 어려워진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영세기업과 그곳에서 일하는 종업원들이 제일 큰 타격을 입었다. 이런 현상은 삶의 질을 높이고 일과 휴식의 균형을 이루겠다는 당초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결과다. 법을 만들어서 모든 이들이 공정하게 혜택을 받는다면 몰라도, 어느 한편의 희생을 전제로 얻어지는 반쪽 워라벨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제는 이 문제들을 시정할 때가 됐다. 먼저, 법 적용 대상을 차별화할 필요가 있다. 기업의 업종, 규모, 지역에 맞춰 합리적인 기준을 다시 정해야 한다. 다음으로, 각종 예외 조항과 유연근무제, 탄력근로시간 등에 관해서도 세심하고 정교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억울하게 피해 보는 계층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일하고 싶은 데 일하지 못하는 사람이 더 늘어나지 않도록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
정치권, 대승적 차원에서 해결하라
어떤 일이든 성급하게 밀어붙이면 부작용이 생긴다. 선한 의도로 시작했다고 반드시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때문에 민초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법안을 만들 때는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사용자와 근로자의 합의하에 노동시간을 조정하겠다는데 법으로 막는다? 아무래도 불편하다. 급하게 완수해야 할 프로젝트가 있는 경우 일정 기간 집중적으로 일하고, 일을 마친 후 충분한 휴식을 취하면 된다. 그것은 회사의 강요로 근로자의 권익이 일방적으로 침해되는 경우와 전혀 다르다. 한데도 그런 것까지 법으로 금한다면 그게 바로 독소조항이다. 그것들을 찾아내 제거할 때 비로소 입법 취지에 맞는 법률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권은 이제라도 ‘주 52시간 근무제’를 제대로 손봐야 한다. 먼저, 기업과 근로자, 그리고 전문가의 의견을 경청하라. 다음으로, 불필요한 대못을 확실하게 제거하고 더 이상 손볼 필요가 없을 정도로 제대로 된 수정안을 만들어 국민 앞에 제시하라. 이는 민생을 위하는 일인 만큼 진영을 따질 일도 아니다.
국제정세가 날로 복잡해지고 있다. 전쟁 중인 국가도 있다. 이럴 때일수록 나라를 이끄는 정치인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들에게 촉구한다. 지금의 격랑이 잠잠해질 때까지 만이라도 정쟁을 멈춰라. 대신에 좋은 아이디어를 찾아서 입법 활동에 매진하라. 그것이 당신들이 해야 할 일이고 진정으로 국민을 위하는 길이다.
필자 소개
나병문(rabmna1958@naver.com)
-전국퇴직금융인협회 금융시장연구원 연구위원
-SN경영연구원장
-경영학박사, 전 우리은행 지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