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淡)'과 '예(禮)', 그리고 '품격 있는 사회'
'담(淡)'과 '예(禮)', 그리고 '품격 있는 사회'
  • 조석남
  • 승인 2022.08.16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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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의 미덕’과 '극기복례(克己復禮)'가 절실한 시점

[조석남의 에듀컬처] '불 화(火)'가 겹쳐진 '불꽃 염(炎)'은 불이 활활 타오르는 모양을 나타낸다. '담(淡)'은 물(水)과 불꽃(炎)으로 이루어져 있다. '담(淡)'은 '활활 타오르는 불(炎)에 상극의 성질을 갖는 물(水)을 끼얹어 그 기세를 죽인다'는 의미가 있다. 지나침을 경계하는 중용의 미덕을 담고 있다. 너무 긴장하거나 마음이 급하면 오히려 일을 그르치기 때문에 상극의 성질로 가라앉히고 담담하게 관조하라는 가르침이다.

'물(水)을 한번 끓이는(火) 것이 아니라 끓이고 또 끓이니(炎) 맑게 되었다'고도 한다. 물을 아주 뜨겁게 끓이면 온갖 잡균들이 소독되어 맑고 깨끗하게 된다는 뜻이다. '물로 불을 끄고, 불로 물을 태우듯 모든 것이 다 사라지고 깨끗하게 된 상태를 의미한다'고도 한다.

무미(無味)함, 즉 '담(淡)'의 의미는 이제 우리에게 새롭게 다가오고 있다. 자극과 속도가 넘쳐나는 시대다. 매체와 광고는 현란한 색채와 말초적 감각이 필수다. 숨 막힐 만큼 달고, 짜고, 쓰고, 신 맛으로 현대인을 괴롭힌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초고속 문명의 멀미를 호소하며 벗어나고 싶어 한다.

어떤 이들은 녹색을 찾아 걷고, 어떤 이들은 조미료 없는 맛집을 찾아다니고, 고요한 사찰로 템플스테이를 떠나기도 한다. 맛은 우리를 얽어매려 하지만, '무미(淡)'는 우리를 풀어준다. 맛은 우리를 사로잡고 몽롱하게 하며 예속시키려 하지만, '무미(淡)'는 우리를 감각적 흥분, 일시적 강렬함에서 해방시켜준다.

모든 소란을 침묵케 하고 내면의 정적과 평온을 되찾아준다. 엄숙한 제사일수록 제례는 극히 단순하다. 생선은 익히지 않고 탕은 간을 맞추지 않는다. 피자나 콜라의 달콤함은 일주일을 못가지만 밥이나 맹물은 평생을 먹어도 물리지 않는다. 화려하고 자극적인 아름다움보다는 단순하고 드러나지 않는 담백함이 물리지 않고 오래 간다. 최고의 격(格)은 치장하지 않고 드러내지 않는다.

필자는 '아름다운 사람'보다는 '맑은 사람'을 좋아한다. '아름다울 미(美)'보다는 '맑을 담(淡)'에서 극한의 아름다움과 숨겨진 격을 느낀다. '미(美)'는 스스로 아름답다고 드러내지만, '담(淡)'은 아름답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미 깊은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그러기에 아름다움의 격이 다르다.

요즘 세상이 너무 흉흉하고 삭막하다. 배려와 이해는 온데간데 없고, 증오와 분노, 극단적 대립에 숨이 턱턱 막혀온다. 유투브와 SNS에는 막말과 자극적인 언어가 넘쳐난다. ‘격’이란 단어는 이미 실종된 지 오래다.

여기저기에서 '대한민국호'에 위기의 경고음이 울리고 있는 것이다. 이대로 선진국 문턱을 넘어서려다가는 엎어지거나, 미끄러지거나, 점점 더 불행해질 뿐이다. 하여 끊임없이 실망하고, 원망하고, 분노하고, 좌절할 것이다.

결국은 '기본'이다. 과연 우리가 문화인다운 매너와 품격 그리고 자세를 지녔는지, 또 선진국으로 들어가기 위한 체질개선작업을 어떻게 해나갈 것인지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하고 실천해야 할 것이다. 당연히 이는 이 나라 리더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 개개인의 숙제이기도 하다.

격(格)이 없는 것은 반드시 추락한다. '국격'을 높여야 한다. 국격을 높이는 데 꼭 필요한 요소가 '품격 있는 사회'이다. '품격 있는 사회'를 위해 또하나 중요한 덕목이 '예(禮)'이다. 모든 관계에는 예(禮)가 바로서야 질서가 잡히고 행복해질 수 있다.

최소한의 배려와 믿음, 존중과 공경이 사라지면 혼란과 무질서로 모두가 불행해진다. 경제성장 못지않게 '극기복례(克己復禮)'가 절실하고 필요한 시점이다. 사리사욕과 탐욕, 충동과 감정을 극복하고 예(禮)를 회복해야 한다.

'삼지례(三枝禮)'란 말이 있다. 비둘기는 가지에 앉을 때 절대 어미 새와 같은 가지에 앉지 않는다. 어미 새가 앉은 가지로부터 세 단계 낮은 가지에 앉아 부모에 대한 예를 표한다. 맹수인 사자도 배부르면 더 이상 사냥을 하지 않는다. 배불러도 사냥을 계속하려는 탐욕은 인간 세상에만 있다.

동물이건 식물이건 모두 예를 지키며 공존한다. 동식물만도 못한 사람이 돼서는 아니된다. 경제 선진국이라고 자부하기에 앞서 이에 걸맞은 문화 선진국이 돼야 한다. 돈보다는 사람을 중시하고 예(禮)를 회복해가야 한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자 소개>

조석남 (mansc@naver.com)

- 극동대 교수

- 전 한국폴리텍대학 익산캠퍼스 학장

- 전 서울미디어그룹 상무이사·편집국장

- 전 스포츠조선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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