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단상(斷想)...‘나눔’과 ‘배려’의 추석 명절을 소망하며
한가위 단상(斷想)...‘나눔’과 ‘배려’의 추석 명절을 소망하며
  • 조석남
  • 승인 2022.09.07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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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석남의 에듀컬처] 신라 제3대 유리왕 9년(서기 32년), 6부의 여자들을 두 편으로 가른 다음 왕녀 두 사람이 거느리고 7월 16일부터 길쌈을 하도록 시켰다. 8월 15일에 그 공이 많고 적음을 살펴 진 편은 술과 밥을 장만해 이긴 편에게 사례하도록 했다. 이 때 노래와 춤, 온갖 유희가 일어나니 이를 가배(嘉俳)라 했다고 『삼국사기』는 전한다. 이렇게 긴 세월 동안 변하고 다듬어져 온 명절이 한가위다.

음력 8월 15일은 가을의 한 가운데 달, 또한 8월의 한 가운데 날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추석을 가배(嘉俳), 가배일(嘉俳日), 가위, 한가위, 중추(仲秋), 중추절(仲秋節), 중추가절(仲秋佳節)이라고 여러가지로 부르는 이유도 여기 있다. 가위나 한가위는 순수한 우리말. 가배는 가위를 한자의 음과 뜻을 빌려 쓴 것이다.

풍요로움 속에서 우리 조상들은 즐거움을 주는 놀이도 했고 다양한 음식도 마련했다. 세시풍속으로 줄다리기, 반보기, 차례(茶禮), 성묘(省墓), 소싸움, 고사리 꺾기, 강강술래, 씨름 등을 했다. 송편과 토란국, 닭찜, 누름적, 화양적 등을 만들어 미각을 즐겼다.

현대인에게 한가위(추석·秋夕)는 어떤 의미일까. 한동안 돌보지 못한 조상의 묘를 찾아 한없이 자란 잡초를 다듬는다? 혹은 차례를 지내고 친척들과 어울려 시간을 보낸다? 축소된 추석 풍경이다. 명절은 이제 연휴를 만들어 휴가처럼 사용한다. 공휴일을 나타내는 달력의 빨간 글자 이상 의미를 찾기가 어렵게 됐다는 얘기다.

‘그대 안에는/아무래도 옛날 우리 어머니가/장독대에 떠놓았던 정한수 속의/그 맑은 신이 살고 있나 보다./지난 여름 모진 홍수와/지난 봄의 온갖 가시덤불 속에서도/솔 향내 푸르게 배인 송편으로/떠올랐구나…/모든 산맥이 조용히 힘줄을 세우는/오늘은 한가윗날./헤어져 그리운 얼굴들 곁으로/가을처럼 곱게 다가서고 싶다.’(문정희 『추석달을 보며』)

달빛 밝은 밤 식구가 모여앉아 음식 장만하고 송편 빚는 풍경은 우리네 행복의 원형이다. 소소한 일상을 얘기하다 보면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추억은 이제 그리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모습이 아니다.

언제든지 전화를 하고, 스마트폰으로 얼굴을 보며 대화하고, 필요하면 언제든지 갔다올 수 있게끔 교통이 편리해진 탓이다. 설레고 즐거워야 할 날이지만 어떤 사람들에겐 더 서럽고 쓸쓸하기만 하다.

막걸리 한 잔으로 삶의 시름을 달래곤 했던 시인 천상병이 『불혹의 추석』에서 외롭게 지내는 차례는 언제 봐도 가슴 저릿하다.

‘혼자의 추석이 오늘만이 아니건마는 더 쓸쓸한 사유는 고칠 수 없는 병 때문이다./막걸리 한 잔,빈촌 막바지 대폿집 찌그러진 상 위에 놓고,어버이의 제사를 지낸다.’

세월이 갈수록 고향의 이웃은 줄어들고 사는 모습도 바뀌고 있다. 정갈하게 가을걷이 해놓고 마을길 누비던 어른들은 어느덧 늙고 병들어 하나둘씩 생을 접는다. ‘그런 게 사는 이치’라고 아무리 되뇌어봐도 허전하긴 마찬가지다. 해마다 치르는 귀성 전쟁은 저마다 마음속에 남아 있는 고향을 어떻게든 지켜내려는 몸부림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찾아갈 고향이 있다는 것은 큰 위안이다.

1천 년 넘게 이어져온 ‘나눔’이라는 미덕의 쇠함이 이미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이번 한가위에는 외롭고 불우한 사람들을 한번쯤 돌아봤으면 한다. 제 몸 하나도 간수하기 힘들고 제 가족 챙기기도 어려운 처지에 주변이나 남을 돌아볼 여유를 갖기는 힘들 것이다. 극심한 경제난 속에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불안하고 움추린 마음임을 잘 안다. 하지만 경제가 어려울수록 더욱 힘들어지는 계층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런 점에서 조금 덜 먹고 덜 쓰고 해서 주위를 보살피고 베푸는 마음을 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예부터 내려오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8월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이 헛말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심정이다.

바라건데 이번 한가위에는 고향의 정기를 듬뿍 받아 가슴 속에 ‘희망’을 한아름씩 안고 일터로 돌아왔으면 좋겠다. 팔월 보름달은 ‘나눔’과 ‘배려’라는 이름의 온기를 함박 머금고 삶에 지친 우리 모두를 포근히 안아줬으면 좋겠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자 소개>

조석남 (mansc@naver.com)

- 극동대 교수

- 전 한국폴리텍대학 익산캠퍼스 학장

- 전 서울미디어그룹 상무이사·편집국장

- 전 스포츠조선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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