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77조원 손실, 그냥 넘길 일 아니다
국민연금 77조원 손실, 그냥 넘길 일 아니다
  • 김명서
  • 승인 2022.09.12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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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반치 연금 지급액 6개월 만에 사라져”…잘잘못 가려 엄중 문책해야

[김명서 칼럼] 국민연금이 올 상반기에만 무려 77조원을 까먹었다는 뉴스가 지난 달 말 보도됐다. 기금 운용 수익률이 마이너스 8%를 기록한 것이다. 2000년대 들어 수익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휘몰아친 2008년(-0.21%)과 2018년(-0.89%) 두 차례 뿐이다. 수치 자체가 소수점 이하여서 이번과는 비교가 안 된다.

이 같은 대형사고인데도 그냥 넘어가는 듯한 분위기가 역력하다. 대부분 언론은 아주 ‘드라이한’ 사실 보도로 첫 뉴스를 내보내고 그 다음엔 감감 무소식이다. 경위가 어떠했으며, 무엇이 문제였으며, 책임을 누가 져야 하는지에 대한 추가 속보가 보름이 다 돼 가는데 없다. 몇 만 원짜리 밥값조차 시빗거리로 삼은 정치권도 별다른 논평조차 없이 침묵으로 일관했다. 정쟁에만 얽매여 정작 챙겨야 할 일에는 정신 줄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이게 못 본 척하고 넘어갈 일인가. 국민의 노후 자금이라는 연금에서 물경 77조원이 6개월 사이에 없어졌다. 매달 국민연금 수급자에게 지급되는 총 연금액이 2조 6000억원 가량이다. 이들에게 2년 반 정도 지급할 수 있는 자금이 사라진 것이다. 게다가 5월까지는 누적 수익률은 -4.73%였는데 6월에만 3.27%포인트가 추가 하락했다. 불과 한 달 사이에 32조원이 더 빠져나갔다.

현재 우리나라 연금 수령자는 582만여명, 평균 수령액은 57만여원이다. 절대 다수 수령자에게 국민연금은 노년의 불안한 삶을 지탱해 줄 마지막 버팀목이다. 그런데 7조원도 아니고 77조원이라는 상상 초월의 거액이 불과 여섯 달 만에 날아갔다. 사안을 제대로 파악한 일반인으로서는 불안감과 더불어 분노를 억제키 어려운 충격적 사고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도 국민연금관리공단은 비난의 화살을 피했다. 이번에 까먹은 것 이상을 지난 몇 년 동안 벌었다는 이유가 가장 크다. 기금 운용 수익률은 2018년 마이너스에서 2019년 11.34%, 2020년 9.58%, 2021년 10.86%이었다. 글로벌 금융시장의 활황 덕에 3년 연속으로 큰 이득을 남겼다.
  
“연금 속성상 손실 책임 분명히 물어야…많이 벌었다고 면피 안 돼” 

그렇다고 ‘면피’가 될까. 일반 국민의 생각은 그렇게 너그럽지가 않을 것 같다. 노후 자금이라는 국민연금의 속성 상 수익보다는 손실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민 다수는 매달 적립하는 국민연금이 혹시라도 잘못돼서 연금을 못 받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을 갖고 있다. 비록 이번 손실이 국내외에 투자한 증권과 채권의 평가 하락 때문이었다고 치더라도, 일단 장부에 기재됐던 엄청난 거금이 빠져나간 것은 분명하다. 어떠한 해명과 논리를 들이대더라도 손실은 손실인 것이다. 

특히 올 들어 수익률이 계속 마이너스인 상황에서 6월에만 무려 32조원의 손실이 생겼는데도 수수방관했다는 것 자체가 이해하기 어렵다. 혹여 앞으로 비슷한 상황이 닥치더라도 역시 두 손 놓고 있겠느냐고 되물을 수밖에 없다. 연금관리를 제대로 하더라도 현행 운영방식을 개혁하지 않으면 기금 고갈을 걱정해야 한다고 아우성치는 판이다. 그런데 이처럼 엄청난 돈을 속절없이 깎아먹었다니 어떻게 분노가 치솟지 않겠는가.

상반기 실적이 이렇게 참담했다면 운영 과정에서의 잘못을 가려내 엄중히 문책하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그런데도 공단은 “금리상승과 인플레이션 우려로 전 세계 금융시장 참가자들의 투자심리가 악화됐고, 금이 보유한 주식과 채권 수익률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해명만 되풀이 강조하고 있다. 외부 환경의 악화 때문일 뿐 내부적으로는 전혀 잘못이 없었다는 투다.

쉽게 번 돈은 쉽게 사라진다고 한다. 부자는 3대 가기가 어렵다는 말도 있다. 그 만큼 돈은 지키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벌어들인 돈이 많다고 해서 손실에 대한 책임을 면해주는 것은 국민연금의 영역에서는 적절치 않다. 기금운영의 양대 축은 안전성과 수익성 확보라고 하지만 우선순위는 안전성이다. 신상필벌 원칙을 강화해 안전성을 흔드는 손실에 대해서는 분명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 

“국민연금 독립성, 전문성 모두 위기…새는 바가지 없도록 철저히 감시해야”

전문가들은 오래전부터 국민연금이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독립성 및 전문성 확보가 중요하다고 지적해 왔다. 그렇지만 전망은 부정적으로 기울고 있다. 

우선 전문인력 이탈이 심각하다. 2017년 국민연금 본사의 전주 이전 이후 기금운용본부에서만 130명 이상이 빠져 나갔다. 인력을 보강해도 시원치 않을 위기 상황에 그동안 쌓아온 운용경험이나 네트워크가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기금운용본부만이라도 서울로 이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가능성은 크지 않다.

여기에다 지난 2일 취임한 김태현 신임 이사장은 노조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첫 출근도 하지 못하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 노조는 금융전문가로 꼽히는 김 이사장에 대해 연금제도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없는 ‘모피아’ 출신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김 이사장은 이에 대해 “전문가라고 자부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없을 정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시작부터 밀리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런 그에게서 신상필벌 원칙이 제대로 작동하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

그동안 국민연금 개혁에 대한 관심은 온통 더 내고 덜 받는 방식에만 집중돼 왔다. 연금 보험요율이나 소득대체율 같은 숫자를 고치기 위한 논란과 줄다리기가 이어졌다. 하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붇기처럼 엉뚱한 곳에서 엄청난 손실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이번에 드러났다. 

상반기 손실액 77조원은 정부가 책정한 내년도 예산 637조원의 12%가량이다.  올 들어 8월까지 누적 무역적자가 66년만에 최고인 247억2700만달러라고 비상이 걸렸다. 원화로 환산하면 33조원가량으로, 연금 손실액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국민연금관리공단은 이제 그 존재 가치가 새롭게 부각됐다. 어쩔 수 없이 국민적 감시 대상이 됐다. 그렇지 않아도 ‘철밥통’ 일자리에, 조직운영은 방만하고 기강이 해이하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던 터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는 없는지, 정신 바짝 차리고,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볼 일이다. 

<필자 소개>

김명서(clickmouth@hanmail.net)

-서울이코노미뉴스 부회장

-전 서울이코노미뉴스 대표, 주필

-전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심의실장

-전 서울신문 편집담당 상무

-전 서울신문 사회부장, 정치부장, 논설위원,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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