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코노미뉴스 정세화 기자] 10대 그룹 계열사 최고령, 최장수 CEO 타이틀을 유지해온 차석용 전 LG생활건강 대표이사(부회장)가 18년 만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LG생활건강은 24일 이사회를 열고 현재 음료 사업부장을 맡고 있는 이정애 부사장을 LG그룹의 첫 여성 사장으로 승진시키고 CEO로 내정했다.
지난 18년간 LG생활건강을 이끌었던 차석용 전 부회장은 후진에게 길을 터 주기 위해 용퇴를 결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7번째 연임에 성공한 차 전 부회장은 올해도 유임할지 관심을 모았으나 실적 부진 탓에 용퇴를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LG생활건강은 중국 봉쇄 조치 등 국내외 불확실성 속에 올 3분기에도 전년 동기보다 부진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3분기 매출은 전년보다 7.0% 감소한 1조8703억원, 영업이익은 44.5% 줄어든 1901억원에 그쳤다.
그럼에도 차 전 부회장은 화장품 업계는 물론 재계에서 주목받는 CEO였다. 2005년 대표이사로 취임한 후 매년 실적을 갱신하는 등 '차석용 매직'을 이어왔다.
차 전 부회장은 지난해도 연결기준 매출 8조915억원, 영업이익 1조2896억원을 달성해 사상 최대 실적을 냈다.
특히 차 전 부회장은 공격적인 인수합병(M&A)을 통해 최대 실적을 견인했다. 차 전 대표는 부임 후인 2007년 코카콜라 음료를 시작으로 2009년 다이아몬드샘물, 2010년 더페이스샵, 2011년 해태음료를 인수했다. 올초 미국 '더크렘샵'까지 품에 안으며 총 28건의 M&A를 성사시켰다.
차 전 부회장은 사드와 코로나 사태로 중국 소비시장이 둔화되자 북미, 일본 등으로 눈을 돌려 새로운 시장으로의 공략 의지를 다졌다. 이에 더 크렘샵은 패션뷰티 매거진 '마리 끌레르'가 선정한 '미국에서 사랑받는 Best K-Beauty'로 선정되기도 했다.
차 전 부회장은 후, 숨, 오휘 등 럭셔리 브랜드를 육성하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차 전 부회장의 안목으로 LG생활건강이 화장품, 생활용품, 음료 등 3대 사업 포트폴리오를 고르게 강화할 수 있었다고 분석한다.
차 전 부회장이 10대 그룹 계열사 최고령, 최장수 CEO 타이틀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다.
1953년 서울 출신인 차 전 부회장은 차 부회장은 1974년 경기고를 졸업한 뒤 미국 코넬대 경영대학원 석사(MBA)를 받고 1985년 미국 P&G 입사 후 쌍용제지·한국P&G·해태제과 사장 등을 지내고 2005년 만 51세 나이로 LG생활건강 CEO에 선임됐다.
LG생활건강 이전에는 한 기업에서 오래 있지 않았다. 쌍용제지에서는 약 1년간(1998~1999년) 사장으로 있었고 한국P&G에서도 2년(1999~2001년)을 채우고 나왔다. 해태제과 사장 재직도 3년(2001~2004년)에 그친다.
LG생활건강에서는 18년간 자리를 유지했는데 2012년에는 LG그룹 내에서도 능력을 인정받아 외부 영입 인사로는 처음으로 부회장으로 승진하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지난해까지는 사실상 차 부회장이 LG생활건강의 유일한 선택지였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LG생활건강 내부에서도 대체자가 없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신망이 두터웠다.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실적이 꾸준히 좋아져 바꿀 이유가 없었다는 것이다.
지난해에는 LG그룹 내 부회장 직급에서의 변수가 많지 않았고 외부 인사인 차 부회장이 지주사로 이동할 가능성도 낮아 LG생활건강 자리를 유지했다. 하지만 올해는 LG생활건강의 실적과 나이가 차 부회장 연임의 걸림돌로 언급됐었다.
우선 LG생활건강은 지난해 말부터 실적이 악화하기 시작했다. LG생활건강은 연간 기준으로 17년 연속 실적 개선에 성공했고 분기 기준으로는 2005년 1분기부터 지난해 3분기까지 한 개 분기를 제외하고는 66분기 연속 영업이익이 늘었다.
지난해 4분기부터 하락세가 시작됐다. 4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4% 감소한 2조231억원, 영업이익은 5.9% 감소한 2410억원을 기록했다. 올해는 감소 폭이 더 확대됐고 영업이익은 약 5년 전과 비슷한 수준으로 회귀했다.
1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9.2% 감소한 1조6450억원, 영업이익은 52.6% 감소한 1756억원이다. 2분기에는 매출 1조8627억원(7.9% 감소), 영업이익 2166억원(35.5% 감소)을 기록했다. 3분기에는 매출 1조8703억원(7.0% 감소), 영업이익 1901억원(44.5%)에 그쳤다.
1953년생으로, 만으로 따져도 69세인 차 부회장의 나이도 연임의 걸림돌이었다. 차 부회장의 나이는 LG그룹의 적극적인 세대교체 흐름과는 맞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LG그룹은 구 회장 취임 이후 최대 규모인 132명의 신임 상무를 발탁했다. 신규 임원 중 40대는 82명으로, 전체의 62.1% 비율을 차지한다. 10명 가운데 6명은 40대로, 전문성을 갖춘 젊은 인재를 기용해 미래를 준비하겠다는 전략이다.
2020년 11월 단행한 정기 인사 키워드 역시 ‘세대교체’였다. 60대 이상의 CEO급 인사가 자리에서 물러나고 그 자리를 50대 인사로 대체했다. LG그룹은 2019년, 2018년에도 같은 기조의 정기 인사를 했다.
LG 인사에서 세대교체와 같이 언급되는 키워드는 ‘성과주의’다. 차 부회장은 2018년 이후 세대교체 분위기에서도 4년간 자리를 지켰지만 올해 LG생활건강의 실적이 악화한 만큼 성과주의 관점에서도 볼 때도 자리를 유지할 수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