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프리미엄 노린 범죄”…실체 드러난 ‘4조원대 외화 송금'
“김치프리미엄 노린 범죄”…실체 드러난 ‘4조원대 외화 송금'
  • 김보름 기자
  • 승인 2023.01.18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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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서 가상화폐 사서 국내 되팔아…검찰, 20명 기소·1명 수배,
“은행, 실적 매달려 검증 못 해”…전직 은행원, 브로커로 가담
가상자산거래소./연합뉴스

[서울이코노미뉴스 김보름 기자] 국내 코인거래소의 가상자산 시세가 해외보다 높은 이른바 '김치 프리미엄'을 노리고 4조3000억원 규모의 외화를 해외에 유출한 조직이 적발됐다.

엄청난 외화가 해외로 반복해 반출됐는데도 일부 시중은행들은 영업 실적 올리기에만 급급해 범죄 연루 가능성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중앙지검 국제범죄수사부와 서울본부세관 조사2국(국장이민근)은 18일 ‘불법 해외송금’ 사건을 합동 수사한 결과, 주범 및 은행브로커 등 11명을 구속기소하고 9명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해외로 도주한 1명은 지명수배를 내렸다.

이들은 2021년 4월부터 지난해 8월 사이 허위 무역대금 명목으로 4조3000억원에 이르는 외화를 해외로 불법 송금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이렇게 송금한 돈으로 해외 코인거래소에서 가상자산을 구입해 국내 거래소로 보내 비싼 가격에 매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시세차익을 통해 얻은 수익으로는 같은 수법의 범행을 되풀이 해 수익을 극대화했다.

이들은 가상자산이 시시각각 시세가 바뀌는 점을 고려해 총책을 정점으로 역할을 분담해 조직적으로 움직이며 '속도전'을 펼쳤다.

실제로 2021년 12월 일어난 범행 사례를 보면, 범인들은 총책의 송금 지시에 따라 2시간 만에 15억원을 해외로 송금했다. 이어 이 자금으로 해외에서 가상자산을 매입해 국내로 전송해 되파는 방식으로 몇 시간 사이에 9000만원의 ‘김치 프리미엄’을 챙겨 분배했다.

검찰은 이들 일당이 131억원 규모의 범죄수익을 거둔 것으로 보고 몰수·보전추징 절차를 진행 중이다.

검찰은 해외 송금액 일부는 가상자산 투기에 사용되지 않고 보이스피싱 등 범죄와도 연결된 것으로 의심되는 정황을 포착,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이들 일당은 외화 송금과 가산자산 국내 반입 과정에서 금융당국의 제지를 피하기 위해 다양한 수법을 동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은 해외송금한 업체 계좌 등 1000여개 관련 계좌의 거래금액 약 15조원을 추적 분석한 결과, 다수의 페이퍼컴퍼니를 이용한 사실을 확인했다.

검찰은 이들을 범행 수법에 따라 '분업형', '기업형', '중계형' 등 3가지로 분류했다.

'분업형'은 총책이 속한 재정팀이 무역회사 형태로 자금을 모으면 송금팀이 거짓 인보이스를 작성해 은행을 통한 송금 절차를 밟았다. 해외팀은 해외 코인거래소에서 가상자산을 사들여 국내 코인거래소로 전송했다. 

이 과정에서 송금팀은 송금액의 0.3∼0.5% 수준의 수수료를 받았고, 재정팀과 투기자금 제공자는 매각 수익금을 나눠 가졌다.

'기업형' 조직은 총책이 페이퍼컴퍼니를 직접 운영하며 범행을 주도했다. 총책이 은행을 통해 외화를 보내면 해외팀은 가상자산을 매입해 총책에게 전송하는 구조였다.

'중계형'은 총책이 송금업체를 운영하며 해외 업체들 간 골드바 거래를 중계 무역하는 것처럼 가장했다. 

홍콩 현지에서 골드바를 구매한 업체가 구매대금을 매각 업체에 지불하는 대신, 현지 거래소에서 산 가상자산을 국내 조직 총책에게 전송하면 총책은 이를 국내 거래소에서 비싼 가격에 매각했다. 총책은 김치 프리미엄을 제하고 남은 돈을 현지 매각업체에 골드바 중계무역 대금 명목으로 송금했다.

총책 등 주범들은 자금 제공자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해 다단계식으로 공모자를 모집한 후 범행 재원을 마련한 것으로 파악됐다. 

검찰은 전직 은행원이 알선비를 받고 브로커로 활동한 사실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들이 한 번에 수억원에서 수백억원의 외화를 해외로 송금하는 동안 시중은행은 이를 적발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일부 영업점은 외환 송금 고객을 유치하는 데 매달려 송금 사유나 증빙서류 심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한 시중은행 지점은 5개월간 320회에 걸쳐 '반도체 개발비' 명목으로 1조4000억원 규모의 외화가 송금됐는데도 추가 증빙자료를 요청하지 않았고, 오히려 담당 직원은 포상까지 받았다고 검찰은 전했다.

본점 차원에서 의심거래보고(STR)가 가동되기는 했지만 영업점에서 제대로 대처하지 않았다. 

검찰은 전직 은행원이 금융기관 브로커로 가담한 사실도 적발했다고 밝혔다. 브로커는 은행 지점장과 직접 접촉해 거래실적이 없었는데도 송금 한도를 높이고 우대 환율까지 적용받도록 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시중은행들이 가상자산 거래, 자금세탁 연루 여부 등에 대한 철저한 검증을 하지 않았다"면서 "금융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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