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장사의 집’ 보다 ‘농민의 쌀’을
‘집장사의 집’ 보다 ‘농민의 쌀’을
  • 정기석
  • 승인 2023.01.25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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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등 식량안보, 식량주권은 단순한 농업의, 농민의 문제가 아니고, 국민의 생존과 국가의 안보가 쌀 한톨에 달려있어

[정기석 칼럼] 급기야 대통령까지 직접 나섰다. 미분양 주택을 정부가 나서 공적자금을 투입, 매입하라고.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어 주택 미분양 사례가 속출하자 대통령까지 나서 불가피한 시장개입을 노골적으로 선언한 것이다.

정부가 만일 미분양 주택을 모두 사들인다면 27조원 이상의 자금이 필요하다고 한다. 당연히 국민의 혈세로 조성된 재정부담을 걱정하는 국민의 우려가 적지 않다. 그런데, 정부는 태연하다. 그만한 돈은 이미 준비되어 있다는 것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국민의 혈세로 조성된 재정기금인 주택도시기금이 2021년말 기준으로 47조원이 넘는다. 주택도시기금은 국토교통부가 건설임대주택 매입 재원으로 사용하는 기금을 말한다. 일반적 분양가 시세를 감안해 업계에서 산출한 전국 미분양 주택 가치는 27조 정도로 추산된다. 미분양아파트를 주택도시기금으로 다 사주고도 돈이 많이 남는 셈이다. 문제는 그 돈은 대통령의 돈도, 정부의 돈도 아닌, 국민의 돈이라는 점.

정부가 ‘집’은 다 사 주겠다

정부는 미분양 위험선을 6만2000호로 정해놓았다. 정부와 부동산업계는 조만간 미분양 주택 규모가 6만 세대 후반까지 급증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래서 부동산, 건설 등 관련업계는 더 미룰 수 없다고 재촉한다. 미분양 주택을 일단 매입해 건설사의 자금숨통부터 틔워달라고 읍소한다. 부동산시장이 안정 되는대로 재매각해 자금을 회수하면 된다고 설득한다. 잘 하면 정부가 시세차익까지 볼 수 있다며 정부를 은근히 구슬리고 있다.

그런데 정부는 매입 주택을 재매각항 생각은 없다. 공동임대주택으로 사용한다는 방침이다. 그렇다면 기금을 회복할 시기나 방법은 불투명하고 요원하다. 당초, 시장에서 팔리지 않는 악성재고를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점 자체가 문제의 소지를 안고 있다. 주택가치 대비 분양가의 과다책정 자체도 논란거리다.

사실 지원의 기대효과도 불확실하다. 직접적 수혜자인 건설사들 입장에서 당장 단기자금 상황은 해소할 수 있을지 모르나 장기적으로 회복단계로 전환될 수 있을까. 과연 이번 조치를 통해 냉각된 부동산시장의 경기가 호전될 수 있을까. 정부도, 건설사도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국토교통부는 부정적 여론을 애써 무시하고 있다. 대통령이 이미 지시를 했기 때문에 이미 검토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발표했다. 다만 언제, 얼마만큼의 물량을 매입할 것인지 등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세우지 않았다고 한다. 정부 내에서조차 충분한 고민과 협의 없는 대통령의 즉흥적, 독단적 지시가 아닌가 걱정이 크다.

‘쌀’은 정부가 못 사준다

비슷한 시기에 대통령은 또 직접 나섰다. 양곡관리법 일부개정안에 대해 직접 거부권 행사를 시사한 것. 연초 농림축산식품부 업무보고에서 “지금 생산되는 쌀은 시장에서 어느 정도 소화하느냐와 관계없이 무조건 정부가 매입해 주는 식의 양곡관리법은 농민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번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쌀 수확기에 초과생산량이 3%이상이거나 쌀값이 평년 대비 5%이상 하락한 경우 초과생산량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매입한다”는 내용이다. 민주당 등 야당은 개정안이 “쌀 값 폭락을 막고 농가 소득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안전장치라며 지난해 28일 국회 본회의로 '직회부'한 바 있다. 직회부한 법안은 30일 이내에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과반 의석을 점한 민주당 단독으로 양곡관리법 개정안의 본회의 상정 및 통과가 유력한 실정이다.

이에 대해 주부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 장관도 “"농업·농촌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대통령과 말을 맞춘듯 정색을 하며 반대하고 나섰다. 쌀을 의무 매입하면 쌀 공급과잉, 쌀값 하락, 재정 부담 심화 등의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논리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법안 개정으로 시장격리가 의무화되면 쌀 초과 공급량은 현재 20만t 수준에서 2030년에는 60만t 이상으로 증가하고, 쌀 가격도 현재보다 8% 이상 낮은 17만원(80㎏ 기준) 초반에서 정체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격리 의무화에 따른 재정부담은 연평균 1조원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예측하며 정부출연연구소 답게 정부 주장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논리만 제공하고 있다.

이에 전국농민회, 전국여성농민회 등 주요 농민단체는 “대통령의 농정 무지이자 시대에 뒤떨어진 인식으로서, 국민의 주식인 쌀에 대한 국가 책임을 저버린 대통령을 거부한다”고 강력히 규탄하고 있다.

전농, 전여농은 “의무화라는 용어를 무제한 수매로 왜곡한다”며 “쌀은 생산량이 조금만 초과하거나 부족해도 시장에 내맡길 경우 가격 등·폭락이 심해 민생이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며, “매년 의무 도입되는 수입쌀에는 막대한 재정을 퍼부으면서, 농민들의 목숨값이자 국민의 주식인 쌀값 안정을 위한 예산을 낭비라고 표현하는 대통령은 자격이 없다”고 비판했다.

대통령 등 정부는 여전히 수입식량으로, 스마트농업으로, 시장메커니즘으로 식량을 확보할 수 있다는 환상과 자기기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 전 세계적인 기후위기, 식량 위기 앞에서 시대착오적이고 전근대적인 인식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쌀 등 식량안보, 식량주권은 단순한 농업의, 농민의 문제가 아니다. 국민의 생존과 국가의 안보가 쌀 한톨에 달려있다. '집장사의 집' 보다 '농민의 쌀'이 국민과 국가에게 더 소중하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자소개>

정기석(tourmali@hanmail.net)

전국퇴직금융인협회 금융시장연구원 연구위원

경상국립대 창업대학원 6차산업학과 비전임교원

前 국회정책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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