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량 벼 품종 보급 중단...과잉생산보다 식량위기가 문제
우량 벼 품종 보급 중단...과잉생산보다 식량위기가 문제
  • 정기석
  • 승인 2023.02.22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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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석 칼럼] 정부가 또 이해하기 어려운 대책을 내놓았다. 쌀 과잉 생산을 막는답시고 우량 벼 품종 보급을 중단키로 발표했다. 10a당 570㎏ 이상 생산되는 다수확 품종은 당장 내년부터 공공비축미 매입 대상에서 제외하고 2025년부터는 종자 공급도 중단하겠다는 것이다.

벼(쌀)는 한국민의 주식으로 국가의 식량안보의 중심이자 보루이다. 벼의 대표적인 다수확품종은 10a당 생산량이 596㎏인 전북의 ‘신동진’, 585㎏인 전남의 ‘새일미’ 등이 있다. 충청과 영남지방에서 많이 재배되는 새일품, 진광, 황금노들 등 3개 벼 품종은 이미 올해부터 공공비축미 매입 대상에서 제외됐다. 퇴출된 이유는 수확량이 정부가 정한 상한선인 570㎏ 보다 많다는 단순한 이유 밖에 없다.

이같은 정부의 우량벼 품종 퇴출 방침에 농민들은 일제히 반발하고 있다. 밥맛이 좋고 생산량도 많아 농가소득 증대에 기여했던 우량품종을 퇴출하는 정책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는 농촌과 농민의 현실을 도외시 한 단순무식한 탁상행정이라며 즉각 비판하고 대책의 철회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생산 감축보다 식량 자급부터

특히 전북의 경우 신동진 벼 대신 수확량이 적은 참동진을 권장하고 있다. 참동진은 키가 커서 바람에 쓰러지기 쉽고 병해충에도 취약한 편으로 수확량이 너무 적은 품종이라 농민들의 반발과 걱정은 더 크다. 전북농업인단체연합회는 “작금의 쌀값 하락의 주원인은 과잉생산이 아니라 쌀 초과 생산량이 3% 이상이거나 쌀 가격이 5% 이상 하락 발동해야하는 자동시장격리제가 제대로 시행되지 않은 게 문제”라며, “쌀 시장격리제 의무화를 담보하는 양곡관리법 개정 쌀값 안정화를 위한 진정한 대책”이라는 주장이다.

무엇보다 쌀 생산량은 최근 계속 감소추세가 심화되고 있다. 일단 통계청이 발표한 조사에 따르더라도 지난해 쌀 생산량은 376만4,000톤으로 2021년도의 388만2,000톤 대비 3%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농민들은 정부의 발표한 통계수치가 농업현장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낮은 수준이라며 적어도 20% 이상 감축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처럼 지금 우리나라는 쌀 등 식량의 과잉생산을 걱정할 처지는 아닌 듯 하다. 2022년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연간 곡물수요량 2,132만 톤 가운데 겨우 429만 톤만 국내에서 생산됐을 뿐이다. 나머지는 글로벌 초다국적 곡물메이저 등을 통한 수입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전체 식량자급률은 45.8%에 불과한 것이다. 전량 수입하는 사료용 곡물까지 포함하면 곡물자급률은 19.3%로 떨어져 OECD 최하위를 도맡고 있다. 밀과 콩은 각각 0.8%, 30.4% 수준으로, 92.8%인 주식 쌀이 있어서 그나마 그 정도 식량자급률을 유지하는 형편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시장에서 남는 쌀을 정부가 의무 매입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부정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대신 벼 품종 전환, 타 작물 전환 지원 등 쌀 과잉생산을 방지하기 위한 대증적, 1차원적 대책만 고집하고 있다. “정부가 계속해서 남는 쌀을 의무적으로 매입하면 현재 평년작만 돼도 20만 톤이 남는 구조적 공급과잉 상태가 심화되고, 쌀값 안정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정부 입장이라는 주장이다.

더욱이 쌀 시장 격리 의무화는 농업인에게 쌀을 많이 생산해도 된다는 잘못된 시그널로 작용하고, 타 작물로 전환할 유인이 줄어든다”는 논리다. 그렇다면, 우리 정부는 식량자급, 식량안보에는 관심이 없는 것인가. 정부 농정관료들의 눈에는 쌀 등 식량이 단지 돈으로 사고파는 상품으로만 보이는 건 아닌가.

농업선진국은 기후·식량의 미래를 걱정

농업과 식량을 대하는 이른바 EU(유럽연합) 등 농업선진국, 식량자급국가들의 입장은 한국 정부의 대책과는 관점이나 차원부터 많이 다르다. EU는 2019년말 ‘유럽 그린딜(European Green Deal)’을 발표했다. 2050년까지 기후중립국을 달성한다는 목표를 제시한 것이다. 이어 2020년에는 농업 분야의 기후와 환경을 다루는 ‘생물다양성 전략(EU Biodiversity Strategy for 2030)’, ‘농장에서 식탁까지 전략(Farm to Fork Strategy)’도 연달아 발표했다.

이는 기후와 환경의 위협이 날로 심화되고 강조되면서 농업 분야는 더욱 건강하고 안전한 먹거리를 생산, 국민과 인류의 건강과 환경에 기여하리라는 미래예측 때문이다. 특히 2023년부터 본격적으로 적용될 ‘2021년 공동농업정책(CAP) 개혁안’은 한국 농정에도 다양한 시사점과 혁신방안을 제안하고 있다. 무엇보다 환경보전과 기후변화 대응을 농정의 핵심으로 내세우면서 기후위기는 곧 식량위기로 직결된다는 준엄한 경고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온실가스 감축과 관련이 적고 의무사항 이행여부 점검에 행정비용이 과다하다는 등의 비판을 받아온 기존 녹색직불금을 폐지,‘생태직불금’을 새롭게 신설하는 게 주목된다. 즉, 농민 소득보장 성격이 강한 기존의 직불제에서 환경보전과 기후변화 대응 활동에 대한 농민의 참여도에 따라 ‘진짜 농민(genuine farmers)’을 선별 지원하는 등 차별적 차등 보상방식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이처럼 EU가 농업 분야에서의 환경성을 강화하는 목적은 분명해보인다. 한마디로 기후위기, 환경위기는 곧 농업위기, 식량위기로 직결된다는 점이다. 나아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해 기후변화 목표 달성, 생물다양성 협약 이행에서 국제사회를 선도하고 농식품 관련 세계무역질서를 주도하려는 강한 의지의 표현도 품고 있다. 따라서, 그린뉴딜을 추진해온 우리 농정당국은 물론 현장의 농부들조차 최근 EU 농정의 변화와 전망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유럽은 코로나로 상징되는 기후와 환경 위협 시대에 혁신적인 미래전략과 대안정책을 발표하며 농정의 위기를 적극 대비하고 있다. 기후, 환경, 생태 다양성이라는 사회적, 국가적, 국제적 의제를 중심으로 '사회적이고 생태적인 유럽의 농업'을 재설계하고 있다.

그런데 곡물자급률 19%선 밖에 안 되는 우리 정부는 뜬금없이 식량의 과잉생산을 걱정하고 있다. 식량을 많이 생산하는 우량품종을 식량이 적게 생산되는 불량품종으로 바꾸라고 농민들을 겁박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농정당국은 지금 어느 세계에, 어떤 시대에서, 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아가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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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정기석(tourmali@hanmail.net)

전국퇴직금융인협회 금융시장연구원 연구위원

경상국립대 창업대학원 6차산업학과 비전임교원

前 국회정책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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