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석남의 에듀컬처] 지난 겨울의 ‘난방비 대란’이 다시 한 번 ‘포퓰리즘’이란 단어를 소환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최근 “에너지 문제와 연관해서 포퓰리즘은 정말 민주주의를 해치는 가장 큰 해악”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가 가격 인상을 회피했고, 더불어민주당이 난방비 대란과 관련된 지원을 위해 7조 원 규모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요청한 것을 비판하며 나온 발언이다. 한 총리는 이어 “충분히 할 수 없는 일을 인기만 얻기 위해 하는 것이 포퓰리즘의 본질”이라고 덧붙였다.
그동안 정치권에선 무상급식, 반값 등록금, 기본소득 등 포퓰리즘 정책에 대한 논란이 뜨거웠다. 각 당의 이해관계를 둘러싼 공방이 치열해지면서 이에 대한 국민들의 입장차도 갈수록 커져 사회적 갈등으로 번지기도 했다. 본래 포퓰리즘은 정치적 이해관계나 정파에 상관 없이 일반 대중을 대변하려는 정치 소통을 의미했으나, 지금은 대중의 인기를 얻기 위한 정치권의 인기영합적인 행태, 즉 '표(票)퓰리즘'의 성격이 강한 것이 사실이다.
포퓰리즘(populism)을 우리는 보통 '인기영합주의', '대중추수주의'로 번역한다. 비현실적인 선심성 정책을 내세워 일반 대중을 호도한다는 부정적 의미다. 하지만 포퓰리즘의 어원이 되는 라틴어 '포퓰러스(populus)'는 '대중', '민중'이라는 뜻이다. 이를 직역하면 '대중주의', '민중주의' 정도가 된다. 즉 '대중의 뜻을 따르는 정치행태'라는 점에서 결코 부정적인 의미로만 보기 어렵다. 다수의 지배를 뜻하는 민주주의(democracy)도 실은 포퓰리즘과 맥을 같이 한다.
기록상 서양에서 포퓰리즘이 처음 등장한 것은 기원전 2세기 로마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호민관이던 그라쿠스 형제가 개혁을 위한 지지 확보를 위해 시민에게 땅을 나눠주고 옥수수도 시가보다 싸게 팔았는데 이것이 포퓰리즘의 기원이 된다는 설이다.
근대적인 의미로 보자면 1870년 러시아에서 전개된 '브나르도(인민속으로) 운동'을 포퓰리즘의 시초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어원으로 보자면 1891년 미국에서 결성된 국민당(people's party)이 당원들을 '포퓰리스트'라고 부른 것이 뿌리가 됐다는 게 정설이다.
포퓰리즘이 우리에게 부정적 의미로 각인된 것은 남미 때문이다. 1950년대 아르헨티나의 후안 페론과 그의 두 부인 에바와 이사벨은 노동자와 빈민을 위한 정책을 편다는 명분으로 대책 없이 국고를 탕진해 결국 아르헨티나 경제를 망가뜨렸다. 역사상 소득 분배와 산업화가 가장 활발한 시기였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지만, 페론 정권은 결국 후대에 국민을 위한 복지 확대를 포퓰리즘이란 이름으로 비난하게 하는 빌미를 제공하고 말았다.
우리 정부와 정치권은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한 포퓰리즘 정책의 한계와 부작용을 깨닫고 장기적인 재정계획과 우선순위를 고려한 정책 마련에 고심해야 한다. 한정된 재정으로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혹자는 "세금을 좀 더 걷어서 모두에게 다 나눠주면 되지 않느냐"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세수 증대를 위한 현실적인 수단과 향후 구체적인 계획이 뒤따르지 못하면 허구에 그치게 마련이다. 따라서 ‘사회적 약자를 위한다’는 복지정책의 본래 취지를 살려 ‘사회구성원 모두가 복지정책의 수혜자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복지사각지대에 놓인 어려운 사람들이 더 큰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구체적인 재정확보 방안도 없는 각종 선심성 복지정책의 남발은 막아야 한다. 이익집단의 지지를 얻기 위한 방만한 복지정책으로 결국은 국가부도 사태를 맞이한 그리스 등의 사례가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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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조석남 (mansc@naver.com)
- 극동대 교수
- 전 한국폴리텍대학 익산캠퍼스 학장
- 전 서울미디어그룹 상무이사·편집국장
- 전 스포츠조선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