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의 기적...4년 만의 봄, 꽃처럼, 새싹처럼
머리카락의 기적...4년 만의 봄, 꽃처럼, 새싹처럼
  • 이영미
  • 승인 2023.03.04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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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미 칼럼] 입학식은 따뜻했다. 옛날이면 한 반의 학생 수였다던, 고작 76명이 아이 초등학교 입학생의 전부였다. 꽃과 선물이 놓인, 아이 이름이 붙은 자리에 착석해서 입학식을 시작했다. 나 만큼이나 초조한 눈으로 뒤에서 입학식을 지켜보고 있는 아이 아빠와, 오후에 있을 중학교 입학식에 맞춰 넉넉한 교복을 갖춰 입은 큰 애는 내빈석에 있었다. 

그래도 뜻있고 감사한 건, 이게 무려 4년 만에 열린 행사라는 점에 있다. 그간 선생님도 아이들도, 부모들도 얼마나 섭섭했을까 싶었다. 두 아이 모두 새 학교로 진학하면서 무사히 입학식을 치르는 일도 당연한 것 만은 아닌 시대. 조금은 평범하지 않아서 애국가 제창할 때 일어서지 않고 귀를 막고 앉아있는 아이였지만, 교가를 부를 때도 앉아서 꽃다발을 만지며 혼잣말을 하는 아이였지만. 그래도 아이는 행사를 치렀고, 교실을 방문했고, 손으로 브이자를 그리면서 가족사진을 찍었다.

쉬운 일 만은 아니었다. 아이는 가을 내내 탈모로 머리카락이 수 가닥씩 빠졌다. 정수리가 절반 가까이 훤하게 벗겨지고도 뒤통수 쪽에 땜통(머리가 빠진 원형의 빈 곳)이 네 개나 생겨버렸다. 처음에 찾은 병원에서는 억장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완전히 머리가 빠져 알머리가 된 환자 사진을 보여주면서, 얘는 이렇게 되어도 이상할 게 없는 상태라고 하니 덜컥 겁부터 났다. 

치료는 길고 어렵고, 생활 속의 모든 습관이 관계되어 있다고 했다. 샴푸와 바르는 약을 받아 와서는 힘든 치료를 계속 할 거라면 각오를 하고 오라고 했다. 빠져서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매일매일 모아서 가져오라고도 했다.

마룻바닥을 기어 다니면서 떨어진 머리카락을 주워 모았다. 두피 관리도 하고 먹을 것도 유기농으로 바꿨다. 목욕탕에서 빠진 머리를 살펴보던 순간, 큰 아이 것과 내 머리가 다 섞인데서 작은 아이 머리카락을 찾던 어느 순간 그만 심하게 ‘빡쳐서’그만두었다. 다른 병원을 찾았다. 나는 아이 스트레스를 관리 못한 죄인이고 의료인은 절대자로 명령을 하여 형벌을 받는 일인가 싶어서. 

내가 무슨 박연진이라도 된다는 것인가, 천천히 말라 죽어 가게? (드라마 ‘더 글로리’중에서) 표나게 불편해하지는 않았지만, 우리 병원은 간호사가 (몸부림치는)아이를 잡아줄 수 없으니 아빠가 오셔야 한다는 말에서 느껴지는 위화감은 어쩔 수 없었다.

새로 찾은 병원은 몹시 붐볐다. 치료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대기 시간이 길었다. 거리도 멀어서 아이 아빠가 반차를 내고 같이 가 줘야 했다. 치료 받는 걸 진정 시키는 것도 일이었다. 다행히 병원에서 다른 말은 하지 않고, 어린데 잘 버틴다고 해 주었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왔다. 먹는 약과 두피 치료를 계속했다. 아이는 치료 받으러 병원 가는 일을 드라이브 간다고 생각했는지 고맙게도 즐거워하면서 따라왔다. 두피 치료를 끝내면 집 근처로 와서 마카롱과 우동을 먹고 감각치료실에 가는 일이 요일 행사처럼 되었다.

약이 독하다고 했다. 뭐가 어떻게 독한지 몰랐는데 아이가 공연히 성질을 냈다. 장소 이동을 할 때면 발길질을 하고 내 머리채를 잡았다. 약속 어기는 버릇이 들까 하여 억지로라도 치료 스케줄을 지켜냈다. 울고불고 집어던진 물건이 유리를 깨고 바닥을 패이게 했다. 아이가 할퀴고 꼬집은 상처가 손에 남았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몰랐는데 텅 빈 겨울 들판같던 아이의 머리에 새싹같은 머리털이 나기 시작했다. 정수리의 땜통은 제법 까맣게 메워지기 시작했다. 약을 끊었더니 컨디션도 습관도 순했던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혼자서 씩씩하게 옷을 입고 양치질을 하고 용변을 보더니 등굣길에 나섰다.

남들에게는 평범한 일상이겠지만 우리 아이에게는 깜짝 놀랄만한 성장이었다. 이걸 머리카락의 기적이라고 불러도 될까 싶었다.

기다리면 되는 일이 있다고 한다. 아니, 기다려야만 한다는 뜻일 수도 있다. 기다렸더니 아이의 머리와 마음에 새싹같이 무언가가 돋아나고 뒤이어 빼곡이 채워졌다. 내 마음도 봄 햇살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런 봄, 나 역시 한 4년 만이다.

필자 소개

이영미<klavenda@naver.com>

동화작가/문화예술사

세종대학교 대학원 미디어컨텐츠 박사

경희대학교 대학원 신문만화

전 명지전문대 글쓰기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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