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뻐하기엔 너무 먼 ‘어이상실’ 국민연금
예뻐하기엔 너무 먼 ‘어이상실’ 국민연금
  • 김명서
  • 승인 2023.03.2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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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악 마이너스 수익률에 SVB 투자 등으로 거액 날려

[김명서 칼럼] ‘중이 미우면 가사(袈裟)도 밉다’는 속담이 있다. 사람이 미우면 그에게 딸린 모든 게 밉다는 의미다. 미움을 당하는 처지에서 해석하면 웬만큼 해서는 잘 보이기 어렵다는 뜻일 수도 있다. 

요즘 들어 국민연금관리공단이 딱 ‘미운 중’ 신세다. 지난 해 수익률 마이너스 8.22%라는 사상 최악의 운용 실적을 기록하면서 적립금 중 물경 79조6000억원이 사라졌다. 이런저런 변명은 하고 있지만, 그에 상관없이 미운 털은 잔뜩 박혀 있는 상태였다.

여기에 거액을 투자한 해외은행들의 부실과 파산이라는 먹구름이 잇따라 닥쳤다. 미국의 실리콘밸리은행(SVB)과 시그니처뱅크(SB), 그리고 스위스의 크레디트스위스(CS)은행이 그들이다. 국민연금은 이들 3개 은행에 모두 2783억원을 물렸다. 아직 상황이 진행 중이라 얼마를 회수할 수 있을 지는 불투명하지만 대규모 손실은 불가피하다. 

묘하게도 이번 사태에 대규모 피해를 본 국내 투자기관은 국민연금이 유일하다. 다른 기관은 우려할 만한 투자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 금융당국의 설명이다. 그러다보니 국민연금은 이들 은행 관련 보도에 맞물려 거의 날마다 뉴스에 올랐다. 

국민연금으로서는 여론의 도마 위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려는 생각이 무엇보다 컸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투자 판단에 별 잘못은 없었고, 투자액도 상당 부분 회수할 수 있는 것처럼 여론전을 넌지시 펼치기도 했다.

작년 4분기 SVB 주식 하락 국면에도 무리한 매수…‘피해 축소’ 변명만 되풀이

SVB 사태만 놓고 보자. 국민연금은 지난 해 말 기준 SVB그룹 주식에 9600만달러(923억원)을 투자했다고 국회에 보고했다. 이 중 직접 투자액은 2300만달러, 민간 자산운용사에 굴려달라고 맡긴 위탁투자액은 7300만달러다. 

국민연금은 사태가 터지자 “직접 및 위탁을 포함해 보유 지분은 2021년 말 대비 감소한 것으로 파악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보유 주식은 제3자 인수조건들을 보며 매도 또는 보유 여부를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피해는 걱정하는 만큼 크지 않을 것이며 상당액은 회수할 수 있을 것처럼 설명한 것이다.

SVB그룹 주가는 1년 전만 해도 거의 600달러 수준에 근접했지만 파산 여파로 106.04달러까지 급락한 후 거래 정지된 상태다. 이미 5분의 4는 손실을 본 것이다. 이런 판에, 도대체 무슨 근거로 회수 가능성을 정색하고 얘기하는 것인지 궁금할 뿐이다. 

여기에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SVB 주식을 2만764주 추가 매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지난해 4분기에는 1만9884주를 순매수했다. 주가가 하락하는 국면에서 ‘저가매수’라는 무리수를 뒀던 것이다. 그래놓고서는 무리한 투자에 대해서는 입을 다문 채 전년에 비해 보유지분이 감소했다는 점만 강조했다. 

이 같은 ‘피해 축소’, ‘가능성 과장’식 변명은 다급할 때면 반복됐다. 국민연금은 이미 작년 상반기에 -8% 수익률로 77조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그런데도 국민연금은 “주식시장의 변동폭 축소 등으로 수익률이 좋아지고 있다”면서 “8월25일 기준 수익률이 -4%로 회복됐다”는 해명을 내놓았다. 7‧8월 두 달 사이에 4%포인트가 회복됐고, 하반기에는 좋아질 테니 크게 걱정 말라는 투였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어땠는가. 이미 언급한대로 최종 성적표는 -8.22%였다. 8월 이후 넉 달 사이에 4.22%포인트가 더 내려간 것이다. 수익률도 최악이었지만 신뢰도 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독립된 투자전문가들로 진용 다시 짜야…정부 대책은 ‘면피성’ 냄새 짙어

국민연금의 탈출구는 수익률을 최대한 높이는 것뿐이다. 그러기 위해선 자산운용의 전문성을 대폭 강화하는 쪽으로 시스템을 재정비해야 한다. 돈을 잘 굴려 한 푼이라도 더 늘릴 만한 진짜 전문가들로 진용을 짜야 한다. 

이 대목에서는 캐나다 국민연금이 독보적인 모범사례로 자주 거론되고 있다. 캐나다 정부는 정부‧정치권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투자전문가들에게 연금을 맡기고 법 조문에 ‘수익 극대화’를 명시해 운용하고 있다. 그 결과 한 때  파산 직전이었던 캐나다 국민연금의 수익률은 최근 10년 9.58%로 세계 1위다.

캐나다처럼 되려면 무엇보다 국민연금 최고의결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 전문위원 20명부터 확 바꿔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현재 위원들은 정부 대표 6명에다 사용자‧근로자 단체, 농어업 단체, 자영업자 단체, 소비자 및 시민단체가 추천한 인사들이다. 금융‧투자 전문성과는 상관없는 이해관계자 중심의 구성이다. 여기에다 정권마다 대놓고 ‘낙하산’을 내려 보낸다는 비난도 거셌다. 정권이 국민연금을 이용해 기업 경영에 지나치게 간섭하려 한다는 지적은 ‘현재 진행형’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얼마 전 국민연금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특단의 대책을 마련토록 지시했다. 노동, 교육과 함께 3대 역점 과제인 연금개혁은 수익률이 바닥인 상황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최악의 수익률에 대한 여론이 심상치 않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있는 돈도 못 불리면서 국민한테만 손을 벌리느냐”는 비판은 뼈아플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정부가 내놓은 대책이라는 게 영 신통치 않다. 기금운용위 전문위원의 연임을 한 차례만 가능토록 하고, 전문위원 추천은 단수가 아닌 복수로 하도록 관련 시행규칙을 고치겠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이를 입법예고하고 의견 수렴 절차를 진행 중이다. 외국에서 최고의 투자 전문가라도  데려와야 할 ‘비상상황’에 비추어보면 ‘눈 가리고 아웅’식 대응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대통령 지시에 따르겠다는 시늉만하는 ‘면피성 대책’의 냄새도 풍긴다.

그러다보니 지난 달 말 기금운용위 상근 전문위원으로 선임된 검사 출신 한석훈 변호사의 자격 논란만 새삼 부각되고 있다. 사용자 단체 추천을 받은 한 변호사는 20년간 검사로 지내다 법학전문대학원에서 교수로 상법 등을 강의했지만 연기금 운용과는 거리가 있다. “또 검사 출신이냐”는 비판이 당연히 빗발쳤다. 이에 대해 정부 측은 “법령상 자격조건을 갖추고 있어 임명한 것”이라며 별다른 추가 조치 없이 비켜갔다.

현재 우리나라 국민연금 수령자는 582만명. 절대 다수 수령자에게 국민연금은 노년의 불안한 삶을 지탱해 줄 마지막 버팀목이다. ‘아내가 예쁘면 처갓집 말뚝만 보고도 절을 한다’는 속담도 있다. 맡긴 돈 까먹지 않고 잘 불려만 준다면야 국민연금 간판만 보고도 고개를 숙이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 것이다. 국민연금이 ‘미운 중’ 신세에서 ‘예쁜 아내’로 변신할 수 있을까. 기대하기에 현실은 너무 어처구니가 없고 울화통만 치밀게 한다. 

<필자 소개>

김명서(clickmouth@hanmail.net)

-서울이코노미뉴스 부회장

-전 서울이코노미뉴스 대표, 주필

-전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심의실장

-전 서울신문 편집담당 상무

-전 서울신문 사회부장, 정치부장, 논설위원,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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