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음증(觀淫症)’과 SNS, 그리고 챗GPT
‘관음증(觀淫症)’과 SNS, 그리고 챗GPT
  • 조석남
  • 승인 2023.04.19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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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석남의 에듀컬처] ‘레이디 고디바’라는 그림이 있다. 빅토리아 여왕 시대 영국 화가 존 콜리어의 작품이다. 아름다운 여인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백마를 타고 중세 거리를 지나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다. 부끄러움에 고개 숙인 그녀의 나신은 너무 눈부셔 요염하기보다 성스럽다.

그녀는 실존인물이다. 11세기 중엽 영국 코번트리 영주였던 레오프릭 3세의 부인 고디바다. 영주의 두번째 부인인 고디바는 처참한 농민들의 생활을 보고 남편에게 과중한 세금을 줄여줄 것을 요구한다. 부인의 이같은 간청에 영주는 ‘설마’하는 생각에 “당신이 벌거벗은 몸으로 말을 타고 영지를 한 바퀴 돈다면 그렇게 하겠소”라고 조건을 내건다. 고디바는 고심 끝에 남편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17세의 고디바가 어려운 결심을 실행에 옮기던 날, 감동한 주민들은 부인의 나신을 절대로 훔쳐보지 말자고 결의한다. 모든 주민이 창문을 닫고 커튼을 내려 그녀의 희생에 보답했다. 그러나 단 한 사람, 재봉사 톰이 호기심을 참지 못했다. 약속을 어기고 커튼을 들췄다. ‘관음증 환자’를 뜻하는 ‘엿보는 톰(peeping Tom)’이란 표현이 여기서 생겼다.

타인의 삶을 지켜보면서 재미를 느끼는 이른바 ‘관음증(觀淫症)’에 대한민국이 푹 빠졌다. 미디어와 관련 기술 등이 발전하면서 관음증도 더욱 진화하는 양상이다. 인터넷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발달로 전파 속도는 걷잡을 수 없이 빨라졌다.

최근의 관음증 현상은 1998년 ‘O양 비디오’나 2000년 ‘B양 동영상’ 때와도 또 다르다. 당시에는 영상을 직접 CD나 비디오 테이프로 복사한 뒤 전파해야 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손가락 한 번이면 불과 1분 이내에 영상을 전 세계로 전송할 수 있다.

고등학생 A양은 지난해 SNS 등에 자신의 사진이 성희롱 글과 함께 돌아다닌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른바 '지인 능욕' 게시글에 사진이 도용돼 피해를 입은 것이다. 타인의 사진에 신상정보를 같이 올리고, 성희롱성 글을 붙이거나 사진을 합성하는 방식으로 대상자를 성적으로 비하하고 이를 다수가 소비하는 디지털 성범죄의 한 방식인 ‘지인 능욕’도 청소년층을 중심으로 횡행하고 있다.

범행 대상은 가까운 지인부터 교사, 연예인, 심지어 가족까지 가지각색이다. 지난 4월 9일 발표된 방송통신위원회의 '2022 사이버폭력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초4~고3 청소년 응답자의 5.1%는 ‘지인 능욕’ 범죄를 목격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불법영상물 유포'(5.8%), '몰래카메라(불법 촬영)'(5.5%)와 비슷한 수치다. 독버섯처럼 퍼져나가고 있는 ‘관음증 사회’의 한 단면이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챗GPT로 대표되는 생성 인공지능(AI)이 진화하면서 ‘AI 음란물’까지 무차별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챗GPT는 성적인 대화나 편향 발언 등을 할 수 없게 설계돼 있지만, 특정 명령어를 입력하고 상황을 자세히 설정해주면 이를 깰 수 있다. 일명 ‘탈옥(jailbreak)’이라 불리는 행위다.

AI로 만든 음란 사진·영상을 공유하는 SNS 계정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런 곳에선 AI 음란물을 더 사실적으로 만들기 위한 정보 공유도 이뤄진다. 실제 명령어에 아이돌 스타나 유명 연예인이 사용되기도 한다.

SNS는 다양하고 새로운 생각과 의견을 교환하는 ‘21세기형 소통의 장’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하지만 SNS의 부작용과 폐해도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SNS는 압축된 정보를 들고 이용자를 직접 찾아간다는 점에서 포털보다 신속하고 광범위한 전파력을 가지고 있다. 좋은 정보만큼 부정적이거나 사실이 아닌 정보도 단 시간 내에 퍼뜨릴 수 있다.

SNS에 대한 법적 규제론까지 나온다. 그러나 ‘타율적 규제’에 앞서 SNS 사용자들 모두가 ‘자율적 규제’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리트윗 버튼 한 번이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망가뜨릴 수도 있다.

‘톰’들의 활갯짓 사이로 ‘창문을 닫는’ 코번트리 주민들이 많아져야 한다. 퍼나르기에 부산한 ‘톰’들의 행동이 스스로 부끄러워지도록 동영상 주인공 대신 유출자를 도태시켜야 한다. 그래야 코번트리 영주와 같은 ‘악랄한 생산자’가 설 땅을 잃고, SNS의 순기능이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이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자 소개>

조석남 (mansc@naver.com)

- 극동대 교수

- 전 한국폴리텍대학 익산캠퍼스 학장

- 전 서울미디어그룹 상무이사·편집국장

- 전 스포츠조선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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