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담씨의 하루...어느 장애인이 쏘아올린 '작은 공'
지담씨의 하루...어느 장애인이 쏘아올린 '작은 공'
  • 이영미
  • 승인 2023.04.22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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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라는 것은 게으르거나 부주의해서 갖게 된 것이 아니며, 누구든 늙고 약해지면 크고 작은 장애를 갖게 될 수도

[이영미 칼럼] 집에서 가까운 장애인 종합 복지관에서는 장애인의 날을 맞아 한 발달장애인 예술가의 작품을 전시했다. 화가 김지담씨는 고운 색감의 그림 속에 있는 뚱뚱한 청년을 그렸다. 그는 바로 김지담씨 자신의 모습이었다. 김지담 화백은, 그림 속에서 얼굴이 조금 비뚤어진 가운데서도 밝고 묘한 표정으로 세상을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그 사람이, 거의 매일 5시 근처에, 복지관 근처를 뒤뚱거리며 오가서,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던 청년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1급 발달 장애인으로 복지관에서 교육을 받아 화가로 데뷔해 전시까지 열게 됐다니 진짜 대견했다. 그가 매일 매일을 어떻게 보냈을지가 대략 보였기 때문에.

요즘, 내 아이의 상태에 대해 얘기하면 비슷 비슷한 반응들을 보인다. ‘요즘엔 사회적 인식이 달라져서’ ‘혜택이 많이 늘어나서’ 하며 다행이라고들 한다. 맞는 말이다.

이 정부는, 장애인 권리 예산을 애초 국회에서 결정한 액수보다 50% 넘게 삭감했다. 장애인을 위한 시설들이 과거에 비해 늘어난 것으로 보이지만, 그건 사실 장애인들이 목숨 걸고 했던 시위가 사회적 인식을 끌어냈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과거 여당 대표는 장애인들이, 지하철을 점거해 시민들의 출근길을 방해하고 위협한다고 SNS에 썼다.

지금의 우리 사회가 옛날에 비해 인식과 혜택이 달라졌을지는 몰라도 장애인이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라고 볼 수 있을까 싶다.

장애인 지하철 시위를 비난하는 악플의 수위 

장애인에 대한 복지는 한때, 쓸데 없는 것이라고 여겼었다. 특히 경제 논리에 따르면 생산성을 갖지 못하거나 미흡한, 즉 돈을 벌지 못하는 존재는 죽여도 된다는 논리가 있었다.

1920년대 독일의 법률가 카를 빈딩과 정신과 의사 알프레트 호헤는 “살 가치가 없는 말살에 대한 허용”이라는 책에서, 장애인에 경제적 부담을 강조하고 그 해결책으로 ‘자비로운 살해’를 제시했다. 영국의 멜서스도 ‘인구론’에서 장애인 등을 잉여 인간으로 보고 그들을 죽게 내버려두는 사회가 전체(경제)의 증대를 이끌 수 있다고 했다. 

자유경제적인 논리로 볼 때, 사회의 성장을 위해 뛰어난 인재를 육성한다는 취지는 좋으나, 그러한 논리가 극으로 치닫다가 그 반대인, 생산성을 갖지 못하면 '잉여'로 취급하는 쪽으로 가게 되면 과거 경제논리를 펴던 학자처럼 장애인은 죽여도 좋다는 쪽으로 치달을 수 있다.

1cm 높이의 턱이 휠체어로 넘기에 얼마나 힘이 드는지, 집중력과 지능이 조금만 부족해도 교육을 따라가기 힘든 아이들에게 치료와 교육을 병행하려면 얼마나 많은 노력과 돈이 들어가는지 설명해도 그들에게는 닿지 않는다. 

설마 할 수 있지만, 실제 장애인 지하철 시위를 비난하는 악플의 수위를 보면, 그런 생각도 이 사회에 충분히 존재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나 살기도 팍팍한데 저런 사람한테까지 비싼 세금을 퍼줘야 하냐는 의견부터, 아픈 척 하지 말라, 거짓말 말라는 비난도 있다.

장애, 생각 뿐 만 아니라 제도와 법도 바뀌어야

그러나 장애라는 것은 게으르거나 부주의해서 갖게 된 것이 아니며, 누구든 늙고 약해지면 크고 작은 장애를 갖게 될 수도 있다.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는 장애인에게만 불편과 부당함을 주는 게 아니라 노인, 환자, 약자, 그리고 그들의 가족과 돌보는 이들까지 포함된다.

당장 생각을 바꾸라는 것은 어렵다. 제도와 법도 바뀌어야 한다. 그렇다 해서 노르웨이처럼 26세 이전에 장애를 갖게 된 사람에게 연간 2400만원 정도의 혜택과 활동 보조 서비스를 당장에 실현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더 많은 사람들이 그 사실만은 좀 알았으면 좋겠다. 장애인은 일도 안하고 더 갖겠다 시위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목숨을 걸고 생활한다고, 비장애인처럼 생활하려면 노력이 몇 배로 들지만, 노력해 안되는 것들도 많다고. 살아보자고 나온 사람들이라고.

오늘도 지담씨가 지나가는 것을 봤다. 지담씨는 그림을 좋아해서 화가로 데뷔했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힘든 훈련과 교육을 거쳤을 것이다. 발달 장애인이라고 해서 비장애인들이 배우고 생활하는 모든 게 쉬웠을리 없기 때문이다. 

그 옆에서 한결같이 자리를 지켰을 그의 어머니와 함께 뒤뚱거리며 걸어가는 지담씨의 뒷모습이 천천히 멀어지는 것을 가만히 바라봤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자 소개

이영미<klavenda@naver.com>

동화작가/문화예술사

세종대학교 대학원 미디어컨텐츠 박사

경희대학교 대학원 신문만화

전 명지전문대 글쓰기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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