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의 데이트...5월 가정의 달과 가족의 소중함
엄마와의 데이트...5월 가정의 달과 가족의 소중함
  • 이영미
  • 승인 2023.05.05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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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6년 전부터 엄마는 기억을 잃기 시작해...많이 잊었지만 40년 전 행복했던 일을 떠올리자 엄마가 웃는다

[이영미 칼럼] 오랜만에 엄마와 외출을 했다. 엄마는 아이처럼 기뻐했다.

차로 20분 정도 가서 만난 등산로 근처의 한식당은 뒤뜰이 공원처럼 돼 있고, 산책로도 있었다.

“엄마 여기 좋지?”

“그래. 너무 좋다. 그런데 여기 1인분에 얼마니?”

“만 팔천 원.”

“비싸다. 너 돈 있어?”

“있어. 있어.”

엄마는 반갑고 좋으면서도 밥 값이 걱정인가보다. 먹기도 전에 딸 돈 걱정부터 한다.

한 상 차림이 나왔다. 식단이 푸짐했다.

“그런데 이거 1인분에 얼마라고?”

“만 팔천 원.”

엄마는 다시 확인했다. 식사하면서도 엄마는 밥 값을 네 번 더 물어봤다. 엄마의 기억은 5분 단위로 흩어지고 있었다.

딸 다섯을 낳아 키우는 일이 보통은 아니었을 터. 거기다 막내인 내가 걸음마를 시작할 무렵, 아빠가 시작한 젖소 목장 일 때문에 엄마는 나를 업고도 소 키우는 일을 했다. 아이 다섯에다 소까지 돌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네 시간에 한 번 소 여물을 주고, 물도 갈아주고 매일매일 우사의 소 오물을 치웠다. 

소 똥 무덤은 진짜 무덤의 봉분보다 더 컸다. 냄새도 지독해서 옆 나무들이 다 죽을 정도였다. 목장은 사시사철 소똥 냄새가 났다. 그 속에서 엄마는 일 하고 또 돌아와 식구들 밥을 짓고 빨래도 했다. 그 세대 부모들이 그랬듯 엄마도 쉬지 않고 고된 일을 했다. 아침에 아이를 낳고 저녁에 밭에 나가 일을 해야 했다. 산에 가서 나무를 해와서 장작불을 지피고, 포도를 따 신문지에 싸서 팔았다. 등에 아이를 업고서.

부모님은 그렇게 살아왔다. 자식들을 먹여야 했기 때문에. 수시로 배고픈 애들을 위해 수시로 밥을 하고 간식을 사 대야 하는 지금의 나보다 훨씬 배고프고 고되었을 터였다.

한 6년 전부터 엄마는 기억을 잃기 시작했다. 렌지 위에 올려놓은 냄비를 태우고, 전화번호와 출입문 자동키 번호를 잊었다. 병원에서 나온 약도 누군가 챙겨줘야만 했다. 이미 약을 먹은 걸 잊고 또 삼키려고 하기때문에.

예쁘던 엄마 손은 쭈글쭈글해졌고, 허리는 굽고 발걸음은 느려졌다. 그래도 딸하고 오랜만에 나온 외출이 기분 좋은지 연신 웃었다. 식사를 마치고 식당 뒤에 펼쳐진 산자락 근처를 산책한다.

“거기 딛지 마! 넘어져!”

엄마는 중년의 나이가 된 막내딸을 걱정한다. 헬스클럽에 20년을 다닌 막내딸은 조심하는 척 하면서 몸을 마구 흔든다. 늙은 엄마가 웃는다.

나보다 큰 애들이 아직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도록 예쁜 만큼, 엄마 눈에도 중년의 내가 예쁘겠지. 웃으며 산책을 마친 모녀는 자리에 앉아 차를 마신다. 앉자마자 엄마는 너 돈 많이 썼다고, 이거 1인분에 얼마냐고 또 한 번 묻는다.

만 팔천 원이라고 대답하지 어우 비싸다면서 주머니에서 꼬깃한 돈을 꺼내주려고 한다. 엄마, 넣어둬. 나 돈 있어. 엄마가 흐릿한 눈으로 나를 본다. 결국 밥 값 계산은 엄마 돈을 보태서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엄마에게 옛날얘기를 꺼내 본다. 여기 이 길 생각나? 수유리야. 여기는? 옛날 광산수퍼. 여기는 옛날 큰이모네 집.

아! 그리고 엄마 여기 생각 나? 이쪽으로 다 같이 자전거타고 왔었잖아. 40년도 더 된 기억을 꺼내 본다. 엄마가 웃는다. 그래, 그때 그랬지. 자전거가 모자라서 이웃집에서 빌려서, 너는 아빠 뒤에 타고, 식구가 다 같이 자전거 타고 고기 먹으러 갔다 왔어.

많이 잊었지만 40년 전 행복했던 일을 떠올리자 엄마가 웃는다. 했던 말을 또 하고, 5분 만에 잊어버리고 하지만, 40년 된 기억은 그대로다. 가족이 행복했던 기억은 또렷한가 보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자 소개

이영미<klavenda@naver.com>

동화작가/문화예술사

세종대학교 대학원 미디어컨텐츠 박사

경희대학교 대학원 신문만화

전 명지전문대 글쓰기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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