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말과 독설 난무하는 정치판...갈등 녹이는 ‘유머의 정치’ 절실
막말과 독설 난무하는 정치판...갈등 녹이는 ‘유머의 정치’ 절실
  • 조석남
  • 승인 2023.05.14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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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격(人格)은 언격(言格)...요설을 일삼는 시대착오적 마키아벨리스트를 척결하지 않고는 국격을 세울 수 없어

[조석남의 에듀컬처] ‘사상이 언어를 부패시키고, 언어 또한 사상을 부패시킨다.’ 조지 오웰의 말이다. 그러니 정치언어의 타락은 시민의식의 타락일 수 있다. 일 년에 서너 번 나와도 놀랄만할 막말이 사흘이 멀다 하고 나온다. 작금 한국 정치의 상황이다.

아무 소리나 쏟아내는 이들도 평상시엔 의식 수준이 정상적이다. 하지만 콘크리트 지지층에 취해 무슨 말을 하는 줄도 모르고 하는 사람들. 이제는 여야를 막론하고 퍼진 ‘악의 평범성’을 주목해 볼 단계다. 총선이 가까울수록 증상은 심해질 것이다. ‘묻지마 지지’가 있는 한 처방약이 없다. 답답하다.

로널드 레이건은 73세 때 대통령 재선에 도전했다. 대선 경쟁자 월터 먼데일이 TV토론에서 “나이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며 고령을 걸고 넘어졌다. 레이건은 “나는 선거에서 나이를 문제 삼지 않겠다. 당신이 너무 젊고 경험이 없다는 사실을 정치적으로 이용할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고 되받았다. 먼데일조차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유머를 갖춘 정치인을 찾아보기 힘들다. 아무리 죽기살기식 정쟁을 펼친다해도 정치인들의 언사에 유머가 녹아 있으면 국민들이 덜 짜증날 텐데 말이다. 정치는 상대와 겨루는 갈등조정 행위다. 갈등은 경쟁을 내포하고 있다. 갈등과 경쟁 탓에 정치는 종종 극단으로 치달린다. 이런 정치에게 유머는 윤활유다. 갈등희석, 당당한 경쟁 등을 부추기는 활력소다.

우리에겐 ‘진정으로 우리를 유쾌하게 만드는 멋진 지도자’가 필요

유머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정치인이 영국의 윈스턴 처칠 수상이다. 기업 국유화 논란이 한창일 때 처칠이 쉬는 시간을 이용해 의회 화장실에 들렀다. 처칠은 마침 “큰 기업들을 국유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노동당 당수의 옆자리가 비었는데도 그 자리에서 볼일을 보지 않았다. “옆자리가 비었는데 왜 오지 않는 거요. 내가 싫소?” “겁이 나서요.” “뭐가 겁나요?” “의원님은 무엇이든 큰 것만 보면 모두 국유화시키려고 하시니까 제걸 보시고 국유화시켜버릴까바요.”

정치인 중 자신의 유머 감각을 과대평가하는 사람이 많다. 자신이 말하면 다른 사람들이 웃으니까 착각하는 경우인데, 지위가 높은 사람의 언행에 더 과도하게 반응해주는 것은 일종의 생존전략일 뿐이다.

우리에겐 ‘진정으로 우리를 유쾌하게 만드는 멋진 지도자’가 필요하다. 이런 면에서 야권 지도자들의 변화도 필수적인 ‘시대의 요구’이다. 이제 ‘투쟁의 이미지’ 만으론 국민들의 공감을 얻을 수 없다. 상대를 포용할 수 있는 아량과 유머 감각, 두둑한 배짱, 그리고 짜증을 주지 않는 온화한 인상이 중요하다.

더 이상 ‘농담’과 ‘디스’(존경을 의미하는 ‘respect’의 반대말인 ‘disrespect’의 줄임말. 다른 사람을 폄하·공격하는 행위)를 혼동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농담’은 웃음을 주지만, ‘디스’는 상처를 준다. 상대 정적을 비판할 때는 품격 있는 언어와 어휘를 선택하고, 직유법보다 은유법으로 하고, 직설법보다 비유나 유추로 공략해야 한다. 유머와 해학이 있는 정치 지도자의 말은 여유와 배려의 정치로 이어진다.

한국 정치에서 풍자와 해학까지 바라지는 않는다. 하지만 일부 정치 지도자는 폭언에 가까운 말을 매일 쏟아내며 ‘정치 혐오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폭언의 정치에서는 논리와 대화가 설 자리가 없고 상대를 낙인 찍는 기법과 같은 감성적이고 자극적인 언어의 껍데기만 남는다. 폭언의 정치에서는 상대에 대한 배려가 용납되지 않으며 여유의 정치가 발붙일 수 없다.

정치판에 난무하는 독설과 허언은 국민 얕잡아보고 무시하는 처사

자신과 소속 정당은 무조건 ‘선(善)’이고, 상대는 ‘악(惡)’이다. 이런 폭언의 정치는 폭력과 힘의 정치로 이어질 개연성이 유머의 정치와 여유의 정치보다 높다. 폭언의 정치를 끊어야만 폭력과 힘의 정치가 사라진다. 폭언의 정치가 없어져야만 상대를 인정하고 대화와 타협의 기초를 놓을 수 있다.

작금의 이 나라 정치판에 난무하는 독설과 허언은 국민을 얕잡아보고 무시하는 처사이다. 책임 전가의 유체이탈 화법과 블랙코미디 같은 허위 언설이 사회 갈등과 정치 혐오를 부추기고 있다. 공인과 정치인들이 분별없는 이기적 망발로 천박한 사회를 조장하는 악령이 되어가고 있다.

1850년대 미국 일리노이주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한 공화당의 에이브러햄 링컨에게 정적이었던 민주당의 스티븐 더글러스는 터무니없는 말로 링컨을 몰아붙였다. 합동연설회에서 링컨을 이중인격자라고 공격한 것이었다. 그러자 링컨은 “내가 정말 두 얼굴을 가졌다면 이렇게 중요한 자리에 왜 하필 못 생긴 얼굴을 가지고 나왔겠습니까?”라는 응대로 환호성을 받으며 오히려 유세의 주도권을 잡게 됐다.

어쩌다 한 번이라도 좋다. 우리에게 이런 재치와 여유 있는 정치적 유머는 요원한 것인가. 품위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상식은 짓밟지 말아야 한다. 정치개혁가 새뮤얼 스마일스는 “생각을 조심하라, 말이 된다. 말을 조심하라, 행동이 된다”고 했다. 인격(人格)은 언격(言格)인 것이다. 요설을 일삼는 시대착오적 마키아벨리스트를 척결하지 않고는 국격을 세울 수 없다. 깨어있는 국민이 회초리를 들어야 한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자 소개>

조석남 (mansc@naver.com)

- 한국골프대 부총장

- 전 한국폴리텍대학 익산캠퍼스 학장

- 전 서울미디어그룹 상무이사·편집국장

- 전 스포츠조선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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