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소멸대응, ‘탈(脫) 수도권’으로
지방소멸대응, ‘탈(脫) 수도권’으로
  • 정기석
  • 승인 2023.05.21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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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석 칼럼] 매년 1조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지방소멸 대응기금의 실효성에 의문과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방소멸대응기금은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지방소멸 위기를 극복하고 방지하기 위해 지방자치단체 기금관리기본법 및 시행령을 개정, 지난해 처음으로 도입되었다. 올해부터 2031년까지는 매년 1조 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그런데 출발이 좋지 않다. 지난해 지자체 100여 곳에 배분된 지방소멸대응기금은 주로 생활인프라에 편중되거나 지역관광사업으로 전용되는 사업이 많았다. 애초 기금의 취지와 목적에 걸맞지 않게, 기존의 유사·유관 지역개발사업의 아류사업 수준에 그친 경우가 적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당초 지방소멸대응기금 추진 사업은 사업의 목표, 분야, 구체적 시행방식 등이 중앙부처 차원에서 결정된 하향식 지원 방식이 아니라, 지역이 스스로 수립하는 전략과 투자계획을 통해 주도적으로 추진하는 상향식 지원 정책을 표방하고 있다.

89개의 인구 감소지역과 18개 관심지역에서 제출한 투지계획 평가를 거쳐, 평가 결과에 따른 지방자치단체별 지방소멸대응 기금 배분 금액이 결정되는 사업이다. 해마다 1조원씩 10년간 지원되는 기금의 사용처는 주로 일자리 창출, 청년인구 유입, 생활인구 확대 등 다양한 인구활력 증진사업에 사용된다.

그러나, 심지어 공적 기금이 지자체장의 공약 이행을 위한 '쌈짓돈‘으로 전용되고 지역개발사업 판에 끼어든 토건, 컨설팅 용역업자들의 ‘눈먼 돈’으로 전락한다는 의심과 비판마저 심심치않게 제기될 정도다.

행정 지연, 관광 치중, 기금집행률 30% 이하

최근 전북도가 지방소멸 대응기금 활용실적과 개선점을 진단·분석해본 결과, 도내 시·군이 추진해온 사업안 59건 가운데 83%에 해당하는 49건이 기금 집행률이 30%에도 못미치는 것으로 파악됐다.

진안군, 무주군, 장수군의 농어촌 상수도 물복지 확대사업, 남원시와 장수군의 생태힐링에코캠핑 삼천리길 조성사업, 정읍시와 김제시 등 10개 시·군이 펼쳐온 지역품은 대학 중고교 연계 인재 육성사업 등이 주요 사업들이다. 집행률 부진의 주 요인은 행정절차가 지연 되었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당연히 지연된 사업의 기금은 불용예산으로 처리되어 익년으로 이월되었다.

전북도의 각 지자체가 행안부에 제출한 지방소멸 대응 기금 사용 계획서를 살펴봐도, 기금이 적재적소에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실상은 그대로 드러난다. 남원시의 지리산권 관광 휴양 벨트 조성, 지리산권 ‘워케이션’ 빌리지 조성, 미꾸리 공유 양식 플랫폼 구축 등은 기금의 기본 취지와 거리가 있는 관광사업에 치중된 것이다.

무엇보다 남원시가 1순위 투자로 계획했던 ‘지리산권 공공 산후조리원 건립’ 예산은 한 푼도 배정되지 않았다. 김제시도 캠핑장 조성, 김제형 노량진 공시사관학교 운영 사업에 관련 기금이 쓰였고 진안군, 임실군, 부안군 역시 관광 사업과 시장 리모델링 사업에 예산을 편성한 것으로 확인됐다.

타 지역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해 제출된 전국의 500개가 넘는 사업계획서 가운데 130여 건이 문화·관광 분야에 집중됐다. 또 대부분 기금 본연의 취지와 목적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정주 여건 개선에만 편중되는 사업들이 주류를 이룬다. 지역의 고유한 특성과 사업여건에 따른 차별성도 보이지 않고 사업의 기대효과도 뚜렷하지 않다.

경북도의 경우, 군위에는 청소년을 위한 전용 문화·정보 공간 조성에 57억 원, 고령에도 청년 전용과 아이 돌봄 공간 조성에 58억 원, 성주에는 어르신을 위한 종합 복지타운 조성에 82억 원, 청도에도 어르신의 문화 예술 향유를 위한 공간 조성에 78억 원, 영천에는 은퇴자들의 생활 거주 시설 조성에 42억 원, 방문객을 위한 숙박 시설 조성에 56억 원을 집행한다.

‘지역예산’보다는 ‘지역주민’을 먼저 지역으로

이같은 상태라면, 신속하고 완성도 높은 사업효과를 기대하기는 커녕, 추후 정부평가에서 낮은 평점을 받음으로써 야기되는 불이익마저 걱정해야할 처지이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애초 사업계획 단계부터 완성도, 실효성이 떨어지는 B등급, C 등급의 사업안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처음부터 원만한 추진과정이나 완성도 높은 성과물을 기대하기는 무리였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방법은 기금 집행률 제고와 실효성 높은 사업안 발굴 등으로 정리할 수 있다. 지방이 소멸위기를 근본적으로 해소하려면 정부의 지원 및 평가기준에 맞춘 단기적인 사업안보다는 중장기적이고 종합적인 관점에서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접근해야 사업의 완성도와 실효성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역에는 그런 사업계획을 논의하고 수립할 지역사회 전문가를 찾기 어렵다는 게 한계다. 대개 지역의 현실과 특성을 잘 모르는 외부의 전문 용역업자들이 중앙의 사업지침과 평가기준에 맞춘 지방소멸 방지기금 사용계획을 천편일률적으로, 기계적으로 수립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래서 집행도 잘 안되고, 실효성도 기대하기 어려운 ‘불요불급하고 저급한 사업계획’들이 지자체마다 난립하는 구조악의 고리가 끊어지지 않는 것이다.

무엇보다 기금의 사업계획을 잘 세우기 위해서는, 인구정책이나 인구동향 전문 연구기관 등의 인구정책 전문가가 지역의 인구 동향을 중장기적으로 파악, 분석해서 지역의 정책 기초 자료를 생산하고, 그 기초자료를 근거로 삼아 지방소멸대응기금 사업계획을 수립하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아울러 지방, 또는 지역의 주인이자 지방소멸대응사업의 책임주체 역할을 맡아야 할 지역주민이 사업계획 수립 단계부터 주도적으로 참여해 말그대로 내발적이고 상향식의 마스터플랜을 구상하는 게 상책이다.

그래야, 해묵은 지역민원 사업이나 지자체장의 공약사업이 기금사업으로 둔갑하거나 기왕의 일반적인 지역개발사업처럼 토건사업으로 전락하는 예정된 실수와 실패에서 벗어날 수 있다. 물론, 지방소멸대응정책 이전에 지방소멸 근본 원인인 지역불균형, 지역양극화 해소를 위한 '탈(脫) 수도권 정책'이 국력이 집중되어야 함은 상식이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자소개>

정기석(tourmali@hanmail.net)

전국퇴직금융인협회 금융시장연구원 연구위원

경상국립대 창업대학원 6차산업학과 비전임교원

前 국회정책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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