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코노미뉴스 한지훈 기자] 한국 특유의 소수 지배주주가 기업 경영을 좌지우지하는 '오너일가' 지배구조를 개혁하지 않는 한, 일본식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은 효과를 내지 못할 거라는 외국 헤지펀드의 지적이 제기됐다.
23일 기업거버넌스포럼에 따르면 영국계 헤지펀드 헤르메스의 조너선 파인즈 일본제외 아시아 수석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지난 13일(현지시간) 홈페이지에 '설득이 불가능한(한국 기업들)?'(The unpersuadables?)이라는 글에서 이 같이 주장했다.
파인즈는 지난해 말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을 한국 기업 거버넌스(지배구조)에서 찾고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한 '그만하면 됐다'(Enough is enough)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내 한국 자본시장에서도 주목받은 인물이다.
그는 이번 글에선 "(한국과 달리) 일본은 주가를 의도적으로 낮게 유지함으로써 이익을 얻는 특정집단이 없다"며 밸류업 프로그램 같은 연성규범이 성공을 거둘 수 있는 이유는
특정 지배주주와 이들을 대변하는 이익집단이 없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파인즈는 "일본 주가가 낮았던 이유는 주로 기업 거버넌스 문제가 아니라 재무구조 문제에서 비롯됐다. 지나치게 보수적인 경영 또는 관심부족으로 자본구조가 최적화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결코 지배주주가 과도한 이익을 독점하거나 주가를 낮게 유지하려는 잘못된 의도로 인한 시장 우려 때문이 아니었다"고 짚었다.
이어 "그러나 한국에서는 가족이 지배하는 상장기업이 훨씬 더 많고 지배권을 가진 이들은 현재의 규제환경에서 대단히 많은 경제적 이익을 향유하고 있다"며 "단순히 한국의 지배 패밀리들에게 소액주주를 '착하게' 대하라는 논리는 설득력이 없다"고 꼬집었다.
파인즈는 "한국은 지배주주가 합법적으로 소액주주를 희생시키며 이익을 얻는 것이 가능한데 어떻게 이들 패밀리를 설득할 수 있나. 지금까지 한국 정부의 정책대응은 실망스러웠다"면서 "최근 몇년 동안 시행된 정부 정책은 마치 지배주주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것이 목표인 것처럼 보인다"고 지적했다.
최근 정부가 추진한 외국인 투자자 등록요건 완화, 배당기준일 변경, 온라인 주총도입 등에 대해서도 "이런 것들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근본원인을 다루지 못했으며, 처음부터 효과가 없을 것은 너무나 명백했다"고 비판했다.
파인즈는 "아직도 (한국의) 금융당국은 지배주주가 소액주주를 악용하는 권한을 줄이지 않고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방법이 없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며 "확실하고 효과적인 거버넌스 개혁은 간단하고 논쟁의 여지가 없다. 한국 자본시장 법과 제도를 선진국 수준의 글로벌스탠더드에 맞추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조건으로 ▲희석효과가 있는 주식발행·교환시 별도의 소액주주 승인 의무화 ▲기업 인수시 의무공개매수제도 도입 ▲특수관계자 거래에 있어 소액주주 별도승인 요구 등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