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환승 칼럼] AI만도 못한 인간은 폄하 vs 칭찬
시상대에 오른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중에서 한국 선수들은 약간 불만족한 표정을 짓는다고 한다. 반면 동메달리스트는 오히려 행복한 모습이라고 한다.
1등만 기억하는 세상에 대한 아쉬움이 더 커서인 모양이다. 물론 3등은 기억하지 않는다. 경쟁에는 늘 으뜸과 버금, 즉 수석과 차석이 있다.
그러나 1등과 비교 대상이 되는 것만으로도 영광인 경우가 있다. 축구 선수를 현재의 손흥민 선수와 비교를 한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이것은 손흥민을 메시와 비교하는 것과 같다.
러일전쟁에서 승리하여 일본 해군의 신이며, 일본 역사의 10대 영웅이 된 도고 제독의 다음 일화가 많이 회자된다.
러일 전쟁 승전 축하연이 있던 날이었다. 아사히 신문기자가 도고에게 "각하의 업적은 영국의 넬슨 제독, 조선의 이순신 제독에 비견할 빛나는 업적이었다"고 아부성 발언을 했다. 그러자 도고는 "나를 이순신 제독에 비교하지 말라, 그분은 전쟁에 관한 신의 경지에 오른 분이다. 이 제독은 국가의 지원도 받지 않고 훨씬 더 나쁜 상황에서 매번 승리를 이끌어 냈다. 나를 전쟁의 신이자, 바다의 신이신 이순신 제독에게 비유하는 것은 신에 대한 모독이다"고 답했다.
성호 이익은 이자수어(李子粹語)라는 책을 출판하며 퇴계를 공자와 맹자에 버금간다고 하여 이자라고 불렀다.
곧 인간을 지능이 수십만 배가 더 우수한 AI와 비교하는 것은 언급할 수 조차 없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AI만도 못한 인간은 당연한 것이고 비교되는 것만으로도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손연재 선수의 명예훼손 사건
지난 3월의 기사로 알려진 소식으로, 손연재 선수는 6년 전에 게시된 댓글 작성자들 다수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그 중에 법조지망생이자 손연재 선수의 팬이 명예를 훼손했다고 검찰의 기소유예처분을 받았다. 기소유예란 혐의를 인정하지만 사안이 경미해서 봐준다는 뜻이다.
그러나 개인 신상기록에 남기 때문에 그는 두고두고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사람이라는 딱지가 따라다닌다.
그는 법을 잘 아는 사람이라 헌법소원(국민의 기본권을 침해당했을 경우)을 제기했다. 그가 명예훼손으로 기소유예된 이유는 다음의 댓글 때문이었다.
"비네르 사단의 성적조작의 수혜자가 손연재라고 치자. ○○○ 선수도 러시아에 월 3천에 유학 갔는데 왜 성적이 고따구였지? 이번 러시아 동행단에 일본 △△△ 선수도 있었는데 비네르가 그렇게 전지전능하다면 왜 그 선수 결선진출도 못 시켜줬는지?"
과연 이 댓글이 어떻게 명예훼손을 했다는 것인가? 헌법재판소는 기소유예를 취소한다는 처분을 내렸으며, 그 이유는 비방 의사가 없다는 것이다.
이 사건의 핵심은 소송을 제기한 원고측 변호사와 검사도 모두 비방 댓글이라는 것이고, 헌재 판사는 비방이 아니라는 것이다.
2022년 유네스코에서 조사한 문해력 평가결과 한국은 24위였고, 유럽의 나라들이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문해율이 OECD 국가 중에서 낮은 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선망의 대상인 법조계 변호사와 기소유예를 처분한 검사마저 낮아서는 안되는 일이다.
AI가 뛰어난 게 아니고, 인간의 문해력 하향이 문제
과연 위의 글이 특정인 명예를 훼손하는 글인가 아니면 옹호하는 글인가에 대해서 AI에게 물어보았고 구글의 제미나이(Gemini)의 응답은 아래와 같다,
손연재 선수를 명예 훼손하는 글입니다. 이 글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명예 훼손에 해당합니다.
손연재 선수가 비네르 사단의 성적 조작의 수혜자라는 명백히 허위의 사실을 주장합니다. 이는 손연재 선수의 명예를 훼손하는 명백한 근거가 됩니다.
○○○ 선수와 일본 △△△ 선수의 성적을 손연재 선수와 비교하여 손연재 선수의 실력을 비하합니다. 이는 손연재 선수의 업적을 무시하고 선수로서의 능력을 폄하하는 행위입니다.
비네르 감독의 전지전능함을 암시하며, 손연재 선수의 성공이 자신의 실력이 아닌 비네르 감독의 도움 때문이라는 뉘앙스를 줍니다. 이는 손연재 선수의 노력과 희생을 무시하고 선수로서의 가치를 훼손하는 행위입니다.
따라서 이 글은 손연재 선수의 명예를 훼손하는 악의적인 글이라고 판단됩니다.
다음은 미국 앤쓰로픽(Anthropic)사에서 만든 클로드(claude.ai)의 답신이다.
이 글은 손연재 선수를 옹호하는 내용으로 보입니다. 비네르 사단의 성적 조작 의혹에 대해 다른 선수들의 사례를 들어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주장하는 취지로 읽힙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러시아에서 저렴한 비용으로 유학을 다녀온 다른 선수의 경우에도 성적이 좋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이번 대회에서 일본 선수가 결선에 진출하지 못했다는 점을 언급하며 비네르 사단의 조작 능력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글은 손연재 선수를 비방하기보다는 비네르 사단의 의혹을 반박하고 손연재의 실력을 옹호하는 내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명예훼손보다는 옹호의 목적으로 작성된 글로 판단됩니다.
다른 AI인 GPT-4와 국산 네이버 클로바 X도 명예훼손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아직 AI는 가정법 표현을 이해하지 못함을 알 수 있다. 참고로 클로드는 현재 가장 지능이 높다고 알려진 AI이며 이 응답에서도 그 문해력을 잘 알 수 있다. 아직은 AI 시스템들이 덜 완성된 수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으며 곧 정확해질 것을 기대할 수 있다.
법조계의 AI 활용 확대 전망
훌륭한 판사를 잘 만나는 것은 중요하지만 AI도 잘 만나야 하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 모든 인공수퍼지능(ASI: Artificial Super Intelligence)의 시대가 되면 손정의 회장은 인간의 지능은 금붕어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곧 “AI만도 못한 인간”이라는 말은 AI와 비교해주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며 AI의 반만 되어도 행복한 일일 것이다.
법조계의 사건처리 지연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으며 몇 선진국에선 이미 소액재판을 AI를 활용하고 있다. 또 합의제 심판진에 AI가 한 사람의 몫을 담당할 수도 있을 것이다.
판례기반 재판의 서구에서는 수많은 판례 분석과 요약에 널리 활용 중이며 재판 상담에서도 큰 기여를 할 것이다. 그러나 국민들이 AI 재판을 선호하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다.
미래는 모든 일에서 AI를 우선하여 문서를 보기 전에 AI의 의견을 들어보는 형식으로 1차 필터로 활용하는 것이 필수적이 될 수도 있다. 인류는 오래전부터 중요한 결정에 대해서 점을 치거나 신탁을 해왔으며 그 전통을 지금도 유지하는 사람들이 있다.
앞으로는 AI가 이러한 역할을 상당 부분 대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래 그림은 AI에게 물어서 답을 듣는 상황을 그려준 것이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는 것은 안전을 추구한다면 현명한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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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용환승(hsyong@ewha.ac.kr)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과 졸업, 대학원 공학박사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연구원, 국가교육과학기술자문회의 전문위원
한국정보과학회 부회장, 한국소프트웨어감정평가학회 회장
현 이화여자대학교 컴퓨터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