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코노미뉴스 한지훈 기자] 최태원 SK그룹 회장(63)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63)의 이혼소송 과정에서 새로 드러난 고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에 대해 증여세가 부과될까.
과세당국은 이 자금 904억원을 '불법 통치자금'으로 보고, 시효와 관련법령 검토에 나섰다.
추징절차가 본격화되면 6공화국의 비자금 실체가 추가로 드러날 수 있어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노태우 비자금 과세?…국세청장 후보자 "시효·법령 검토해야"
17일 관계당국에 따르면 강민수 국세청장 후보자는 전날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에 대한 과세 가능성을 처음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강 후보자는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소송 과정에서 드러난 904억원의 과세 여부를 묻는 말에 "시효나 관련법령 검토를 해봐야 할 것 같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12·12 군사쿠데타의 성공에 기반해 조성된 불법 통치자금에 대해서는 "시효가 남아있고 확인만 된다면 당연히 과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효·법령 등에 문제가 없고 904억의 자금이 6공화국의 불법 통치자금이 맞는다면 과세할 수 있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다시 주목받게 된 것은 최근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소송 과정에서다.
노 관장측은 노 전 대통령의 배우자인 김옥숙 여사의 메모를 근거로 1990년대 초 선경(SK) 측에 300억원이 전달됐다고 주장했다.
이에 재판부는 이 돈을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으로 추정하면서, 1조3800억원에 달하는 재산분할의 결정적인 근거로 삼았다.
당시 김옥숙 여사의 메모에는 '선경' 꼬리표가 달린 300억원 외에 가족 등에게 각각 배정된 604억원이 더 기재된 것으로 전해졌다.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으로 추정되는 904억원이, 메모지 한장을 통해 30여년 만에 수면 위로 드러난 셈이다.
더불어민주당 김영환 의원은 인사청문회에서 "904억원은 음지에서 양지로 처음 나온 돈이고, 불법 자금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라며 "국세청에서 단호하게 조치해야 한다"고 밝혔다.
◇증여세 '제척부과기간' 적용?...내년 5월30일까지 징세 가능
과세당국이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으로 추정되는 904억원에 대해 시효·법령 등 검토를 밝히면서, 6공화국의 불법 통치자금과 관련된 추가 과세가 이뤄질 수 있다는 관측이다.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은 모두 40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지금까지 확인돼 추징된 액수는 2682억원 수준이다.
비자금으로 확인돼도 국고 환수는 공소시효가 지나 어렵지만, 증여세 과세는 다르게 처리할 여지가 있다.
메모에 기재된 자금이 불법 비자금으로 확인될 경우, 증여세 등 징수권을 행사할 수 있는 '부과 제척기간'이 남았다고 해석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국세기본법에 따라 납세자가 부정행위로 상속·증여세를 포탈한 경우, 해당재산의 상속·증여가 있음을 안 날부터 1년 이내에 과세할 수 있다.
과세당국이 노 관장측이 주장한 '자금 메모'를 인지한 시점, 즉 2심 판결일(지난 5월30일)을 '상속·증여가 있음을 안 날'로 보면 징수권 행사가 내년 5월말가지 가능하다.
실제 고 전두환 전 대통령의 아들 재용씨에게 흘러 들어간 비자금에 뒤늦게 증여세가 부과된 사례가 있어 설득력을 더해주고 있다.
재용씨는 2004년 외조부에게 액면가 167억원상당의 국민주택채권을 받고도 이를 은닉해 증여세를 포탈한 혐의로 구속기소됐고, 서대문세무서는 그에게 증여세 41억여원을 부과했다.
이에 재용씨는 증여세 부과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채권 매입자금 중 액면가 73억5000여만원의 실제 증여자는 전 전 대통령으로 봐야 하고, 나머지 93억5000여만원은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일 개연성이 높다며 과세요건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과세당국이 비자금으로 추정되는 904억원에 대한 과세절차에 착수할 경우, 그간 베일에 가려졌던 새로운 비자금의 실체가 드러날 수도 있다.
구체적인 비자금 규모가 확인되면,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소송 상고심 결과에도 영향을 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