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G도 악성 임대인 보증 가입 적극 차단 안 해”
[서울이코노미뉴스 강기용 기자] 감사원은 13일 전세 사기 피해를 막기 위해 전세 보증 한도를 낮춰달라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요청을 국토교통부가 16차례 묵살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국토부가 전세 보증 한도를 제때 낮췄다면 관련 피해가 3조9000억원가량 줄었을 것으로 감사원은 추정했다.
감사원이 이날 공개한 ‘서민 주거 안정 시책 추진 실태’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집 주인이 세입자에게 전세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아 HUG가 보증금을 대신 지급한 ‘전세 보증 사고’가 2017년 74억원에서 2019년 3442억원으로 급증했다.
이에 HUG는 2020년 9월부터 2022년 2월까지 16차례에 걸쳐, HUG가 전세 주택에 대해 제공하는 보증의 한도를 낮춰 달라고 국토부에 요청했다.
당시 일부 주택은 실거래가보다 HUG가 제공하는 보증 한도가 더 높게 설정되고 있었다. 이러면 주택을 이른바 ‘갭 투자’ 방식으로 산 집주인들은 전세 보증금을 돌려줄 능력이 안 되더라도 ‘HUG가 전세 보증금 전액을 보증하니 안심하라’며 세입자를 끌어들일 수 있었다.
HUG는 2021년 10월 국토부에 “앞으로 주택 가격이 하락하면, 전세 보증 사고로 HUG가 대신 물어줘야 하는 전세 보증금이 HUG의 현금 보유액 6조6000억원을 넘어설 수 있다”고 보고했다.
HUG는 주택 가격이 점진적으로 올라가더라도 2023년까지 HUG가 대신 물어줘야 하는 보증금이 1조6000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국토부는 “전세 보증 사고율이 낮아지고 있다”며 HUG 요청을 계속 무시했다.
감사원 조사 결과 당시 전체 보증 사고율은 낮아지고 있었지만, 담보 인정 비율이 90%가 넘는 주택의 보증 사고율은 높아지고 있었다.
국토부는 전세 사기 피해가 극심해지자 2022년 6월 뒤늦게 대책을 준비해 2023년 1월부터 담보 인정 비율은 100%에서 90%로, 공시가격 적용 비율은 150%에서 140%로 10%포인트씩 낮췄다.
감사원은 HUG가 처음 위험 상황을 보고한 2021년 10월에 국토부가 담보 인정 비율을 곧바로 낮췄다면 약 3조9000억원의 보증 사고가 예방됐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HUG가 전세 사기 혐의로 수사 기관에 넘긴 임대인 236명의 담보 인정 비율이 95.7%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들 236명이 일으킨 보증 사고로 HUG가 대신 물어줘야 하는 금액만 2조2000억원이었다.
감사원은 HUG도 악성 임대인의 보증 가입을 적극적으로 차단하지 않아 보증 사고 피해를 키웠다고 지적했다.
HUG는 보증 사고를 낸 임대인에 대해 전세 보증 신규 가입을 금지한다는 규정을 갖고는 있지만, 이 규정은 실효성이 없었다. 전세 계약이 2년 단위로 이뤄지다 보니, 악성 임대인이 세입자와 전세 계약을 체결하고 실제로 보증 사고가 나기까지 2년 이상이 걸렸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HUG는 악성 임대인을 미리 걸러내기 위한 추가 심사 절차를 도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악성 임대인 단 10명이 평균적으로 각각 주택 455건에 대해 899억원어치 전세 보증에 가입했고, 대부분의 보증금을 세입자에게 돌려주지 않아 HUG가 각각 712억원을 세입자에게 대신 물어주었다는 게 감사원의 설명이다.
감사원은 국토부에 리스크 관리를 소홀히 했다며 주의를 주고, HUG에는 악성 임대인에 대한 보증 가입 거부 방안을 마련하라고 통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