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석남의 에듀컬처] 절기는 어김이 없는 듯하다. 처서(處暑)가 지나고 백로(白露)가 다가오니 유난히 무더웠던 여름의 기세도 한풀 꺾이고, 어느덧 가을의 냄새를 느낀다. 아침, 저녁으로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과 함께 가을이 가슴 속으로 들어오고 있다.
‘가을’하면 곧바로 떠오르는 단어가 ‘천고마비(天高馬肥)’, ‘등화가친(燈火可親)’이다. 이와 함께 ‘독서의 계절’이라는 말이 등식처럼 따라온다.
가을이 ‘독서의 계절’인 이유는 뭘까? 우선 농경문화의 관습에서 유래됐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예로부터 가을에 독서를 장려하기 위해 쓰인 사자성어 ‘등화가친’은 ‘등불을 가까이 할 수 있어 학문을 탐구하기에 좋은 계절’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여름에는 등불을 가까이 하면 책을 읽기에 덥지만, 선선한 가을은 등불을 가까이 해도 책 읽기에 좋다는 뜻이다.
신경 호르몬의 변화도 이유로 거론된다. 계절 특성상 열매나 낙엽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외로움을 느낄 수 있다.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은 우리 몸에 행복한 감정을 전달하지만, 가을에는 세로토닌의 분비율이 떨어져 사람은 차분해지고 고독감을 느끼게 된다. 이때, 차분한 마음으로 독서를 하는 것이 외로운 마음을 위로하는데 좋은 방법이 된다는 것이다.
나와 함께할 누군가가 필요한 계절이다. 외로움을 달래줄 가족과 친구, 연인을 찾는다. 짧은 만남 뒤 또다시 허탈함과 공허함이 밀려온다. 여기 나의 곁에서 오래 함께할 ‘그 누구’는 없을까? 피로와 분노, 낙담과 실패의 순간에 누가 나를 품고 위로하고 격려해 줄 수 있을까?
프란치스코 교황은 “기도만으로 내면의 평화를 찾지 못할 때 ‘좋은 책’이 난관을 극복하고 마음의 평화를 찾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독서가 인격 성장을 방해하는 강박적이고 편협한 생각에 함몰되지 않도록 새로운 내면 공간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는 정보와 의사소통의 교류가 끊임 없이 이루어지는 지식정보화시대, 디지털혁명시대를 경험하고 있다. 스마트폰, 태블릿, 노트북과 같은 전자기기가 일상에 자리 잡았고 뉴스, 책, 글들은 디지털 형태로 전환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혁신적인 변화 속에서도 ‘독서’는 매우 중요한 의제이다.
근래 우리나라의 젊은 세대에서 '문해력' 문제가 더욱 부각되고 있다. 특히 'Z세대'에 속하는 1,008명 중 단 53명(5%)만이 '사흘', '심심한 사과', '금일', '글피'와 같은 단어의 뜻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또한, 지난해 서울대학교 신입생 글쓰기 시험 응시생 831명 중 255명(32%)이 점수가 미달돼 전년도보다 6% 증가한 수치를 나타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결과를 '독서 부족'으로 판단한다. 주요 원인은 디지털 시대와 스마트폰의 일상화로 학생들의 독서 기반 학습 기회가 줄어들었고, 단편적인 영상 콘텐츠에 과도하게 집중하면서 전반적인 문맥 이해와 어휘력 부족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이렇듯 디지털 기술과 독서 사이의 균형을 찾는 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과제이다. 디지털 교육은 학생들의 학습 동기를 높이고 다양한 학습 자료와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해주는 반면, 독서는 깊이 있는 사고, 집중력, 비판적 사고 능력을 강화시켜준다.
문해력 분야의 권위자인 매리언 울프 박사는 '깊이 있는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독서가 단순히 정보 습득이나 언어 능력 향상을 넘어 인간의 정신적, 사회적, 창의적 발전에 큰 역할을 한다”고 언급한다.
인류 문화의 근원을 돌아봤을 때, 독서는 여전히 인간의 정신적, 지적 성장에 필수적이며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독서를 통해 우리는 지식을 습득하고, 상상력을 키우며, 집중력과 의사소통 능력을 향상시킨다. 이러한 과정은 개인과 사회의 발전을 위해 타인과의 관계를 더 깊게 이해하고 그것을 통한 성장을 도모한다.
고단함에 지친 심신에 가을이 주는 쓸쓸함이 조용히 다가온다. 이 때 마음을 추스를 수 있는 책 한 권을 고른다. 조용한 공간에서 천천히 읽는다. 등장인물의 말과 행동을 관상한다. 그리고 나를 돌아보고 타인과 세상을 비춰보자. 메마르고 고단한 내 마음을 지켜줄 새로운 ‘오아시스’가 생기지 않을까?
올 가을엔 책 속으로 한 발 더 다가서 보자. 책 축제로, 책방으로 향하는 발길들이 거리에 넘쳐나길 소원한다. 그래서 그곳에서 넘쳐나는 ‘마음의 풍요’, ‘지적 풍요’를 만끽하는 가을이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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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조석남 (mansc@naver.com)
- 한국골프과학기술대 부총장
- 전 한국폴리텍대학 익산캠퍼스 학장
- 전 서울미디어그룹 상무이사·편집국장
- 전 스포츠조선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