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코노미뉴스 박미연 기자] 제5공화국 핵심 정치인으로 활동하면서도 진보(혁신)와 교류에 애쓴 남재희(南載熙) 전 노동부 장관이 15일 오전 8시10분께 서울 한 병원에서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16일 전했다. 향년 90세.
충북 청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청주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서울대 재학 당시 이승만(1875∼1965) 대통령의 양아들 이강석(1937∼1960)군이 서울대 법학과에 부정 편입학하자 반대 시위를 주도했다.
1958년 한국일보 기자로 언론계에 투신, 민국일보를 거쳐 1962∼1972년 조선일보 기자와 정치부장, 편집부국장, 1972년 서울신문 편집국장, 1977년 서울신문 주필을 지냈다. 관훈클럽 총무를 맡기도 했다.
1979년 민주공화당 후보로 서울 강서구에서 제10대 국회의원이 된 것을 시작으로 13대까지 강서구에서 4선을 역임했다. 1980년 민주정의당 창당에 참여, 민정당 정책위의장을 두 번 역임하는 등 전두환 정권의 핵심 정치인으로 활약했다. 당시 두 딸이 운동권 학생이라는 점이 화제를 불렀다.
1986년 3월 '국회 국방위원회 회식 사건' 당시 현장에 있었다. 고인이 벽으로 던진 술잔 파편이 군 장성에게 맞은 것이 일이 커지는 계기가 됐다. 김영삼(1927∼2015) 대통령 때인 1993∼1994년 노동부 장관을 지냈다. 이후 5년간 호남대 객원교수로 정치 문제를 강의했다.
보수 정권 핵심으로 있으면서도 진보와 교류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스스로 자신을 '체제 내 리버럴'이라고 표현했고, 유족에 따르면 한 시인은 '의식은 야(野)에 있으나 현실은 여(與)에 있었다/ 꿈은 진보에 있으나/ 체질은 보수에 있었다'고 쓴 적도 있다.
고인의 회고에 따르면 1990년 국회에서 임수경씨의 방북과 관련, "방북자 구속 문제는 범죄에 대한 처벌 차원이 아니라 트래픽 컨트롤 즉 교통 정리적 차원"이라고 발언했다., 노동부 장관 재직 시 당시 김영삼 대통령에게 현대중공업의 파업 현장에 공권력을 투입하지 말라고 건의하기도 했다.
딸 남영숙 이화여대 교수는 "아버지는 보수와 혁신을 넘나든 정치인이었고, 그 점을 스스로도 자랑스러워하셨다"고 말했다.
유족은 부인 변문규씨와 4녀(남화숙<미국 워싱턴주립대 명예교수>·남영숙·남관숙·남상숙)와 사위 예종영(전 가톨릭대 교수)·김동석(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씨 등이 있다.
고인의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3호실. 발인은 19일 오전 5시 20분. 장지는 고향인 청주시 미원 선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