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분은 고려아연 앞서지만, MBK는 자금력에서 상대적 우위”
[서울이코노미뉴스 김보름 기자] MBK파트너스와 영풍의 고려아연 공개매수가 다음 달 4일 실질적으로 종료되는 가운데 자본시장은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이 대항 공개매수에 나설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재계에서는 고려아연이 MBK·영풍의 과반 지분 확보를 저지하기 위해, 기존 우호 세력을 빼고 주식 공개 매수 등으로 최소 6% 이상의 지분을 더 확보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1주당 75만원을 기준으로 필요한 자금은 1조1300억원 안팎이다.
MBK는 지난 26일 공개 매수 가격을 1주당 66만원에서 75만원으로 13.6% 올렸다.
고려아연은 방어에 필요한 1조원 안팎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세계 3대 사모펀드 중 하나로 꼽히는 미국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 등을 비롯한 북미 등의 다수 사모펀드들과 협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화 계열사인 한화에너지가 대항 공개매수의 ‘백기사’로 나설 것이라는 얘기도 나돌고 있다. 고려아연이 기업어음(CP) 발행으로 마련한 4000억원을 한화에너지에 빌려주고, 한화에너지는 이 돈을 특수목적법인(SPC)에 출자해 대항 공개매수에 뛰어든다는 시나리오다.
고려아연은 'CP 발행은 운영자금 마련을 위한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시장에서는 해당 자금이 영풍·MBK의 공세에 맞서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한 '실탄'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현재 한화그룹은 고려아연 지분 7.76%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에서는 한화를 비롯해 현대차, LG화학 등 대기업 지분(18.4%)을 최씨 일가의 우호 지분으로 분류하고 있다.
한화 측은 그러나 "언급되는 내용들은 완전히 사실무근"이라고 말했다.
최윤범 회장은 지난 추석 연휴 기간 중에는 일본 도쿄에서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글로벌 투자회사 일본 소프트뱅크 측과 회동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실 여부를 떠나 영풍·MBK 측에 맞설 우군과 ‘실탄’ 확보를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부담이 커지는 것은 MBK도 마찬가지다. MBK는 공개 매수에 2조2272억원, 영풍 지분을 최종적으로 인수하는 데 1조4000억원 등 총 3조6272억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자본시장 안팎에선 MBK가 최소 4조원 이상이 쌓인 다른 투자 펀드에서 자금을 끌어올 계획이라 ‘실탄’이 부족한 상황은 아니라고 본다. 하지만 비싸게 살수록 자금 회수가 어려워지는 걸 우려할 것이란 지적이 많다.
MBK가 공개매수 가격을 올린 것은 10월 4일까지 예정된 공개 매수에서 충분한 지분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에 기관 투자자 등에 더 적극적으로 주식을 자기들 쪽에 팔아달라는 구애 전략으로 분석되고 있다.
재계에서는 고려아연이 대항 공개매수에 나서면 MBK 측이 여기에 맞서 공개 매수 가격을 또 올릴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러다보면 공개 매수 가격이 90만원대에 이를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하지만 최 회장의 대항 공개매수는 불법 가능성이 걸림돌이다. 자본시장법은 주가조작 가능성 등을 막기 위해 주식 공개 매수 기간에는 공개 매수자와 매수자의 특별 관계자가 공개 매수가 아닌 방법으로 장내에서 지분을 늘리는 것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MBK는 고려아연이 MBK와 손잡은 영풍과 지분 관계로 얽혀 있는 특별 관계자인 만큼, 장내에서 자기 회사 주식을 사면 불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양측은 현재 이 문제를 놓고 법적 분쟁을 진행 중이다.
이에 따라 최 회장 등 최씨 일가는 개인 자격으로 공개 매수 기간 막바지에 지분 매입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많다.
고려아연은 세계 1위의 비철금속 제련 기업이다. 전자·전기, 반도체, 자동차, 조선, 철강 등 주요 산업에 아연·동·은 등 기초 원자재를 제공하는 공급망의 주축이기도 하다.
재계에서는 현재 고려아연 측이 ‘명분’에서는 앞서지만, MBK는 ‘자금력’에서 상대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다만 자금 합계 5조원에 육박하는 초유의 ‘쩐의 전쟁’으로 확산돼 나간다면 고려아연의 경쟁력은 장기적으로 치명상을 입을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