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관예우’ 없는 한국 언론계
‘전관예우’ 없는 한국 언론계
  • 정종석<발행인>
  • 승인 2014.06.14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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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성식 ‘으리’ 안통하는 비정하고 냉혹한 ‘제4의 권부(權府)'

 정종석 발행인
기자란 참 묘한 직업이다. 아무런 벼슬이나 감투가 없는데도 어느 곳이든 거리낌없이 다닌다. 이른바 ‘무관(無冠)의 제왕’이다.

기자들이 노트북 컴퓨터(과거에는 볼펜 한자루)를 앞에 놓고 자판을 두드리면 엄청난 뉴스가 나오고, 그 뉴스가 세간의 여론을 형성한다. 기자들은 한 개인에 불과하지만 그들이 생산한 뉴스는 출입처는 물론 온 세상을 들썩이게 만들기도 한다.
 
뉴스생산과 전달을 주업으로 하는 기자들은 주로 출입처 기자실(개별 독립 취재도 적지 않지만)과 생생한 뉴스현장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주요 취재원들을 쫒아다니며 시도 때도 없이 질문공세를 하고, 사건과 뉴스가 발생하는 장소라면 어디든 찾아서 하루 종일 뭔가를 캐는 등 부산히 움직인다.
 
자유롭지만 그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서열이 있다. 같은 언론사 내에서는 물론 다른 언론사라도 선후배 관계를 엄격히 따진다. 다른 언론사 선배들을 소속사 선배들처럼 깍듯이 모시고, 선배들은 다른 언론사 후배들이라도 각별히 챙겨주기도 한다. 일종의 ‘도제(徒弟)식’ 선후배 관계가 남아 있는 직업군이다.
 
이런 기자사회에서 눈에 띄는 일은 기사를 쓸 때의 치열한 경쟁관계다.  기자들은 평소에는 하루 종일 심지어는 현장에서 밤을 지새우면서까지 자기 가족들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동료기자들과 보낸다.
 
그러다가 일단 기사거리가 생기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경쟁에 돌입한다. 남다른 특종(scoop)을 위해서, 아니면 타사보다 더 좋은 기사을 쓰기 위해서 때로는 동료기자들의 인정이나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기사거리를 물면 숙명의 라이벌이자 일종의 ‘적(敵)’으로 돌변한다.
 
그래서 기자사회에는 사실상 ‘적’과 ‘동지’가 따로 없다. 그들 관계는 영화 제목처럼 ‘적과의 동침(sleeping with the enemy)’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할 지도 모른다.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이 국무총리 후보로 내정된 것은 기자출신으로선 역사상 처음이다.  이후 그의 과거 발언으로 발생한 혼란을 보면서 우리나라 기자사회에는 ‘전관예우’가 없구나 하는 느낌을 받는다.
 
언론계의 입장에서 문 후보자는 동지이자 동업자 관계다. 대부분의 사회 업종에서 동업자는 그가 속했던 전 집단이나 조직에서 우대를 받는다. ‘이왕이면 다홍치마(同價紅裳)’라고 같은 업종 동업자를 대할 때 대부분 손이 안으로 굽는 것이 관행이자 현실이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크게 사회문제가 된 각종 ‘관피아(관료+마피아)’를 비롯해 이미 첫번 째 국무총리 후보자로 내정됐던 안대희 전 대법관이 낙마한 것은 따지고 보면 모두 해당 분야의 전관예우 관행이 초래한 결과였다. 모두가 같은 직장이나 조직에서 일하던 전임 선배와 동료들을 끌어주고 밀어주는 ‘끼리끼리' 동업자 문화가 빚어낸 산물인 셈이다.
 
필자는 문 후보자와 개인적으로 언론계 선후배 관계다. 소속사는 달랐지만 신문사 정치부기자 시절 여러 군데를 몇 년간 같이 출입했고, 몇해 전에는 관훈클럽 해외여행도 같이 다녀온 일도 있다. 가까이서 본 그는 더할 나위 없이 친근하고 다정한 언론계 선배다.
 
언론의 기본적인 역할은 비판과 감시다. 과거 현역시절 그가 썼던 칼럼이나 강연내용은 아마도 이 언론의 역할에 충실하려고 했던 일환이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일반 국민들이 문 후보자 문제를 계기로 새삼스럽게 언론과 언론인에 대한 평가를 다시 내리고 있다는 점이다, 사람들을 만나보면 언론과 언론인에 대한 말들을 자주 한다. 아울러 언론의 자유와 한계, 윤리성, 책임감 등을 환기하는 일에 부쩍 주목한다는 생각에 이른다.
 
“평소에 지들 맘대로 기사나 칼럼을 쓰고 주무르더니 (현역 은퇴 후) 세상에 나와서 이번엔 자기가 그대로 당하니 얼마나 아프겠느냐”는 반응에서부터 “박근혜 정권에서 청와대 홍보수석이나 대변인같은 사람들을 현역 언론에서 그대로 데려다 쓰는 것이 언론인들이 권력에 들어올 수 있다는 잘못된 시각이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등 여러 가지 비판들이 나온다.
 
언론인의 권력부처 기용은 과거 정부에서도 적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가 처음은 아니다.
 
문제는 세상이 달라졌고 이런 일들에 대한 국민의 정서가 예전과 같지 않고 매우 차갑다는 점이다. 현역 언론인을 데려다 쓰는 것은 즉각 ‘언피아(언론+마피아)“란 말로 매도되기도 한다.
 
관피아를 비난하는 언론이 자신들의 출세와 영달을 위해서 현역에서 정치권이나 권력으로 이동한다면 그것 또한 언피아가 아니냐는 시선이다.
 
이 대목은 필자도 할 말이 별로 없다.
 
문 후보자는 지금 무척 심사가 괴로울 것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스스로 그만두고 초야에 묻혀 살고 싶은 생각도 들 것이다. 40년 세월동안 언론인으로 쌓아온 명성과 명예가 하루아침에 무너지 내리는 비통하고 참담한 심정일 것이다. 언론계 동업자들로부터 보호를 받기는 커녕 십자포화를 맞는 바람에 일종의 ‘배신감’을 느낄 지도 모른다.
 
그래서 떠올리는 것은 만약 이번 문 후보자 사태에서 언론이 일제히 침묵하고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하는 점이다. 그들이 진정으로 다른 직종처럼 '똘똘 뭉친' 동지였고, 또 동업자 간의 ‘의리’를 지키는 '전관예우'를 하려고 했다면 당연히 눈을 감고 귀를 닫았어야 할 텐데 말이다.
 
박근혜 정부가 기자출신 첫 총리후보를 발표했을 때 동업자인 언론의 호감을 은근히 기대했었던 듯 싶다. 그동안 청와대가 발표한 중요 국무위원급 이상 후보들에게 매사 비판적이던 언론이 문 후보자가 같은 동업자였던 만큼 대충 비판을 접어두고 한번쯤 봐주지 않을까를 기대했을 법 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기대는 순식간에 빗나가고 말았다. 그것도 예상보다 훨씬 나쁜 쪽으로 엄청나게 말이다.
 
지금 젊은층에는 영화배우 겸 탤런트 김보성의 ‘으리으리한 의리’ 광고가 인기다.이를 패러디한 이른바 ‘으리’열풍이 일고 있다. 경제가 어렵고 사회가 삭막해서 서로가 의리를 찾기가 어렵다는 점도 한몫을 했다고 한다.
 
문 후보자 사태를 계기로 우리나라 언론계에서는 의리를 찾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해 줬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언론인들은 참으로 비정하고 냉혹한 사람들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 문 후보자 문제가 어떻게 결론이 날 지는 모른다. 필자는 문후보자에게 진퇴문제를 어떻게 하라고 충고할 용기가 솔직히  없다.  
 
매스컴 교과서에서 언론은 입법, 사법, 행정에 이어 ‘제4의 권부(權府)’로 불린다. 언론의 감시 역량이나 여론 형성 능력을 쉽게 무시할 수 없고, 언론이 우리 사회의 목탁으로서 그만큼 권한이 막강하다는 얘기다.
 
문 후보자 사태에서 중요한 것은 한국 언론이 ‘전관예우'와 '동업자 의리’를 과감히 저버리고 비판과 감시라는 언론 본연의 길을 택했다는 점이다. 이것이 모피아나 해피아같은 관피아 세계와 분명히 다른 점이다. 이번 일을 통해서 이 땅의 언론이 아직 살아있는 것을 확인했다면 그것은 한국언론사에서 적지 않은 성과일 것이다.
 
만약 관피아같은 다른 직종의 유착부패 문제에는 무자비한 칼질을 하면서 언론인 동업자문제를 다른 잣대로 적당히 봐주고 말았다면  이야 말로 '언론판 전관예우'이며, 한국 언론마저 역시 썩었다는 엄청난 국민적 비판과 실망에 직면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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