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하나, 못하나?" 금감원, 대규모 징계 처음부터 무리수
"안하나, 못하나?" 금감원, 대규모 징계 처음부터 무리수
  • 김영준 기자
  • 승인 2014.06.28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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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명도 못 듣고 3일로 연기..고객 정보 유출 카드사들은 아예 제재심의실 입장도 못해

징계를 안하는 것인가 아니면 못하는 것인가?

지난 26일 오후 6시쯤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11층 대회의실 옆 대기실 주면. 두툼한 서류 봉투를 움켜쥔 은행 임직원들이 하루종일 기다리다가 넋두리처럼 중얼거린다.

은행에 내려진 징계 통보에 대해 소명하려고 금감원을 찾은 다른 금융사의 임원은 "벌 받으러 온 터라 뭐라 따질 입장은 못되지만, 오늘 온 종일 복도에서 서성거리다 허탕치고 돌아간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이날 금감원에선 금융권 사상 최대 규모인 9개 금융기관 전·현직 임직원 200여명에 대한 징계 수준을 결정하는 제재 심의가 열렸다.

30도에 육박하는 더운 날씨에도 제재심의실 밖 대기실과 복도에선 검은색과 짙은 청색 양복에 와이셔츠까지 차려입은 '금융맨' 70여명이 대기하고 있었다. 금감원 1층 입구에는 카메라를 둘러멘 취재진 40여명이 오후 내내 진을 쳤고, 3층에도 취재진 50여명이 비상 대기했다.

일반적인 경우 금융 사고가 발생하면 직접적인 사고 당사자(행위자)와 관리 책임이 있는 임원 1~2명이 징계를 받는 경우가 많아 금감원 제재 심의 현장이 이처럼 요란스럽지는 않다.

하지만 금융 당국이 대규모 중징계를 통보하자 대상자들도 적극적으로 소명에 나서면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 금감원의 조사 기간이 너무 짧은 데다 한꺼번에 강경 일변도의 무더기 징계를 통보하자 감독 당국이 금융회사를 마치 검찰이 사회 사범을 다루듯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초기부터 제기됐다.

결국 이날 제재 심의에선 징계 대상자 200여명의 징계 수준이 단 한 건도 결정되지 않았다. 금융 당국은 이날 오후 7시쯤 "제재 심의 안건에 대한 소명이 길어져 다음에 재심의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들은 당초 대형 금융 사고에 대한 제재를 올 상반기 중으로 마무리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지만, 결과적으로 한 건도 마무리하지 못했다. 다음 달 3일 열리는 제재 심의에서도 안건을 모두 처리하지 못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날 열린 제재 심의에선 고객 정보 유출과 주전산기 교체에 따른 내부 통제 미흡 등으로 제재를 받은 KB금융지주 임영록 회장을 비롯한 임직원 4명의 소명 절차가 1시간30여분간 진행됐다. 또 이건호 국민은행장과 사외이사 등 13명이 참석해 주전산기 교체건에 대해서만 1시간30여분간 소명했다. 이 행장은 도쿄지점 부당 대출로도 징계가 사전 통보돼 있어 다음 달 다시 제재 심의에 출석해 소명해야 한다.

카드사 고객 정보 유출건으로 징계 대상이 된 NH농협은행·롯데카드와 신용평가업체 KCB, 은행 고객 정보 유출로 징계 대상이 된 한국씨티은행, 한국SC은행, 파이씨티 관련 신탁상품 불완전 판매로 징계 대상이 된 우리은행에서 출석한 금융권 인사는 제재심의실에 입장조차 못했다.

은행권의 한 인사 담당자는 "임원뿐 아니라 일반 직원도 경징계라도 받으면 인사에 불이익을 받기 때문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며 "금감원에서 유례없이 거칠게 대규모로 징계 절차를 진행하고 있어 심의위원들이 개인의 소명 자료나 제대로 읽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금감원 내부에서도 "이번에 진행된 금융권 검사와 징계가 다소 무리하게 진행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대해 금감원 관계자는 "지난해 하반기 이후 금융 사고가 잇따라 터지면서 징계 사안과 대상자가 중복돼 이번에 유독 징계 대상자가 많은 것"이라며 "사실에 근거해 공정한 제재 심의가 내려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변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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