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英雄)과 패장(敗將)
영웅(英雄)과 패장(敗將)
  • 정종석<발행인>
  • 승인 2014.06.29 18:15
  • 댓글 0
  • 트위터
  • 페이스북
  • 카카오스토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차범근-홍명보,월드컵 감독들의 독배(毒杯) 퍼레이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 많은 영웅(英雄)들이 명멸(明滅)했다.
 
영웅이 된 다음 줄곧 출세가도를 달리며 일생을 마친 인물도 있고, 영웅이 졸지에 역적으로 바뀌며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 사람도 있다. 과거의 역사 책에 나오는 일화 만이 아니다. 현세에도 영웅과 패장(敗將)은 동시에 존재한다.
 
월드컵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은 명예로운 자리다. 그 나라 최고이거나 명문 클럽 팀 지도자가 아니면 맡기가 어렵다. 그만큼  대단한 반면 위태로운 자리다. 자칫 삐끗하면 그만두는 건 순식간이다. 그냥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한국 국가대표팀의 브라질 월드컵 16강 탈락을 놓고서도 말들이 많다. 국민적 염원을 이루지 못한 홍명보 감독은 과거의 축구영웅에서 졸지에 마치 ‘역적’이라도 된 꼴이다. 패장이 되자마자 비판과 힐난을 한 몸에 받고 있다.
 
홍명보가 누구인가. 그는 위대한 선수였고 감독으로도 성공적인 이력을 쌓아왔다. 한국 축구사에 그런 인물은 별로 없었다. 2002 월드컵 4강 신화의 맏형이자, 2012 런던 올림픽 동메달을 안긴 한국 축구의 영웅이다. 하지만 적어도 현 시점에서 그는 가장 처참하게 몰락했다.
 
이번과 같은 ‘참사’는 과거에도 있었다. 차범근 감독이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본선 멕시코와의 1차전에서 1-3, 네덜란드와의 2차전에서 0-5로 2연패를 당하자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현지에서 전격 해임을 당하고 말았다. 한국팀은 벨기에와의 3차전에서 1-1로 비겼으나 1무2패로 조별 리그에서 탈락, 대회를 마무리했다.
 
그 때가 독일 분데스리가의 전설적인 한국인 영웅이던 차 감독이 졸지에 국민들로부터 ‘역적’으로 내몰린 순간이었다. 차감독은 “그로부터 2002년 한일 월드컵까지 4년 동안은 내 인생의 암흑기였다”고 종종 회상하는 것을 본 기억이 난다.
 
그의 아들인 차두리 선수까지도 “대표팀이 네덜란드에 대패했을 뿐 아버지(차 감독)가 이완용처럼 나라를 팔아먹은 것도 아닌데, 매스컴과 여론은 아버지를 역적이나 매국노처럼 공격하고 매도하는 험악한 분위기였다”고 회고했다. 그의 발언을 들으면 당시 격앙된 국민 감정이 그대로 드러난다.
 
필자는 축구 전문가가 아니다. 스포츠문제에 관한 특별한 식견도 없다. 그러나 지금 느끼는 것은 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우리는 또 한명의 스포츠 영웅을 ‘무덤’으로 보내고 있지는 않은 지 하는 안타까움이다.
 
과거 차범근 감독이 그랬듯이 홍명보 감독도 이 땅에서 우리가 길러낸 훌륭한 스포츠 영웅이다. 그런데 이번 월드컵 무대에서 참패를 당한 뒤 그는 회복할 수 없는 치명상을 입고 말았다. 비록 (차 감독처럼) 현지에서 해임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마치 앞으로 재기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축구협회는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직후 대표팀을 맡은 조광래 감독에게 평가전 부진의 책임을 물어 15개월 만에 해임했다. 조 감독은 4년을 내다보고 대표팀에 ‘선진 축구’를 심겠다며 팀을 다져갔지만, 축구협회는 일본과의 평가전 패배 책임을 물어 기술위원회조차 열지 않은 채 조 감독을 경질했다.
 
이후 대표팀을 월드컵 본선에 올려놓은 최강희 감독이 본선 진출까지만 맡겠다는 공언대로 물러났다. 그러자 축구협회는 아직 대표팀을 맡을 준비가 안됐다면서 극구 손사래를 치던 홍명보 감독에게 지난 해 6월 서둘러 감독직의 바통을 넘겼다.
 
해외파가 핵심 전력이 된 대표팀에 한해 몇차례 열리는 A매치와 한달여 전지훈련으로 월드컵을 치르기에는 터무니없이 시간이 부족하다. 감독이 오랜 기간 선수를 관찰하고 조련하면서 팀을 완성해가야 하는 법이다.
 
그런데 축구협회는 준비성과 인내심이 없었다. 2002 한일월드컵 4강, 2010 남아공월드컵 16강 등의 성적은 축구협회가 거스 히딩크, 허정무 감독에게 3년 이상 임기를 보장한 끝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홍 감독은 원치 않은 ‘독이 든 성배(毒杯)’를 축구협회로부터 받아들고, 내키지 못한 채 1년 만에 브라질 월드컵이라는 ‘사지(死地)’로 나갔던 것은 아닐까.
 
물론 이미 패장이 된 마당에 더 이상 홍 감독의 변명은 지금 실망한 국민들 귀에는 별로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홍 감독도 "모든 책임이 부족한 저에게 있다"며 귀국 후 거취 문제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어느 분야이든 인재는 항상 소중한 법이다. 인물을 키우기는 힘들어도, 망치고 죽이기는 매우 쉬운 일이다. 한국 축구의 소중한 자원이던 홍명보 감독은 이미 '몰락한 영웅'으로 사퇴위기에 직면해 있다.
 
축구협회가 준비가 미흡했던 홍 감독을 선임했고, 준비 기간도 제대로 확보해 주지 못한 것은 이제 세상이 모두 아는 일이다. 결과적으로 축구협회는 훌륭한 축구지도자 한명을 ‘잡아먹은’ 꼴이다.
 
우리 주변에는 조명시리(朝名市利)란 옛 말이 있다. 조정(朝廷)에서 명예(名譽)를, 저자에서 이익(利益)을 다투라는 뜻이다. 어떤 일이든 알맞은 곳에서 하라는 선조들의 충고다.
 
홍 감독이 훌륭한 축구선수였지만 아직 지도자로서는 덜 익은 단계였는 지 모른다. 필자는 그가 좀 더 천천히 그리고 원숙하게 지도자 수업을 받은 다음 '알맞게'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다면 점 더 나은 성과를 냈을 것만 같은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원래 전쟁에 지고나면 후폭풍과 뒷탈이 많은 법이다. 옛부터 '이기면 충신,지면 역적'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래서 전쟁은 꼭 이겨야 한다. 월드컵이라는 전쟁도 마찬가지다. 이번에도 16강에서 탈락하고 나니 숱한 '역적'과 '죄인'들이 쏟아지고 말았다.
 
스포츠에서 영웅이 된 선수들은 한번 쯤 ‘메멘토 모리’에 얽힌 고사(故事)를 기억하라고 권하고 싶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는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 또는 "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네가 죽을 것을 기억하라"를 뜻하는 라틴어 낱말이다.
 
옛날 로마에서는 원정에서 승리를 거두고 개선하는 장군이 시가 행진을 할 때 노예를 시켜 행렬 뒤에서 큰소리로  이렇게 외치게 했다고 한다.  " "메멘토 모리!"-. 메멘토 모리!"-.
 
이는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너무 우쭐대지 말라. 오늘은 개선 장군이지만,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니 겸손한 행동하라”는 의미에서 생겨난 풍습이라고 한다.
 
우리는 스포츠영웅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순식 간에 인생이 급전직하할 수 있는 사회에 살고 있다. 그래서 한 때 영웅이었다고 하더라도 자칫 잘못하면 언제든 패장이나 역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사는 생활태도가 필요할 것이다.
 
한국의 이번 브라질 월드컵 잔치는 끝났다. 이제 4년 뒤를 기약해야 한다. 우리는 월드컵 축구라는 때가 되면 태풍처럼 다가오는 시대적 담론 때문에 차범근과 홍명보라는 두 축구 영웅을 차례로 잃고 말았다.
 
이번 브라질월드컵 실패를 잊지 말고, 4년 뒤를 위해서라도 임진왜란 때 서애 유성룡처럼  '징비록(懲毖錄)'을 꼭 써서 반성의 거울을 들여다 볼 것을 제안한다. 이를 통해 치욕을 딛고 또 다시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는 냉철한 준비와 작업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리고 이들 월드컵 패장들을 무덤 속에 영원히 가두지 말고, 2002년 한일 월드컵 때처럼 “대~한민국..짝짝짝~짝짝”하는 국민적 에너지로 살릴 수 있는 밑거름으로 활용해 나갔으면 싶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주)서울이코미디어
  • 등록번호 : 서울 아 03055
  • 등록일자 : 2014-03-21
  • 제호 : 서울이코노미뉴스
  • 부회장 : 김명서
  • 대표·편집국장 : 박선화
  • 발행인·편집인 : 박미연
  • 주소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은행로 58, 1107호(여의도동, 삼도빌딩)
  • 발행일자 : 2014-04-16
  • 대표전화 : 02-3775-4176
  • 팩스 : 02-3775-4177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미연
  • 서울이코노미뉴스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2 서울이코노미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seouleconews@naver.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