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밀양 박씨(密陽朴氏)-3,031,478명
(2)밀양 박씨(密陽朴氏)-3,031,478명
  • 정복규
  • 승인 2014.07.05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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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박씨는 신라 박혁거세의 29세손인 경명왕의 8대군 중 밀성대군 박언침이 중시조로 밀성대군에 봉해졌다. 밀성은 밀양의 옛 이름이다. 그래서 후손들이 밀양을 본관으로 했다.

밀양박씨는 모든 박씨 가운데 종가이며 밀양박씨에서 10여 개의 본관으로 갈라진다. 밀양박씨 내에서도 여러 개로 분파되었다. 이들은 또 여러 파로 다시 나뉘어져서 전체를 파악하기는 어렵다. 밀양박씨는 본관별 인구에서 김해김씨(가락) 다음으로 인구가 많다.

밀양박씨는 8세손 박언부(문하시중공파), 8세손 박언상(도평의사공파), 8세손 박언인(좌복야공파), 8세손 박언양(밀직부사공파), 8세손 박천익(판도공파), 8세손 박을재(좌윤공파) 등 크게 6파로 나누어진다. 그 뒤 아랫대로 내려오면서 다시 여러 파로 분파되었고, 10세손 환(桓)이 영암박씨로 분적하는 등 10여 개 본관으로 갈라졌다.

조선 전기의 인물로는 박 연이 유명하다. 그는 고구려 왕산악, 신라의 우륵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악성(음악가)으로 꼽힌다. 박 연은 어려서부터 항상 가슴에 손을 대어 박자 맞추는 모양을 하고 휘파람을 불어 곡조를 연습했다.

1445년 성절사로 명나라에 다녀와서 중추원부사 등을 거쳐 예문관대제학에 오른다. 세조 때 그의 셋째 아들 박수우가 안평대군과 가깝다는 이유로 처형되면서 가문이 멸족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3명의 왕을 거치면서 기여한 그의 공이 참작돼 화를 면한다.

대신 벼슬을 버리고 고향인 충북 영동으로 돌아가 피리소리에 묻혀 여생을 보냈다. 어려서부터 피리의 신동으로 불리던 그는 당시 8순 고령인데도 청아하고 애절한 가락을 한마당 연주하고 이별을 고한다.

조선조 후기의 인물이며 북학파의 일원으로 유명한 박제가는 박지원의 문하에서 실학을 연구했다. 1778년(정조 2) 사은사의 수행원으로 청나라에 들어가 학문을 배웠다. 귀국 후 실사구시의 사상을 토대로‘북학의’를 저술한다.

박제가는 정조가 죽고 신유사옥 때 개혁파의 한 사람으로 유배당한다. 2년 후 유배에서 풀렸으나 은거하는 바람에 아무도 그의 소식을 알지 못한다.

박두병 씨는 해방 후 일본인이 경영해온 기린맥주를 인수, OB맥주를 탄생시킨 장본인이다. 두산그룹 회장 박용곤 씨는 그의 장남이다. 박병규 씨는 해방되던 해인 1945년 약관 20세에 해태제과를 설립, 제과 왕국을 이룩한 식품업계의 원로다. 해태제과 사장 박건배는 그의 장남이다

박흥식 씨는 지난 1931년 우리나라 백화점의 원조라 할 수 있는 화신백화점의 사장에 오른 후 1960년대에 한국 재계를 주름잡았다. 그는 지난 1981년 화신 재기 5개년 계획을 세우고 동분서주, 노익장을 과시하기도 했다. 박용학은 1955년 대한농산 사장에 취임한 후 1960년대 한국 면방업계를 주도해온 원로 경영인이었다.

박충훈 씨는 미 군정 당시 약관 20대에 상공부 상역국장으로 첫발을 디딘 이후 상공부장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을, 10·26사태 이후 격변기에는 국무총리서리와 대통령 권한대행을 역임한 관계의 거물이다.

박병권 씨는 5·16 직후 예편, 국방부장관을 지내다 군정 연장에 반대, 장관직을 물러난 강직한 성품의 3성 장군이다. 박경원씨 또한 창군에 참여했던 3성 장군이다. 그는 5·16 이후 세 차례의 내무부장관과 체신·교통부장관을 역임했다.

박대선 씨는 1964년 연세대 총장에 취임한 후 1975년 학원 소요로 물러날 때까지 만 10년6개월을 총장직에 있었다. 전 한신대 학장이며 기독교 선교원장을 지낸 박근원 박사도 밀양박씨의 인물이며 을지병원(학원) 이사장 박종하 씨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박순천 씨는 밀양박씨가 낳은 여장부이다. 그녀는 일제하인 1919년 독립운동을 하다 1년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해방 후 대한여자청년단장, 민중당 대표최고위원 등을 역임, 숱한 남성 정치인들 속에서 야당의 거목으로 성장해온 한국 정당정치사의 산증인이었다.1969년 신민당 고문을 끝으로 정계에서 은퇴한 그녀는 1972년 근명학원 이사장으로 육영사업에 힘을 쏟기도 했다. 1983년 9월 노환으로 별세, 사회장이 엄수됐다.

그 밖에 현대 인물은 박한상(국회의원), 박주병(보사부장관), 박찬현(문교부장관), 박제환(농림부장관), 박임항(건설부장관), 박동진(외무부장관, 주미대사), 박희찬(상공부장관), 박종문(농수산부장관), 박영수(서울시장), 박용학(대농그룹회장), 박원석(대한석유공사 사장), 박남수(천일고속사장), 박상복(경기일보사장, 동양석유 회장), 박영준(진흥기업 회장), 박준익(롯데산업 사장), 박인천(금호그룹회장), 박남규(조양상선 사장), 박종보(유성모직 회장), 박성형(신라교역회장), 박세정(대선제분회장), 박승복(샘표식품사장), 박명진(치의학박사), 박철웅(법학박사, 조선대총장), 박종홍(철학박사, 서울대대학원장) 박술음(문학박사, 외국어대총장), 박길진(철학박사, 원광대총장), 박기혁(경제학박사, 연세대상경대학장), 박유재(국회의원), 박윤종(국회의원), 박권흠(국회의원), 박재욱(국회의원), 박동진(국회의원), 박익주(국회의원), 박태준(국회의원), 박경석(국회의원), 박종관(국회의원), 박현태(국회의원), 박원탁(국회의원), 박관용(국회의원), 박완규(국회의원), 박병일(국회의원), 박정수(국회의원), 박노영(대장, 향군부회장), 박시춘(작곡가), 박용구(소설가), 박화성(여류작가), 박동진(국악인), 박종화(소설가), 박용섭(송원대교수) 씨 등이 있다. (무순, 전·현직 구분 안 됨)

주요파는 문하시중공파, 도평의사공파, 좌복사공파, 밀직부사공파, 판도공파, 좌윤공파, 사문진사공파, 충헌공파, 영동정공파, 밀직부원군파, 정국공파, 규정공파 등이다.

본관 밀양은 경상남도 밀양시의 지명이다. 995년(고려 성종 16)에는 밀주(密州)로 개칭하였고,1018년(현종 9)에 밀성군(密城郡)으로 개편되었다. 1285년에는 군으로 승격되었으나 다시 현으로 강등되었다가 1390년(공양왕 2)에 밀양부로 승격하였다. 밀양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는 강(姜), 곽(郭), 권(權), 김(金), 남(南), 노(魯), 당(唐), 대(大), 도(都), 류(柳), 박(朴), 배(裵), 백(白), 변(卞), 서(徐), 선(宣), 손(孫), 송(宋), 신(申), 안(安), 양(楊), 엄(嚴), 오(吳), 유(兪), 윤(尹), 이(李), 이(異), 임(林), 장(張), 전(田), 정(鄭), 조(趙), 진(陳), 천(千), 천(天), 최(崔), 하(河), 한(韓), 홍(洪), 황(黃) 등이 있다.

집성촌은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오금리, 전남 진도군 의신면 칠전리, 경북 군위군 우보면 모산리, 경북 청도군 금천면 신지리, 경북 청도군 이서면 일원, 경북 문경시 가은읍 수예리, 충북 청원군 강의면 연제리, 경기도 개풍군 상도면 상도리 등이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1,636명이다. 문과 257명, 무과 452명, 사마시 759명, 역과 75명, 의과 43명, 음양과 19명, 율과 25명, 주학 6명이다. 통계청의 인구 조사에 의하면 밀양박씨는 1985년에는 총 641,900가구 2,704,819명, 2000년에는 총 946,307가구 3,031,478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15년 만에 무려 30여만 가구,30여만 명이 늘어났다.

1985년 당시 지역별 인구 분포는 서울 599,910명, 부산 274,329명, 대구 136,305명, 인천 85,495명, 경기 298,723명, 강원 103,553명, 충북 79,254명, 충남 184,720명, 전북 149,966명, 전남 290,994명, 경북 194,835명, 경남 286,662명, 제주 19,871명이다. 부산과 경남 지역에 많은 분포를 보이고 있다. 전남 지역에도 많이 살고 있다.

15년 후인 2000년 현재는 서울 613,772명, 부산 283,130명, 대구 164,469명, 인천 152,254명, 광주 90,456명, 대전 82,228명, 울산 76,821명, 경기 556,387명, 강원 88,996명, 충북 82,249명, 충남 113,983명, 전북 126,687명, 전남 160,665명, 경북 178,894명, 경남 238,442명, 제주 22,045명이다. 1985년과 마찬가지로 부산, 울산, 경남 지역에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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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정복규 프로필

● 전북매일 편집국장, 논설위원

● 익산신문 사장

● 현재 새전북신문 수석 논설위원

 

● 현재 성씨 전문강사(한국의 성씨를 통한 역사탐구)

 

( 저 서 )

• 한국의 성씨: 성씨를 찾아서

• 한국의 성씨: 1,2권

• 칼럼집: 숲이 좋으면 새가 날아든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핸드폰이 세상을 지배한다/ 개성있는 인재를 키워라

• 유머집: 각하 코드를 맞추세요

● 핸드폰: 010- 5162- 8632

● 이메일: jungboky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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