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경주 최씨(慶州崔氏)-976,820명
(5)경주 최씨(慶州崔氏)-976,820명
  • 정복규
  • 승인 2014.07.05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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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씨의 기원은 박혁거세 탄생 전설에 나오는 신라 6부 촌장 중의 한사람인 돌산 고허촌(突山高墟村)의 소벌도리(蘇伐都利)다. 32년(신라 유리왕 9) 최씨 성을 하사 받은 것으로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최씨의 실질적인 시조는 소벌도리의 24세손인 최치원(崔致遠)이다. 최치원을 1세조로 하는 경주최씨에서는 최치원의 첫째 아들 최승로(崔承老)의 후손에서 여러 본관으로 갈라진다.

최치원은 신라 말 최고의 학자다. 최치원을 시조로 하여 대대로 경주에 살았으므로 후손들이 경주를 본관으로 삼았다. 최치원은 12살의 나이로 당나라에 건너가 17세 때 과거에 급제, 당나라에서 벼슬을 지내다 29살 때 귀국한다. 신라에 와서도 한림학사 등 여러 벼슬을 지낸 그는 문장으로 이름이 높았다.‘동문선’또는‘최문창후전집’에서 그의 뛰어난 글을 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당나라 말 황소의 반란 때 지은‘토황소격문’은 동양에서 최고의 문장으로 꼽힌다.

당나라에서 신라에 귀국할 당시는 신라 말기로 지방 민란이 일어나는 등 민심이 동요되었다. 신라 지배층은 이러한 사회 동요를 수습할 능력이 없었다. 그는 선진 당나라에서 배운 지식을 토대로 사회개혁을 시도한다. 그러나 이미 힘을 잃은 신라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는 자원하여 지방의 벼슬자리를 역임하였다. 그 후 지방에 호족이 대두하고 사회가 어려워지자 가야산 해인사에 들어간다. 거기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며 여생을 마친다. 그의 문인 중에는 고려조에 들어가 관직에 오른 사람이 많다.

경주최씨는 고려 초에 가문의 번성을 크게 누린다. 고려 성종 때의 명신 최승로, 그의 손자인 최제안, 최 량, 최 항 등이 연이어 높은 자리에 오르면서 가문을 빛낸 것이다. 최치원과 비슷한 시기에 당나라에 유학하여 고려 초 평장사를 지낸 최언위는 최치원의 사촌 동생이다. 18세에 유학하여 과거에 급제하고 42세에 귀국, 벼슬을 지낸다. 935년 신라가 망하자 고려에 가서 태사사부가 되었다. 당시의 귀한 자제들은 모두 그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최승우는 진성여왕 4년(890년) 당나라에 건너가 공부하고 3년 뒤 급제하였다. 당시 당에서 공부한 학사 중에 가장 문장이 능하여 유명했다. 그는 후삼국 시대에 후백제로 가 견 훤을 위한‘대견훤기고려주서’를 썼으며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 최치원, 최언위, 최승우를 가리켜‘삼최’라 부른다. 최승로는 고려 성종 때 문하시중을, 최 항은 고려 현종 때 평장사를 지냈다.

수운 최제우의 본명은 복술이다. ‘어리석은 세상 사람을 구제한다’는 신념에서 제우라고 고쳤다. 일찍부터 경사를 익혀 학문 연구에 전심하다가 1844년부터 전국 각지를 유람하며 구도 행각에 나선다.

10년 후 고향에 돌아와 도를 닦던 중 1855년 금강산 유점사 승려에게서 얻은‘을묘천서’를 통해 도를 깨닫는다. 그 뒤 시천주(侍天主)의 사상을 핵심으로 한 인내천의 교리를 완성하고 동학을 창시한다.

해월 최시형은 1861년 동학교가 된 뒤 1863년 최제우의 후임으로 제2대 교주가 된다. 정부의 탄압으로 최제우가 처형되자 태백산에 은신한다. 다시 관헌의 눈을 피해 각 지방을 전전하며 포교에 힘썼으며 경전을 완성했다.

면암 최익현은 대원군의 서원 철폐, 경복궁 중수, 당백전 발행 등 정책을 탄핵하다 제주도에 유배된다. 그 뒤 1876년 일본과의 통상이 논의되자 도끼를 들고 대궐문 앞에 엎드려 조약체결은 안 된다고 외치다 다시 흑산도로 쫓겨 간다. 그를 따르는 제자가 수천을 넘었다.

최 준은 경주시 교동에서 '최부자집'으로 이름났다. 이 집은 12대 만석(萬石), 10대 진사(進士)로 유명하다. 우리나라 한글 발전에 공헌했던 외솔 최현배(崔鉉培)도 후손이다. 그는 우리말과 글의 발전을 위해 외길 한평생을 걸어온 학자다. 주시경에서 시작된 한글 연구는 그에 의해 꽃 피워졌다. 최영해(한국교과서출판협회장), 최신해(청량리뇌병원장), 최철해(도서출판정음사사장) 씨 등 3형제는 그의 아들들이다.

그 밖에 현대 인물은 최문환(서울대총장), 최정훈(연세대교육대학원장), 최경록(육군참모총장), 최용덕(공군참모총장), 최인규(내무부장관), 최형섭(과기처장관), 최종호(국가보훈처장), 최종환(삼환기업회장), 최무현(서전기업사장), 최준문(동아그룹명예회장), 최준규(서통회장), 최관식(코리아엔지니어링사장), 최국현(제헌의원), 최윤동(제헌의원), 최창규(국회의원), 최형우(국회의원), 최두고(국회의원, 동성학원이사장), 최영희(한림대교수겸 박물관장), 최상수(경희대교수, 한국민속학연구소장), 최기원(홍익대미술대교수), 최영박(고려대교수), 최지훈(강릉대학장), 최기철(서울대명예교수), 최임환(성균관대교수), 최운지(국회의원), 최영덕(국회의원), 최상진(국회의원), 최 웅(주멕시코대사), 최환기(공군소장), 최원석(동아그룹회장), 최종규(포천축협장), 최근덕(성균관대교수), 최하영(심계원장), 최영휘(신광여고교장), 최진우(중앙대교수), 최기원(홍익대교수), 최태영(청주대교수), 최이순(연세대교수), 최영근(국회의원), 최승기(체신부통신국장), 최동호(KBS보도본부국장), 최성규(언론인), 최병찬(KBS기자), 최종찬(변호사), 최흥덕(언론인), 최광택(군수), 최기영(서산향교전교), 최경휘(전양산업사장), 최영명(동부고속사장), 최병일(광풍건업회장), 최정환(인명여고교장), 최양부(농촌경제위원), 최민홍(중앙대교수), 최종호(내무부지방국장), 최영두(국회의원), 최희송(국회의원), 최 건(변호사) 씨 등이다. (무순, 전·현직 구분 안 됨)

항렬자는 32世 모(模) 규(圭), 33世 병(柄) 용(鎔), 34世 탁(鐸) 문(汶), 35世 래(來) 동(東), 36世 시(時) 선(先), 37世 용(鏞) 재(在), 38世 수(洙)탁(鐸), 39世 근(根) 한(漢), 40世 하(夏) 민(敏), 41世 성(聲) 식(植) 등이다. 주요파는 판도판서공파, 충열공파, 삼사좌윤공파, 어사공파, 밀성공파, 광정공파 등이다.

경주 본관 성씨는 강(姜), 고(高), 공(孔), 곽(郭), 권(權), 기(奇), 길(吉), 김(金), 나(羅), 남(南), 노(盧), 노(魯), 도(都), 류(柳), 민(閔), 박(朴), 방(方), 배(裵), 백(白), 변(卞), 봉(鳳), 빙(), 서(徐), 석(石), 석(昔), 설(薛), 설(), 섭(葉), 성(成), 손(孫), 신(申), 신(辛), 심(沈), 안(安), 양(梁), 염(廉), 엽(葉), 영(永), 오(吳), 우(禹), 원(元), 유(劉), 유(兪), 윤(尹), 이(李), 임(林), 장(張), 전(全), 정(鄭), 정(程), 조(趙), 주(朱), 주(周), 지(池), 진(陳), 차(車), 채(蔡), 천(千), 최(崔), 추(秋), 편(片), 하(河), 한(韓), 함(咸), 허(許), 현(玄), 홍(洪), 황(黃) 등이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모두 669명이다. 문과 42명, 무과 89명, 사마시 166명, 역과 86명, 의과 54명, 음양과 15명, 율과 14명, 주학 203명 등이다. 통계청의 인구 조사에 의하면 경주최씨는 1985년에는 총 210,154가구 876,732명, 2000년에는 총 304,722가구 976,820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15년 만에 9만여 가구,10만여 명이 늘어났다.

1985년 당시 전국의 지역별 인구 분포는 서울 179,041명, 부산 100,175명, 대구 64,192명, 인천 29,349명, 경기 97,551명, 강원 29,364명, 충북 29,552명, 충남 70,252명, 전북 24,153명, 전남 51,731명, 경북 98,445명, 경남 100,555명, 제주 2,369명이다. 부산과 경남 지역에 가장 많이 살고 있었다.

그 뒤 15년 후인 2000년 현재는 서울 178,716명, 부산 104,058명, 대구 77,432명, 인천 49,459명, 광주 16,207명, 대전 28,118명, 울산 36,403명, 경기 171,852명, 강원 25,027명, 충북 30,347명, 충남 42,907명, 전북 21,181명, 전남 27,712명, 경북 88,774명, 경남 75,368명, 제주 3,259명이다. 1985년과 마찬가지로 부산, 울산, 경남 지역에 많이 분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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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정복규 프로필

● 전북매일 편집국장, 논설위원

● 익산신문 사장

● 현재 새전북신문 수석 논설위원

●현재 성씨 전문강사(한국의 성씨를 통한 역사탐구)

( 저 서 )

• 한국의 성씨: 성씨를 찾아서

• 한국의 성씨: 1,2권

• 칼럼집: 숲이 좋으면 새가 날아든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핸드폰이 세상을 지배한다/ 개성있는 인재를 키워라

• 유머집: 각하 코드를 맞추세요

● 핸드폰: 010- 5162- 8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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