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맥주와 대외 경쟁력
한국 맥주와 대외 경쟁력
  • 정종석<발행인>
  • 승인 2014.07.19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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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수준과 국격에 걸맞은 '글로벌 비어 브랜드' 나와야

정종석 발행인
어느새 초복(18일)이 지나고, 삼복 더위의 계절에 들어섰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른다. 이럴 때 생각나는 것이 시원한 맥주 한 컵이다.

필자의 소견으로는 안타깝게도 우리 국산 맥주는 맛이 없다. 수입 맥주를 마셔본 분들은 알 것이다. 부드러운 거품 뒤로 쌉쌀하면서도 달큰한 뒷맛이 있다. 그러나 우리 맥주는 맛이 밍밍하고 싱겁다. 브랜드 간에 맛의 차이도 별로 없다. 한국 맥주는 그저 소주에 타서 ‘폭탄주’로 마시면 모를까 점잖게 품격를 담은 전통 맥주의 맛을 음미하기에는 많이 부족하다.
 
지난 2012년 11월 24일자 영국의 권위지(誌) 이코노미스트는 “한국맥주가 맛이 없다”고 보도했다. 거기에 “북한 대동강 맥주가 더 맛있어서 외국인들도 좋아한다”는 말을 중간에 끼워두었다. 결과적으로 “한국 맥주는 북한의 대동강 맥주보다 맛이 없다"고 혹평하는 기사가 나온 것이다. 한국 맥주가 오죽하면 북한 맥주보다도 못하다고 보도했을까.
 
도대체 전체 인민이 굶고 산다는 북한에서 어떻게 맥주를 맛있게 만들 수가 있을까 하는 궁금증을 가졌다. 한참 뒤에 대동강 맥주가 유럽기술의 산물이라는 것을 알았다. 지난 2000년도에 북한이 영국의 '어셔스양조장' 양조시설을 174억원을 주고 사서 송두리째 이전한 결과물이라고 한다. 그렇게 보면 대동강 맥주의 맛에는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국산 맥주와 수입 맥주 간 맛의 차이는 우선 제조 공법 때문이라고 한다. 맥주는 상온에서 숙성시키는 에일과 저온에서 숙성시키는 라거방식으로 나뉜다. 국산 맥주는 라거 방식이 거의 100%에 가까워 맛의 선택 폭이 적다. 또 해외와는 달리 국내에서는 맥아의 비율이 10%만 넘으면 된다. 따라서 옥수수 등 다른 원료를 섞어 밍밍한 맛이 난다는 것이다.
 
거품도 맛의 비밀이다. 거품은 톡 쏘는 탄산가스가 밖으로 새는 걸 막아주고, 공기와 접촉을 차단해 맛을 유지한다. 그래서 맥주의 '왕관'으로 불린다. 최상의 거품 두께는 2cm 정도라고 한다. 제조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탄산을 발생시키는 외국 맥주는 거품 입자가 곱고 오래 간다. 반면 국산 맥주는 톡 쏘는 맛을 위해 인위적으로 탄산을 주입한다. 거품이 처음에만 부풀어 오르다 금세 꺼져버린다.
 
과도한 세금과 높은 진입장벽도 문제다. 국내에서 쉬지 않고 돌아가는 공장에서 생산되는 맥주는 연간 5천만 상자, 10억 병에 이른다. 이렇게 대량생산 시설을 갖춰야 맥주 생산이 가능하다. 반면 중소업체들은 시장진입이 상당 부분 제한돼 있다.
 
최근 제3의 맥주가 등장했지만 점유율은 아직까지 미미하다. 독일의 100배에 이르는 세금에 묶여 새로운 맥주 개발도 쉽지 않다. 소비자들은 다양한 맛을 원하지만 국산 맥주는 발전을 하려고 해도 구조적인 장벽에 막혀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맥주 애호가들은 언제까지 맛없는 국산 맥주를 마셔야 할까.
 
이코노미스트 보도 뒤 국내 맥주의 맥아 비율을 높여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당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식약처 업무보고에서 한 의원이 “우리나라 맥주가 맛이 없는 이유가 원가절감을 위해 원료에 맥아 즉 보리를 적게 사용하고 대신 옥수수전분과 밀 전분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이때 국세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수입맥주의 경우 원료 사용 현황을 제출한 반면 국산 맥주의 경우 구체적인 함량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 해당 업체가 원료함량을 외부에 유출하는 것에 난색을 표명한 까닭이다.
 
우리나라에서 판매하는 수입맥주 상위 10개 제품의 원료 사용현황을 살펴보면 맥아(보리)와 밀, 옥수수 중 맥아 함유량이 가장 많고 밀은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하이네켄이나 칭타오 맥주, 산토리 더 프리미엄 몰츠의 경우는 밀은 물론 옥수수도 사용하지 않았다. 반면 국산 맥주 제품은 하이트진로의 ‘맥스’나 오비맥주의 ‘버드와이저’를 제외하고는 옥수수전분, 밀전분 등을 사용한다. 그렇다면 국산맥주의 문제가 원료에 있다는게 맞는 말이다.
 
필자는 가끔 대형마트에 장을 보러 간다. 주류 코너에 가면 최근에는 이름을 모르는 새로운 상표가 눈에 많이 띈다. 그래서 수입 맥주도 즐겨 구입한다. 주위에 물어보면 필자처럼 수입맥주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맥주 수입금액이 최근 10년간 6.6배로 늘며 수입 맥주의 상승세가 가파르다. 수입대상국은 51개국으로 불어났다.
 
그런데 아니러니하게도 국산 맥주업계에는 별로 긴장감이 없는 것 같다. 국내에서 치열한 경쟁을 펼치는 맥주업체들이 해외시장 진출에도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다. 오히려 국내 맥주업체들은 올 상반기 맥주 수입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는 소식에도 불구하고 미소를 짓는다. 바로 유명 수입 맥주들의 수입원들이 주로 국내 맥주 대기업이나 유통 대기업들이기 때문이다. 한정된 맥주 시장을 놓고 자사제품과 수입제품을 동시에 내놓고 돈을 버는 웃지 못할 현실이 바로 한국의 맥주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다.
 
만일 그러다가 수입맥주 소비량이 국산맥주 소비량을 넘는 날이 오면 어쩔 셈인가. 지금처럼 무심코 ‘제살 깎아먹기’식의 마케팅을 하다가 경우에 따라서 종국에는 한국의 맥주업체들이 모두 수입맥주에 시장을 잠식당하고 자멸하는 사태가 올 지도 모른다.
 
특히나 상당 수 해외 맥주의 수입을 특히 국내 맥주 대기업들이 맡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일종의 ‘이율배반(二律背反)’이라고나 할까. 동등한 근거로 성립하면서도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모순된 두 명제 사이의 관계를 말하는 자가당착적인 처사라고 할 것이다.

천민 취급을 받아 온 상인 및 금융업자가 중심이 된 근대 이전의 비합리적 자본주의를 이른바 '천민자본주의(막스 베버)'라고 한다. 이같은 상술이 혹시라도 적과 동지를 구별하지 말고 아무 맥주나 팔아서 돈만 벌면 된다는 '현대판 천민자본주의' 또는 식민지나 후진국에서 외국자본의 앞잡이 노릇을 하며 부스러기 이윤을 착취하는 '매판자본적 행태'가 아니기를 부디 바랄 뿐이다.
 
국내 맥주들의 해외 경쟁력도 형편이 없다. 외국에 가서 한국맥주를 찾기가 매우 힘들고, 그나마 찾는 것은 극소수 한국사람들 뿐이다.
 
현재 오비맥주와 하이트진로 등 맥주브랜드를 가지고 있는 회사들은 전체 매출액의 약 10%를 수출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중 자체 브랜드로 수출하는 비중은 약 10%에 불과하다. 오비맥주는 '카스'브랜드를, 하이트진로는 '하이트' 등을 갖고 있다. 최근 에일맥주 붐이 일면서 롯데칠성음료(롯데주류)가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이들 회사들이 자체 브랜드를 가지고 수출하며 해외에 한국의 맥주라는 것을 알리는 경우는 극히 미미하다.
 
결과적으로 한국 맥주의 문제는 세금과 결부된다. 맥주가격이 비싼 데도 맛이 없는 이유가 주로 100%가 넘는 세금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한국 맥주의 제조원가가 500원이라면 원가의 72%인 360원이 주세로 붙고, 주세의 30%인 교육세 108원이 더 붙는다. 여기에 제조원가와 주세·교육세를 합한 금액의 10%인 96.8원의 부가가치세가 추가된다. 결국 맥주의 출고가격은 1064.8원이 된다. 절반 이상이 세금인 것이다.
 
맥주 좀 마신다는 나라치고 원래 세금이 비싼 영국을 제외하면, 일본이 그나마 우리나라하고 비슷한 편이다. 그렇지만 일본도 세금 자체가 절반을 넘지 않는다. 한국의 맥주 세금이 유난히 비싼 편이다.
 
맥주 가격은 정부에서 꽉 잡고 있다. 가격을 크게 올릴 수가 없다. 주정으로 만드는 소주에 비해 밀이나 호프등 원료 가격 변동 폭이 큰 맥주지만 가격은 쉽게 올리지 못한다. 그러다보니 세계에서 손꼽히는 기술과 설비를 갖춘 한국 맥주회사들은 맛있는 맥주가 아닌, 저렴하고 밍밍한 맥주를 만들 수 밖에 없다. 이것이 한국 맥주업계의 ‘슬픈 현실’이다.
 
한국 맥주 회사들은 내심으론 세금 때문에 맛있는 맥주를 못만든다고 투덜거릴 것이다 하지만 국세청의 비호 아래 독점 시장에서 안일하게 맥주를 만든 것 역시 사실이다. 구조적 문제 때문에 남 탓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결국 한국맥주가 세계시장에서 후진적인 것은 정부와 업계가 '짜고 친' 생산구조가  빚은 합작 결과물인 셈이다.  
 
정부가 맥주의 세제를 일부 개선한 것은 사실이다. 기획재정부가 지난 해 세법개정안을 통해 하우스맥주의 외부유통을 허용, 주세 과세표준을 낮추며 제조장 시설기준을 완화했다. 업계는 더욱 대폭적인 세금 조치를 요구한다. 그러나 세수가 부족한 정부 입장에서는 쉽지 않은 선택이다. 더욱이 소주,탁주 등 주종(酒種)간 과세표준이 다른 현실에서 맥주세금만 인하하는 것에도 난색을 표시한다.
 
우리나라 맥주 역사가 짧고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 글로벌 맥주 브랜드를 키우는 것이 쉽지 않은 과제다. 각국 맥주마다 역사성이 다르고 글로벌 주류업체 몇몇을 제외하고는 해외진출이 쉽지 않다. 또 해외 수입맥주가 날로 판을 치는 상황에서 이미 레드오션으로 포화상태인 국내시장에서 서로 뺏고 빼앗기는 영업전략으로는 분명 한계에 직면할 것이다. 더욱이 세계적인 맥주 브랜드 구축은 현재로선 요원하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한국 맥주가 대동강 맥주보다  맛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국제적으로 한국 맥주의 품질과 경쟁력이 뒤떨어졌다는 지적이다. 필자를 포함해서 이 땅의 맥주 애호가들은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의 문화적 수준과 국격에 걸맞게 훌륭한 국산맥주가 새롭게 출현하기를 기대한다. 해외에 나가서도 일본의 아사히 맥주처럼 ‘메이드 인 코리아’의 자랑스런 국산맥주를 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최근 우리나라에선 '맛있는 맥주' 논쟁이 세간에 꾸준히 일고 있다. 과거 산업혁명 초기에 영국의 노동자들은 자신이 만든 맥주를 마시면서 현장을 다녔다고 한다. 앞으로 우리나라 국민들이 서구인들처럼 저마다 맥주를 만들지는 못할 지라도 글로벌 수준의 국산 맥주를 마시면서 노동의 시름을 달래거나 생산촉진의 힘을 돋우며 살았으면 싶다. 
 
자동차도 그렇지만 맥주의 경우에도 국산품을 애용하자는 이른바 '애국심 마케팅'은 개방 무역 체제인 한국 시장에서 통하지 않은 지 오래다. 그렇다면 이제 정부든 맥주업계든 누군가가 좁은 국내시장에서의 출혈경쟁을 걷어내고, 국가를 대표할 '글로벌 비어 브랜드(global beer brand)'를 만들어내기 위해 새로운 그리고 남모를 정열과 노력을 쏟아야 하는 또 다른 시대를 맞은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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