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김녕 김씨(金寧金氏)-513,015명
(13)김녕 김씨(金寧金氏)-513,015명
  • 정복규
  • 승인 2014.07.21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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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김시흥(金時興)은 신라 경순왕의 8세손이며 신라김씨의 원조 대보공 김알지의 35세손이다. 그는 고려 인종 때 평장사에 이르렀으며 김녕군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김녕을 본관으로 삼았다. 김녕은 김해의 옛 이름이다. 김녕김씨(金寧金氏)는 금녕김씨(金寧金氏)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자인 金은 쇠금(金), 혹은 성김(金)으로 쓰이기 때문이다.

한편 가라국 김수로왕을 시조로 하는 김해김씨와 신라의 김알지를 시조로 하는 김녕김씨는 뿌리가 다르다. 고려 말에 김녕이 김해로 바뀌면서 김녕김씨의 본관도 김해로 부르게 된다. 그래서 김해김씨를 선김(先金), 김녕김씨를 후김(後金)으로 구분하기도 했다.

고려 인종 때 이자겸의 난을 평정한 김 향은 시조 김시흥의 큰 아들이다. 인종 때 감찰어사를 거쳐 병부상서에 이르렀다. 그의 딸이 당시 최고의 권세를 떨치던 이자겸의 며느리가 되어 그와 사돈이 된다. 그러나 이자겸의 권력이 왕권을 누르는 것을 보고 척준경 등과 함께 이자겸을 잡아 유배했다. 시조 김시흥에게는 김 향, 김 순 두 아들 대에서 여러 파로 갈라진다.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에 공을 세워 좌찬성에 오른 김인찬은 조선 개국 1등공신이며 명궁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의 아들 김종남은 한성 판윤을 지냈다. 단종 복위 거사의 주역 백촌 김문기(1399〜1456)는 시조 김시흥의 9대손이다. 호조판서 김순의 손자이며 영의정에 추증된 김권의 아들이다.

조선조까지도 크게 번성하던 김녕김씨 가문은 조선 단종 때 화를 당하게 된다. 세조가 단종의 왕위를 찬탈하자 김문기는 박팽년, 성삼문, 하위지, 이개, 유성원 등과 함께 단종 복위를 모의했다. 김문기는 병력동원을 책임진다. 그러나 이 거사는 김질의 밀고로 무산됐고, 모의 가담자들은 모진 고문 속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 갔다. 김문기 역시 세조의 모진 고문 끝에 아들 김현석과 함께 순절했다.

그는 단종과 동지에게 누가 미칠까 봐 끝까지 입을 다물고 절의를 지켰다. 거사가 실패로 돌아가자 김녕김씨 가문에는 세찬 시련이 몰아친다. 가까운 일가붙이는 유배를 당했고 김녕김씨라는 이유로 역적의 누명이 씌어진 사람들은 산중으로 피하거나 본관을 숨기며 살았다. 김녕김씨의 최대 집성촌인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대화동 일대에 살았던 후손들도 오랫동안 본관을 김해로 삼다가 1970년대 초 김녕으로 본관을 바꾸었다.

김문기는 김녕군의 9세손으로 충복 옥천군 이원면 백지리에서 태어났다. 10세가 되었을 때 이미 신동이라 불리었다. 어려서 모친상을 당해 매일 성묘하였고 또 부친상을 당해 시묘했다. 그를 가리켜 사림에서는 효자라 칭했고, 그로부터 백지리는 효자동으로 불렸다. 충북 옥천군 이원면 백지리에서는 해마다 김문기 추모제가 그의 유허비 앞에서 열린다. 김문기와 동시대인으로 단종이 죽자 월악산에 들어가 3년간 복상, 세조의 좌의정 등용 제의도 고사한 김준이 있다. 또 김안국의 문인으로 사마시에 급제하고도 벼슬을 마다하고 학문에만 전념한 김현 등도 김녕김씨의 기개를 보여준 인물들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후손이다. 그는 경남 거제 출신으로 통영중, 경남고,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국무총리 장택상의 비서가 되었다. 그 뒤 1954년 26세의 최연소자로 3대 민의원에 당선된다. 그 뒤 5·6·7·8· 9·10·13·14대 의원에 당선되면서 9선 기록을 세웠다. 4·19 혁명 이후 여당인 민주당 구파에 속하였고, 제3공화국 기간 동안 야당의 대변인, 원내총무를 거친다. 1971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김대중, 이철승과 함께 40대 기수론을 내세워 신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섰으나, 결선 투표에서 김대중에게 패한다. 1990년 1월 민주정의당과 통일민주당, 그리고 신민주공화당이 전격적으로 합당하여 민주자유당을 창당,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다.

김재규(1926~1980)는 경북 구미(선산) 출생이다. 그는 국군 창설 때 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에 입교하여 제2기생으로 졸업했다. 김재규는 잠시 대구 대륜중학교 및 김천중학교의 교사생활을 했다. 1976년 12월 중앙정보부장에 임명되면서 의원직을 사퇴하고 대통령 박정희를 측근에서 보좌한다.

김재규는 1979년‘10·26사태’인 대통령 시해사건을 일으킨다. 그 뒤 1980년 5월 24일 내란목적살인 및 내란미수죄로 교수형을 당했다. 묘소는 경기도 광주군 오포면 삼성공원 묘원에 있다. 김재규는 법정에서“유신의 심장을 야수의 심정으로 쐈다.”고 말했다.

육군중장으로 예편한 4선의원인 전 신민당 원내총무 김형일과 사단장을 지낸 김선규는 6·25동란 때 전공이 많았다. 김창규, 김성룡은 공군참모총장을 각각 역임했다. 교통부장관을 지낸 김석관과 문교부장관을 지낸 김법린, 김홍섭 서울고등법원장, 김용찬 초대 서울지검장 등도 후손이다.

그 밖에 현대 인물은 김세권(서울고검장), 김여근(동일고무벨트회장), 김동규(국회의원), 김석수(부산지법원장), 김형표(서울남부지청장), 김형기(서울고검검사), 김효규(대우의료재단이사장), 김형효(정신문화원부원장, 국회의원), 김운룡(IOC위원), 김중태(국회의원), 김성희(국회의원), 김진재(국회의원), 김문원(국회의원), 김덕룡(국회의원), 김종규(서울신문사장), 김형수(중앙일보국장), 김우석(조선대학장), 김사엽(동국대교수), 김용균(서울행정법원장, 변호사), 김정도(전주출입국관리사무소장) 씨 등이 있다. (무순, 전·현직 구분 안 됨)

본관 김녕(金寧)은 경상남도 김해시의 옛 지명이다. 일찍부터 가락국의 문화 중심지로 발전해 오다가 532년(신라 법흥왕 19) 신라에 병합되어 금관군(金官郡)이 되었다. 680년(문무왕 20)에 금관소경(金官小京)이 되었다가 757년(경덕왕 16) 김해소경(金海小京)으로 고쳤다. 940년(고려 태조 23) 김해부로 고쳐 임해(臨海)·금주(金州) 등으로 불렸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김해군이 되었다. 1981년 김해군의 김해읍이 김해시로 승격하여 분리 되었으며 1995년에는 김해군이 김해시로 통합되었다.

집성촌은 대구광역시 북구 노곡동,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경북 김천시 대덕면 덕산리, 경북 김천시 대덕면 조룡리, 경북 김천시 감문면 금라리, 경북 상주시 초산동, 경북 군위군 산성면 삼산리, 경남 진주시 하촌동, 경남 의령군 궁류면 평촌리, 경남 합천군 쌍백면 삼리, 전북 고창군 무장면 신촌리, 전북 순창군 금과면 대성리, 전북 순창군 금과면 청용리, 전남 고흥군 점암면 화계리, 전남 고흥군 두원면 관덕리, 전남 무안군 해제면 학송리, 충남 논산시 은진면 방축리, 황해도 신계군 다미면 중산리 등이다.

1970년대 초반에 김녕김씨 충의공파 후손들은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대화동 일대에 300여 세대가 살고 있었다. 이후 차츰 줄어들어 일산 신도시 개발 직전에는 180여 세대 600여 명만이 마을을 지키게 된다. 대화동 일대에는 마을 이름이 김동, 김서라고 불리는 곳이 있다. 김녕김씨가 사는 동쪽마을, 서쪽마을이라는 의미다. 주요파는 영돈령공파, 진주목사공파, 충정공파, 충경공파, 송암공파, 만은공파, 충의공파, 대사성공파, 도순찰사공파, 상서공파 등이다.

통계청의 인구 조사에 의하면 김녕김씨는 1985년에는 총 102,901가구 424,336명, 2000년에는 총 162,204가구 513,015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15년 만에 6만여 가구,9만여 명이 늘어났다. 1985년 당시 전국의 지역별 인구 분포는 서울 69,089명, 부산 61,210명, 대구 35,744명, 인천 8,244명, 경기 27,630명, 강원 14,035명, 충북 6,663명, 충남 22,036명, 전북 21,818명, 전남 35,400명, 경북 54,018명, 경남 67,917명, 제주 519명이다. 경남과 부산에 가장 많이 살고 있다.

그 뒤 15년 후인 2000년 현재는 서울 84,278명, 부산 67,032명, 대구 44,520명, 인천 19,401명, 광주 9,622명, 대전 1,1701명, 울산 18,020명, 경기 72,021명, 강원 11,977명, 충북 7,829명, 충남 16,043명, 전북 19,038명, 전남 22,903명, 경북 48,761명, 경남 58,894명, 제주 975명이다. 1985년과 마찬가지로 부산과 경남에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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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정복규 프로필

● 전북매일 편집국장, 논설위원

● 익산신문 사장

● 현재 새전북신문 수석 논설위원

● 현재 성씨 전문강사(한국의 성씨를 통한 역사탐구)

 

( 저 서 )

• 한국의 성씨: 성씨를 찾아서

• 한국의 성씨: 1,2권

• 칼럼집: 숲이 좋으면 새가 날아든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핸드폰이 세상을 지배한다/ 개성있는 인재를 키워라

• 유머집: 각하 코드를 맞추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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