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순흥 안씨(順興安氏)-468,827명
(15)순흥 안씨(順興安氏)-468,827명
  • 정복규
  • 승인 2014.07.21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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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안자미(安子美)는 고려 때 흥위위보승별장(興威衛保勝別將)을 역임하고 신호위상호군(神虎衛上護軍)에 추봉되었다. 그 뒤 후손들이 순흥현에 살면서 본관을 순흥으로 했다. 순흥은 경북 영주군 순흥면의 지명이다. 시조의 묘는 당초 경북 영주군 순흥면에 있었으나 중간에 없어졌다. 현재는 제단을 설치하여 매년 음력 10월 1일에 향사한다.

시조 안자미의 아들 안영유, 안영린, 안영화 3형제 대에서 가세가 일어나기 시작하여 훌륭한 인맥을 형성했다. 우리나라 주자학의 태두 안 향은 고려조의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고려 원종 때 문과에 급제했다. 그 뒤 충열왕 때 좌승지 등 벼슬을 지낸다. 왕과 공주를 따라 원나라에 갔을 때 ‘주자전서’를 접하고 돌아와 우리나라 최초의 주자학자가 된다. 그는 또 육영재단인 섬학전을 설치하여 후진을 양성했다.

그의 문하에서 백이정, 우탁 등이 나왔다. 백이정의 학풍은 이제현, 이 색 등에 의해 계승된다. 이 색의 문하에서는 권 근이 나와 유학의 전통이 면면히 이어졌다. 안 침은 세조 때 문과에 급제, 전라도관찰사와 경상도 병마절도사 등을 지내고 공조판서를 거쳐 지돈령부사에 이르렀다. 그의 5형제가 모두 현달하였다.

안 당은 성종 때 친시문과에 급제, 중종 때 우의정에 오르고 좌의정이 되었다. 1521년 신사무옥으로 아들 안처겸이 처형당할 때 사사(賜死)되었다.

안 위는 중종 때 문과에 급제, ‘경국대전’을 찬수하고 호조판서와 형조판서를 지냈으며, 군략가로 이름났다. 안 현은 명종 때 이조판서, 우의정, 좌의정을 역임했으며 청백리에 녹선되었다. 안 상은 음악의 대가로서 선조 때 거문고, 비파, 장고의 악보를 망라하여 ‘금합자보(琴合字譜)’를 발간했다.

고려 말의 명신 안 축, 안 보, 안 즙 등 3형제도 유명하다. 안 축은 충숙왕 때 원나라 제과(制科)에 급제, 전법판서가 되었다. 충목왕 때 첨의찬성사, 춘추관감사가 되어 충렬, 충선, 충숙왕조의 실록을 편찬했다.

안 보는 공민왕 때 정당문학, 안즙은 대제학을 지냈다. 3형제 중 안 축의 후손에서 많은 인물이 나왔다. 그의 아들 안종원은 조선 개국 후 삼사영사(三司領事)에 오르고, 안종원의 아들 안경공은 조선 개국공신으로 태종 때 집현전 대제학이 되었다. 안경공의 아들 안 순과 손자 안숭선, 안숭효도 모두 명신으로 유명하다.

도산 안창호는 1897년 구세학당을 졸업한 뒤 독립협회에 가입했다. 1899년 강서에 점진학교를 설립하고 1902년 미국으로 건너가 재미교포들의 권익보호를 위해 공립협회를 만든다. 도산은 평양에 대성학교, 정주에 오산학교를 세운 뒤 1912년 미국으로 망명, 흥사단을 설립했다. 도산은 59년 일생을 대한의 독립을 위해 일제와 싸우고 끝내 침략자의 형벌에 순국했다. 그는 인도 독립운동의 영웅 간디에 비교된다.

1909년 하르빈에서 이등박문을 처단한 안중근(1879~1910)은 유시 하나를 남기고 의연히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남아의 최후였다. 글씨에도 뛰어나 많은 유필(遺筆)이 있으며 옥중에서 ‘동양평화론’을 집필했다. 선천(宣川)에서 데라우치 마사타케 총독을 암살하려다가 미수에 그친 안명근(안중근의 종제),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도 있다.

현대 인물은 안경모(교통부장관), 안동혁(상공부장관), 안치열(원자력청장), 안광석(조달청장), 안동준(국회의원), 안무혁(국세청장), 안춘생(예비역육군중장), 안종열(국회의원), 안세희(연세대총장), 안병욱(숭전대교수), 안상원(건국대교육대학원장), 안광호(주불대사), 안종직(감사원장), 안정근(전매청장), 안진생(미얀마·콜롬비아 대사), 안동선(국회의원), 안갑준(국회의원), 안 림(성균관대교수), 안사명(과학기술처정책자문위원), 안영모(한일은행장), 안용팔(가톨릭의대교수), 안인희(이화여대교수), 안철환(대한통운 사장), 안정모(조선공사사장), 안태호(인하대경상대학장), 안응모(충남도지사), 안희경(변호사), 안필준(육군중장), 안기영(변호사), 안균섭(변호사), 안길수(변호사), 안동일(변호사), 안달원(변호사), 안명기(변호사), 안태갑(주정협회이사장), 안재준(동아일보논설위원), 안병희(변호사), 안우만(서울지법수석부장판사), 안상국(동서증권 대표이사회장), 안병휘(동양물산기업 대표이사), 안정식(세방기업 사장), 안영철(한국화학 사장), 안종혁(서울민사지법부장판사), 안범수(변호사), 안이준(변호사), 안교덕(국회의원), 안철호(육군소장), 안승군(검사), 안승규(검사), 안용대(변호사), 안원모(변호사), 안장호(변호사), 안상현(기독교방송국편성국장), 안영승(정우개발대표), 안원종(동진산업회장), 안인혁(한국바이엘약품 회장), 안형규(서울대치대교수), 안병태(서라벌중학교장), 안용찬(춘천간호전문대학장), 안중태(외국어대문리대학장), 안세영(대전일보 사장), 안종만(박영사 사장), 안철환(대한통운 사장), 안수복(파고다극장 사장), 안낙선(국민건강보험 지사장), 안정용(전북대교수) 씨 등이다. (무순, 전·현직 구분 안 됨)

본관 순흥(順興)은 경상북도 영주시(榮州市) 순흥면의 지명이다. 고려 때 충렬왕이 태(胎)를 봉안하여 지흥주사(知興州事)로 승격되었으며, 충목왕이 태를 봉안하여 순흥부(順興府)로 승격되었다. 1457년(세조 3)에 부사 이보흠(李甫欽)이 역모를 꾀하였다고 하여 풍기(豊基), 영천(榮川)에 나누어 편입시켰다.

1683년(숙종 9) 순흥도호부(順興都護府)로 복구하였다. 1914년에 군을 없애고 봉화(奉化)와 영주(榮州)에 각각 편입시켜 영주시에 속한 순흥면으로 남아 있었다. 1980년 영주시가 생기면서 영풍군의 관할이 되었다가,1995년에 영풍군이 영주시에 통합되었다. 순흥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는 순흥강씨(順興姜氏), 순흥김씨(順興金氏), 순흥박씨(順興朴氏), 순흥송씨(順興宋氏), 순흥안씨(順興安氏), 순흥정씨(順興鄭氏) 등이 있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안숭선(安崇善,1392 壬申生) : 문과(文科) 세종2년(1420) 식년시 을과(乙科) 장원급제, 안복준(安復駿,1698 戊寅生) : 문과(文科) 영조 4년(1728) 별시2 갑과(甲科) 장원급제, 안극효(安克孝,1699 己卯生) : 문과(文科) 영조 17년(1741) 식년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안재린(安在麟,1820 庚辰生) : 문과(文科) 철종 2년(1851) 별시2 갑과(甲科) 장원급제, 안정간(安廷侃,1846 丙午生) : 문과(文科) 고종 29년(1892) 별시3 갑과(甲科) 장원급제, 안치(安致,1846 丙午生) : 문과(文科) 태종 17년(1417) 식년시 동진사(同進士), 안만철(安萬哲,1846 丙午生) : 문과(文科) 성종 21년(1490) 별시 병과(丙科) 등 모두 641명이 있다. 문과 121명, 무과 91명, 사마시 327명, 역과 42명, 의과 24명, 음양과 26명, 율과 9명, 주학 1명 등이다.

집성촌은 경북 상주시 공검면 중소리, 경북 울진군 기성면 척산리, 경북 예천군 용궁면 월오리, 경남 진주시 대평면 상촌리, 경남 함안군 가야읍 신음리 등이다.

통계청의 인구 조사에 의하면 순흥안씨는 1985년에는 총 99,937가구 417,598명, 2000년에는 총 145,254가구 468,827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15년 만에 4만5천여 가구,5만1천여 명이 늘어났다.

1985년 당시 전국의 지역별 인구 분포는 서울 104,571명, 부산 31,776명, 대구 16,435명, 인천 16,461명, 경기 59,943명, 강원 27,008명, 충북 24,113명, 충남 30,208명, 전북 16,327명, 전남 17,084명, 경북 37,590명, 경남 33,054명, 제주 3,021명이다. 부산, 경남 지역에 많이 분포되어 있었다.

그 뒤 15년 후인 2000년 현재는 서울 102,630명, 부산 32,266명, 대구 20,786명, 인천 28,070명, 광주 6,321명, 대전 14,369명, 울산 9,457명, 경기 103,303명, 강원 22,221명, 충북 23,214명, 충남 18,430명, 전북 13,774명, 전남 9,425명, 경북 32,195명, 경남 28,901명, 제주 3,465명이다. 1985년과 마찬가지로 부산, 경남, 대구, 경북 지역 등 영남권에 많이 살고 있다. 다른 지역에도 고루 번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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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정복규 프로필

● 전북매일 편집국장, 논설위원

● 익산신문 사장

● 현재 새전북신문 수석 논설위원

● 현재 성씨 전문강사(한국의 성씨를 통한 역사탐구)

 

( 저 서 )

• 한국의 성씨: 성씨를 찾아서

• 한국의 성씨: 1,2권

• 칼럼집: 숲이 좋으면 새가 날아든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핸드폰이 세상을 지배한다/ 개성있는 인재를 키워라

• 유머집: 각하 코드를 맞추세요

● 핸드폰: 010- 5162- 8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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